[spotlight] 안재홍│① 마성의 복학생

2014.08.27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솔직히 남자 배우의 얼굴을 좀 따진다고 자처하는 여성 관객이라면 영화 <족구왕>을 보다가 혼란스러워질지도 모른다. 미남은커녕 그저 퉁퉁한 외모, 왁스조차 바르지 않아 두서없이 뻗은 머리카락, 착실히 꿰어 입긴 했으나 일관성 있게 어정쩡한 옷매무새까지, 주인공 만섭은 ‘흔한 복학생’의 이미지를 귀신같이 체현하는 동시에 전국 복학생 협회에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해도 할 말이 없어 보일 만큼 작정하고 촌스러운 남자다. 게다가 평균 학점 2.1, 토익 점수 없음, 여자 친구 평생 없음에 빛나는 스펙의 만섭은 각자도생으로 살벌한 공기의 캠퍼스에 돌아와 선언한다. “저는 그, 공무…원 시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연애…하고 싶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주제에 ‘감히’ 사랑과 족구를 즐기겠다니, 대책 없는 청춘에게 선배는 일갈한다. “넌 뭘 믿고 그렇게 낭만이 흥건하냐?”

하지만 <족구왕>의 마법은 그 근거 없는 낙천성으로 무장한 만섭으로부터 시작된다. 쥐뿔도 없고 심지어 등록금 낼 돈조차 없는 주제에 언제나 당당하고 느긋한 그는 희한하게 끌리는 남자다. 연애를 하고 싶으면 퀸카에게 고백하고 족구장이 필요하면 총장을 찾아가는 정공법이 만섭의 방식이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요즘 젊은 애들’에게 또 하나의 스펙처럼 갖출 것을 기대하는 청춘의 패기라기보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건 바보 같다”고 여기는 청년의 묵묵한 순정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만섭이 봐, 존나 병신 같아도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라고 묘하게 인정받는 그에게 빠져드는 건 저도 모르는 순간이다. 무성한 눈썹과 투박한 이목구비가 문득 귀여워 보인다 싶으면 이미 벗어날 수 없다.

이 출구 없는 매력의 복학생을 연기한 배우는 안재홍이다. 과장 섞인 코미디와 평범한 20대의 삶 사이, 우문기 감독은 배우들에게 ‘배우가 아닌 사람’처럼 보일 것을 주문했고 안재홍은 그 세계에 공기처럼 녹아들었다. “진짜 복학생 같아 보인다는 건, 그냥 못생겼다는 거 아닐까요? ‘어디서 저렇게 찌질하게 생긴 놈을 캐스팅했냐’는 댓글도 있더라고요.” 하하 웃는 품새가 만섭과 흡사하지만 실물은 훨씬 반듯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입 진로를 결정할 무렵 그저 “영화 보는 걸 참 좋아해서” 연기를 시작했다. 운 좋게 대학(건국대 영화전공)에 입학했는데 선배들이 거의 군대에 가는 바람에 남자 배우가 모자라 어쩌다 보니 첫 연극부터 주인공을 맡았다. 만섭처럼 외로움을 ‘찐하게’ 느꼈던 복학생 시절에도 연습실에서 혼자 <백세개의 모노로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는 안재홍의 지난 시간은 연기와 관련된 경험으로 가득하다. 직접 쓰고 연출한 단편 영화가 여섯 편, <우리 선희>와 <자유의 언덕>에는 제작부로 참여한 데다 극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영화의 탄생부터 관객을 만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까이서 지켜봐 온 젊은 배우가 씩 웃는다. “아직, 배급만 못 해봤죠.”

전작 <1999, 면회>로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남자배우상을 수상한 데 이어 <족구왕>으로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을 보여준 안재홍의 꿈은 “궁금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 마침 일찌감치 그를 궁금히 여겨 점찍은 감독들도 적지 않다. 안재홍은 개봉을 앞둔 <타짜 2 – 신의 손>을 비롯해 <스물>, <쎄시봉>, <레드 카펫> 등 기대작마다 잠깐씩 얼굴을 비칠 예정이고, 류승룡과 수지 주연의 <도리화가>에도 조연으로 캐스팅됐다. 즉 순한 동네 총각 같아 보이는 이 청년은 어쩌면 아직 긁지 않은 복권, 숫자를 써넣지 않은 백지수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미리 줄을 서자. 훈남 앞으로.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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