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이라는 남자

2014.08.25

성시경은 대화가 통하는 여자를 좋아한다. JTBC <마녀사냥>에서는 여자의 ‘몸’과 ‘말’ 중 한 가지만 통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말’을 선택했다. 그는 청취자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던 DJ고, 지인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이 삶의 낙 중 하나다. <마녀사냥>과 JTBC <비정상회담> 속 성시경은 그의 대화 방식을 캐릭터화시킨 것과 같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크보다 토론이 더 중요한 MC다.

신동엽은 <마녀사냥>에서 여성 게스트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지며 가벼운 분위기를 만든다. 유재석은 KBS <나는 남자다>에서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남성 방청객들과 함께 환호를 지른다. 반면 성시경과 허지웅은 <마녀사냥>에서 여성 게스트와 토론한다. 신동엽의 역할도 크지만, <마녀사냥>은 방송 초기에 허지웅이 옛 연인과 같이 잤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발라드 가수인 성시경이 성에 대해 이야기했기에 성립할 수 있었다. 7~8살 많은 선배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더 민감한 주제를 더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성시경은 <마녀사냥>에서 조카가 허지웅을 좋아한다고 하자 “허지웅은 안 돼”라고 말했다. 어서 공부하러 들어가라고도 했다. 모두 농담이었다. 다만 그는 조카와 평소 다른 여성처럼 연애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 자신은 괜찮더라도, 주위의 시선이 어떤지 안다. 연애에 대해 이전 세대보다 자유롭지만, 조카는 성인이 됐다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남자. 성시경은 MBC <무릎팍도사>의 첫 번째 출연에서 군입대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유승준의 입국 금지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제대 후 다시 출연했을 때는 세계 군악대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국 군악대의 멋진 모습 등 자신의 군 시절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연애든 사회적 이슈든 윗세대보다 진보적인 의견을 가졌다. 반면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 특유의 자부심도 있다. <비정상회담>의 MC 전현무는 노래 ‘썸’을 개사해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라 부른다. 이것은 성시경에게도 통용된다. 보수적인 듯 보수적이지 않은 보수적인 남자.


“(한국인에게는) 특유의 애사심이 있다.” 성시경이 <비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직장인이 일을 많이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말이다. 패널인 줄리안이 이에 대해 반박하자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일하고 돈을 벌고, 사회 구성원으로 해내는 소명 의식”이 있다고도 말했다. “선진국이 아닌” 한국과 줄리안의 나라 벨기에, 또는 유럽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은 성시경의 일면이다. 여성과도, 외국인과도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이, 유럽이 아니다. 참아야 할 것도 많고, 군 경험은 자랑스럽고, 애사심이나 애국심이 중요한 30대 남자의 사고방식이다. 저녁에도 직장에 매여 있는 많은 직장인들의 행동을 애사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성시경에게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 세대처럼 말 없는 것을 미덕으로 삼지는 않지만, <비정상회담>의 서구인들처럼 대부분의 이슈에 개방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성시경은 <마녀사냥>에서는 허지웅과 함께 여자와 온갖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국 남자다. 하지만 11명의 외국 남자들이 출연하는 <비정상회담>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쪽에 가깝다.

한국은 <마녀사냥>과 ‘남중-남고-공’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여성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나는 남자다>가 공존한다. 이곳에서 영어에 능하고, 고려 대학교를 나왔으며, 성공한 발라드 가수인 성시경은 동세대의 평균적인 남자들보다 빨리 대화라는 새로운 태도를 익혔다. 반면 대화에 담아내는 생각은 아버지 세대의 가치관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성시경은 21세기라는 새로운 개화기의 모던보이다. 구한말 모던보이는 새로운 문물을 익히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되 정신이 서구인 같지는 않았다. 성시경도 빠르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였으되, 한국에서 통용되던 가치를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개방적인 사고의 교회 오빠, 까칠한 발라드 가수, 또는 대화를 즐기는 자기 주장 강한 사람이라는 독특한 위치는 거기서 나온다. 

성시경의 입장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의 생각이 대변하는 가치는 옳을 때도, 그를 때도 있을 것이다. 성시경이 ‘일베’ 이용자처럼 특정 성과 지역 등에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누구와도 대화할 자격이 있다. 다만 <비정상회담>의 또 다른 MC 전현무는 터키인 에네스가 동성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용기 있는 발언”이라 말했다. 토론 중 격한 감정도 드러내는 <비정상회담>에서 발언을 하는 데 용기를 낼 필요는 없다. 한국은 여전히 커밍아웃이 엄청난 스캔들이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남자는 <비정상회담>에서처럼 이 정도 변화로 자신의 가치관이 소수나 비정상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직장에서 협력과 경쟁을 하고, SNS로 전 세계의 이슈들을 접한다. 성이나 인종 등에 대한 정치적 공정성은 한국에서도 특정인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성시경이 MC를 맡고, <비정상회담>이 생긴 것은 이런 변화가 낳은 결과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남자도 기대와 다른 반응에 놀랄 일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결 방법은 대화를 아예 차단하든가, 말하는 것만큼 들으며 대화하는 것뿐이다. 갑갑한가?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세계의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원래 그렇다. 우리가 뒤늦게 알았을 뿐이다. 남성이 여성과 대화를 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달라 보였을 만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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