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랑이야>, ‘노희경 월드’의 균열

2014.08.06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늘 상처와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처로 인해 고독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벽을 쌓아 더 외로워지지만 실은 진심으로 이해받고 소통하길 원한다. 그들의 단단한 벽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들은 같은 상처를 지닌 존재들이다. 그 아프고 쓸쓸한 영혼들이 관계를 맺고, 이를테면 상처의 공동체를 구축하여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바로 노희경 드라마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이러한 소재를 좀 더 ‘직접적으로’ 다룬다. 지해수(공효진)는 여섯 살 때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뒤 트라우마가 생겨 관계기피증을 앓는다. 장재열(조인성) 또한 의붓아버지와 관련된 비밀을 지닌 채 강박증을 비롯한 정신적 장애로 진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조동민(성동일)은 아직 이혼의 상처를 다 떨쳐버리지 못했고 현재의 아내와도 아이 교육 때문에 떨어져 살고 있어 쓸쓸함을 느낀다. 수광(이광수)은 투렛 증후군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다보니 홈메이트가 되어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전형적인 ‘노희경 월드’의 거주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노희경 드라마라기에는 낯설고 어색하다. 그가 처음 시도하는 로맨틱 코미디라거나, 판타지를 극대화한 셰어하우스 묘사에서 느껴지는 트렌드에 대한 강박도 한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 원인은 ‘직접적’이라는 말에 있는 듯하다. 기존의 노희경 드라마에서 인물들의 상처는 그들이 오래 쌓아온 벽만큼이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예컨대 KBS <거짓말>에서 준희(이성재)에게 한없이 “이상한 여자”였던 성우(배종옥)가 ‘눈물로 가득 찬 선인장’이 되기까지, KBS <꽃보다 아름다워>의 영자(고두심)가 자식들 앞에서 상처를 외부로 드러내며 빨간 약을 바르기까지, 노희경은 매우 더디고 그만큼 신중하고 섬세하게 공감의 정서를 쌓아올렸다. 그 특유의 진중한 점층적 심리 묘사는 모든 관계가 표피화되는 시대를 거슬러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냈다. 그것이 보는 이들까지 그녀의 인물들과 함께 정서적 공동체에 동참하게 만드는 노희경의 힘이었다. 


이와 달리, <괜찮아, 사랑이야>는 직접적이고 빠르게 느껴진다. 점층적 심리묘사보다 충격효과에 더 가까운 묘사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가령 인물들의 상처에는 그것을 이해하기도 전에 미리 병명이 붙는다. 해수는 연인과 이별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트라우마와 원인과 증상까지 자신의 입으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홈메이트 재열과 수광과 동민도 열린 창으로 그 상처를 다 듣게 된다. 더 단적인 사례는 재열과 수광의 첫 만남이다. 재열이 처음 본 수광은 발작을 일으킨 모습이었고, 증세가 잦아든 수광은 그에게 자신의 병명을 직접 이야기한다.

관계에 대한 묘사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물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유대관계를 맺기도 전에 셰어하우스에서 물리적으로 먼저 가까워진다. 축구 응원을 위해 친구들이 모두 집에 모인 날의 에피소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수광은 재열에게 친구들의 관계를 주로 첫 키스를 나눈 사이로 설명한다.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는 생략되거나 뒤로 물러나 있다. 제일 노골적인 사례는 재열이 성적 트라우마를 겪는 해수에게 기습 키스하는 장면이다. “뭘 그걸 상상하고 다짐해. 그냥 하면 되지, 가볍게.” 그의 말은, 늘 무겁고 진지했던 노희경의 드라마들과 이 작품의 괴리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 모든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빈번하게 등장하는 클로즈업이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부터 극단적으로 활용되는 김규태 감독의 클로즈업 기법은, 인물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부여하고 섣부른 동일시 대신 관조하고 성찰했던 기존 노희경 작가의 시선과 다르게 인물들의 감정을 더 쉽고 극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충격효과와 같은 맥락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괜찮아, 사랑이야>는 상처와 관계를 이야기하는 노희경의 일관된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는 드라마다. 언제나 인간심리가 일으키는 내적 사건에 더 집중했던 노희경 작가가 막상 정신의학을 소재로 인간내면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에서 오히려 가벼운 외적 갈등을 앞세웠기에 더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정신질환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이를 ‘오만과 편견’을 기초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와 연결시켜 풀어내고자 한 노희경의 의도적 전략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더 나가 노희경의 새로운 처방전에 의한 변화일 수도 있다. 좀 더 빠르고 극적인 것을 원하는 세태와 소통하기 위한, 말하자면 해수가 자신의 환자에게 행했던 “좀 더 강력한 행동치료”와 유사한 처방전. 이것이 끝내 치유의 ‘노희경 월드’에 안착하는 결과가 될지, 아니면 어색한 쓴 맛의 부작용만 남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