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난중일기>, 섬세한 인간이 담대해지는 법

2014.08.08

전쟁은 비극이다. 인간의 존엄과 생존의 실리를 동시에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었을 때 부산에서 출발한 일본군은 20일 만에 한양에 도착했다. 거의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정발과 송상현과 신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수들이 도망쳤다. 그들은 존엄을 버리고 생존의 실리를 챙겼다. 신립이 패전하고 전사하자 임금인 선조 역시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다. 왕 역시 존엄을 버리고 생존의 실리를 택했다. 의주로 간 왕은 명나라에 정치적 망명을 청했다. 명나라는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원군을 파병했다. 한양의 궁궐은 분노에 찬 백성들에 의해 불에 탔다. 존엄을 버려서라도 살고 싶었던 왕과 똑같이 살고 싶었던 백성들의 절규였다.

전라도는 달랐다. 이순신이 있었다. 바다의 싸움은 단순했다. 이기지 못하면 죽었다.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의 압도적인 승률은 수적인 열세를 기술적인 우위로 압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사 이래 해전의 본질은 ‘등선접선’이었다. 상대의 배에 올라 백병전으로 항복할 때까지 적을 죽였다. 해적 출신이 많은 일본군은 ‘등선접선’에 강했다. 이순신은 조총의 사정거리보다 5배 이상 긴 총통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승리의 본질은 ‘원거리 포격전’이었다. 거기에 배의 성질을 감안한 ‘당파’와 ‘돌격전’을 더했다. ‘당파’는 배를 배로 부수는 것이다. 조선의 소나무 배는 느린 대신 강했다. 일본의 삼나무 배는 약한 대신 빨랐다. 거북선은 특히 강했다. 한산과 명량의 전설은 그렇게 해서 가능했다.

이순신은 28세에 별과에 응시했다 낙방했고, 32살에 무과에 합격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시험보다는 실무에 더 밝은 타입이었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이기는 장수였다. 나라는 이기는 장수가 필요했다. 그는 낙마했다가 재기용됐고 유성룡의 배려로 47세에 전라좌수사가 됐다. 그는 전라도를 일본에게 지켰다. 일본은 보급로가 차단되며 괴로웠다. 이순신은 육군의 도움이 없어 괴로웠다. 일본은 육로를 통해 전라도를, 이순신은 바다를 통해 경상도의 일본을 공격했다.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 이후 전쟁은 4년 동안 소강상태에 빠졌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견래량을 집요하게 지켰다. 그 전략은 많은 내부의 적을 만들어 냈고 결국 ‘백의종군’했다. 그리고 다시 재기해서 전설을 만들었다. ‘명량해전’이었다.

이순신은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 담대해지려면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는 해결해야 할 사안이 생기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이 깊어져 그 사안과 관련된 꿈을 꾸고 실현된 적도 많았다. 평범한 인간이 비범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이면에는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는 깊은 수준의 몰입이 있는데, 이순신이 그랬다. 몰입이 깊어지면 상할 수 있는 마음을 활을 쏘며 달랬다. 활을 쏘아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으면 점을 쳤다. 객관적 노력의 영역을 벗어나는 불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래도 남은 마지막 마음을 가지고 늘 일기를 썼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과중한 부담을 문장으로 적었다. 전투를 앞둔 두려움, 사방에서 밀려드는 고독, 경쟁자 원균에 대한 미움까지 세세히 적었다. 심지어 함께 잔 여자까지도 적었다. 명량해전이 끝나고 일본의 복수에 의해 아들 면을 잃었을 때 이순신은 가슴을 치고 울며 일기를 적었다. <난중일기>였다. 그렇게 그는 담대해졌다.

* 김동조 님의 ‘그와 그녀의 책장’은 <난중일기>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새로운 필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의 저자이자 평생 은퇴할 생각이 없는 투자자. 전직 증권사 애널리스트이자 은행의 트레이더. 신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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