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호모 오덕쿠스

2014.08.07
호모 오덕쿠스로서 웹툰 작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나는 성공한 ‘덕후’다.

몇 년도 부터였을까. 일본에서 건너온 ‘오타쿠’라는 단어가 완전히 한국에 정착하여 ‘덕후’라는 말로 통용되었다. 파생어로 ‘덕력’, ‘덕심’이라는 말도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덕의 일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성공한 ‘덕후’인 나는 솔직히 기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이에서 ‘그들’은 특별한 존재들로 여겨지고 있다.

‘덕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덕력’의 키워드를 ‘쓸모’에서 찾고 있다. 보다 정확히 짚자면 ‘쓸모없음’에 그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쓸모 있는’ 행동은 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일은 우리의 본성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면 할수록 피곤해진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반면 몸에 나쁜 대부분의 음식이 맛있듯 대부분의 쓸모없는 행동은 재미있다. 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추측할 수 있다. 일과 반대로 ‘덕심’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어렸을 때부터 쓸모에 대한 학습을 받아왔다.

당신이 돈을 잘 벌어오면 좋은 남편이야. 네가 성적표를 잘 받아오면 넌 좋은 아들/딸이야. 이렇게 언제나 우리의 가치는 기준과 조건에 따라 정해졌고 그중 쓸데 있는 사람들만이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우리들은 무언가에 쓸모 있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의 쓸모는 우리를 써먹을 사람들에게나 고민거리일 뿐 우리 스스로 우리 가치를 그러한 기준으로 정할 필요는 없다. 이상적인 말일 뿐이고 공허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일단 먹고살려면 무언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직업의 측면에서도 쓸모에 대한 발상 전환은 큰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하려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후회와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의 모습과 그 직업의 진정한 모습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쓸모에 대한 고민을 배제한 채로 일단 그 일을 한다. 모두가 쓸데없다고 이야기해도 그들은 새로운 인류이기 때문에 과감하며 용기 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이러한 방향은 우리의 본능에 더 적합한 방향이기 때문에 ‘덕후’들은 그 일에 미치기도 쉽다. 그러다 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직업이 새롭게 진화하기도 하고 없던 직업이 생겨나기도 한다. 맛집만 찾아다니며 맛에 대한 아카이브를 만들던 ‘덕후’는 맛집 블로거라는 직업을 만들어냈고, 아프리카 BJ들 역시 대부분 그러한 프론티어들이었다. 마치 피아노에는 ‘도와 도# 사이’에 아무런 음이 없지만 그 사이에도 음은 존재하듯(바이올린을 보면 알 수 있다) ‘덕후’들의 쓸데없는 몰입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내거나 적어도 기존의 직업을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기존의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치더라도 새로운 방식을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 쓸모 있는 일들의 직렬연결은 더하기에 가깝지만, 무관계한 일들 사이의 병렬연결이 직관과 만나면 곱하기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덕후’를 뉴타입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기동전사 건담> 세계관의 뉴타입과 달리 태생적으로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덕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을 주지만 쓸모는 없는 행동에 대한 과감한 집착. 우리 모두에겐 그러한 재능이 숨어 있으니까.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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