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실라>, 로컬라이징의 실패 vs 직구의 승리

2014.08.07
한국 대중문화 중 가장 ‘게이 프렌들리’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무대다. <헤드윅>, <라카지>, <거미여인의 키스> 같은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에서부터 <히스토리 보이즈>, <수탉들의 싸움>, <쓰릴 미>와 같은 ‘게이 코드’가 담긴 작품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1년에도 수없이 공연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일 공연을 시작한 <프리실라> 역시 세 명의 드랙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1994년 호주에서 제작된 동명 영화에 마돈나, 신디 로퍼, 도나 썸머 등이 부른 80년대 히트 팝을 얹은 이 주크박스 뮤지컬은 드랙퀸의 무대로 화려함을 뽐내고, 드랙퀸 아빠와 어린 아들의 만남이라는 서사로 뭉클함을 남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8월의 월간뮤지컬은 <프리실라>를 다른 시선으로 살펴봤다.


<프리실라>
라이선스 초연│2014.07.03~09.28│LG아트센터
작: 스테판 엘리엇, 앨런 스콧│연출/협력연출: 사이언 필립스, 오루피나│주요 배우: 조성하·고영빈·김다현(버나뎃), 마이클 리·이지훈·이주광(틱), 김호영·조권·유승엽(아담)
줄거리: 세 명의 드랙퀸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이야기.


[로컬라이징의 실패]
지혜원: 풍성하지만 설익은 밥상 ★★★
볼거리가 풍부하고 마치 라스베가스 쇼 같은 화려함이 있어 신나고 재밌다. 무대며, 의상이며, 보는 재미로만은 대극장 뮤지컬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과연 이 작품이 이대로 국내에서 공연되는 것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드랙퀸, 부자 관계, 유머러스한 표현 방식, 중복되는 배우(고영빈·김다현·김호영)라는 점에서 <프리실라>는 2012년에 공연된 <라카지>와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라카지>는 ‘가족’이라는 테마를 잘 살려내고 부분적인 각색을 통해 로컬라이징에 성공한 데 비해, <프리실라>는 로컬 관객에 대한 이해 부족이 눈에 띄어 아쉽다. 해외에서는 틱처럼 결혼 이후 뒤늦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헤어지는 커플이나 버나뎃 같은 트렌스젠더를 간혹 접하게 되지만, 아무리 동성애 코드의 작품이 많이 공연되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캐릭터와 설정이다. 특히 뮤지컬에 덜 익숙한 대중들도 많이 찾는 대극장 공연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관객이 틱이라는 낯선 인물의 심적 갈등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런 틱의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이 되고 게다가 캐릭터의 내면이나 감정선이 입체적으로 드러나지 못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배우가 틱의 캐릭터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라카지>와 <프리실라>의 연출이 국내와 해외 스태프로 달랐다는 것도 로컬라이징 성패 중 하나의 요인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관객과 소통하기에는 아직 <프리실라>가 넘어야 할 벽이 높다. 단순히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 공감 가능한 여러 함의를 가진 작품인데, 표현 방식이나 로컬라이징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직구의 성공]
장경진: 화려하고 따뜻한 손이 주는 온기의 힘 ★★★★

최근 공연된 쇼뮤지컬 중에서 가장 쇼 같다. 무대 세트는 다소 심심하지만, 좌우를 넘어 상하를 아우르는 동선에 의상의 화려함과 퀵체인지가 더해져 그 빈틈을 메운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I Will Survive’부터 ‘Go West’, ‘Hot Stuff’까지 대부분의 넘버도 귀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힘은 ‘직관성’에서 나온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공연된 기존 동성애 뮤지컬들에 비해 <프리실라>는 에두르지 않고 현실의 직구를 던진다. <헤드윅>이 그간 겪은 일을 스스로 말함으로써 좀 더 개인의 감정에 집중한다면, <프리실라>는 개인의 감정을 생각하기도 전에 성소수자들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 “혹시 내가 예쁜 여자 만나 결혼할지 누가 알아?”라는 말로 엄마를 설득해 투어공연을 위한 버스를 마련해야 하고, 그렇게 설득한 버스마저도 ‘더러운 호모새끼들’이라는 낙서가 적힌다. 이들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서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얼핏 지나가고야 마는 씁쓸한 미소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리는 이유다. 그리고 그 고단함을 달래주는 것이 거창한 물질적 보상이나 의미 부여가 아닌, 그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따뜻한 손이라는 걸 보여줄 때 <프리실라>는 그 어떤 작품보다 더 깊게 ‘가족’을 얘기한다. 성소수자들의 자존감 문제를 넘어 <렌트>나 <애비뉴 Q> 같은 ‘커뮤니티’의 힘을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로컬라이징에 실패한 지점이 있지만, 적어도 타지에 나와 혼자 사는 어떤 이들에게는 그 고단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진제공. 설앤컴퍼니│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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