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의 죽음, 음모론 속에 숨겨진 진실

2014.08.04

지난 7월 22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체 신원을 확인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자 수많은 이들은 사체의 진위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을 펼쳤다. 전 국가적으로 찾고 있던 거물이 행려병자의 행색으로 발견됐다는 것과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게 심하게 부패했다는 것, 한 달 동안 신원 확인이 되지 않던 사체였다는 것 등 미심쩍은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건 조작이며, 유병언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음모론이 등장하기까지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법의학에 있어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해당 인물이 유병언 본인이 맞다고 밝힌 지금조차 57.7%(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달하는 이들이 조사를 믿을 수 없다 말하고, 심지어 국과수 결과를 지지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까지 SNS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대한 의심 앞에서 과학적 증거도 전문가의 권위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사실 유병언 사건에 대한 음모론은 사건의 기괴함에 비해 상당히 헐거운 편이다. 무엇보다 국과수의 DNA 분석이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국과수와 그들이 대동한 민간 법의학자들까지 동참하는 초대형 대사기극이 펼쳐졌거나 유병언이 사실은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수밖에 없다. 둘 모두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유병언이 죽어 발견될 확률과 비교하면 훨씬 낮다. 물론 부와 명예, 종교적 지지까지 얻은 이가 행려병자와 같은 모습의 시체로 발견됐다는 건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그 드라마틱한 낙폭을 차치하고 경찰에게 쫓기던 늙은 도주자가 야산에서 객사할 확률만을 따지면 아주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다. 마침 의료민영화 입법 예고 마지막 날 이 뉴스가 터진 것에 대해서도 국가의 음모를 의심할 만하지만, 사실 현재 한국의 비극은 정부가 딱히 음모를 꾸미지 않더라도 세월호 참사, 의료민영화, 쌀 시장 전면 개방 등 뭐 하나 가벼울 것 없는 누적된 문제들이 언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조차 이것은 대중의 몽매함 때문이 아닌 정부의 책임이라고 성토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해경의 초동 대처 미흡 등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강도 높은 책임 규명을 하기보단 해경 해체 같은 이슈로 묻어버리는 정부의 행태가 의혹을 키우고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음모론에 빠지는 것은 다르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어떤 확신에 대한 검증의 역할을 한다면, 음모론은 오히려 의혹 자체에 대한 확신이다. 흔히 음모론의 경구로 쓰이는 <엑스파일>의 ‘진실은 저 너머에’라는 문구는 어쨌든 진실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자는 방법론적 회의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앞서 유병언 사체에 대한 여러 의혹들은 수사의 논리적 허점에 대한 반론으로서 의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재반박이 들어왔을 때 이를 인정하거나 그에 대한 또 한 번의 논리적 반박을 시도하기보다는 어쨌든 믿을 수 없다는 말로 도피할 때 실천적으로 가장 무의미한 형태의 음모론에 매몰된다.

그래서 신뢰를 잃은 정부의 행태는 음모론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또한 음모론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병언의 사체가 발견된 뒤 SNS에서 유행한 음모론은, 지문이 없다고 해서 지문을 가져오니 유전이 없다고 하면 산유국이 될 것이고, 유병언이 없다고 하면 유병언을 데려올 거라는 식의 ‘드립’에 가까운 형태로 유통됐다. 논리나 증거에 근거하기보다는 음모론의 형태를 빌어 정부나 검찰 및 경찰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앞서의 의료민영화 입법 예고 건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슈에 휘말리지 말고 의료민영화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자고 촉구하는 것과 의료민영화를 유병언 이슈로 덮으려는 정부를 비난하는 건 전혀 다른 층위의 행동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간단히 무시되고 역시 음모론의 방식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즉 그동안 정부가 저지른 잘못과 실수를 보며 누적된 감정을 유병언 시신 발견이라는 기괴한 사건을 방아쇠 삼아 냉정한 조준 사격보다는 감정적 난사를 하는 것에 가깝다. 진실은, 맥거핀일 뿐이다.

책임의 상당 부분이 정부에 있다고 하더라도, 작금의 음모론이 철저히 퇴행적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역시 21세기 한국의 음모론을 대표할 만한 천안함 침몰 미스터리의 경우, 단순히 정부 발표에 대한 불신을 토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 조사단과 군 전문가, 심지어 물리학자까지 끼어들어 치열하게 공방한 바 있다. 여전히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진실을 찾기 위한 실천적 노력은 결코 폄하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음모론은 말로는 진실을 촉구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어떤 논리적 공방도 거부하며 진실이 밝혀질 수 있는 공론장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지금 우리에게 산적한 현안 모든 것들이 공론장에서의 치열한 경합을 통해서만 진실과 결과적 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음모론에 기댄 감정의 배설은 말 그대로 배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얼핏 열심히 부조리와 싸우는 것 같지만 실은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이 착시현상이야말로 음모론 속에 숨겨진 진실이지 않을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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