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입> 15년, 지키고 싶은 세계는 있다

2014.06.17

동네 서점에서 애니메이션 월간 잡지 <뉴타입>을 찾았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2~3년 전만 해도 5권씩 들여놓던 것이 지금은 1~2권 정도로 줄었다 했다. 인터넷 서점 때문에 손님도 줄었고, 잡지 수요도 예전 같지 않은 탓이다. 그래도 <뉴타입>은 “중·고등학생 남자 놈들만 찾아서” 비치한다고 했다. 1999년, 기획기사로 <건담>을 다룬 <뉴타입> 창간호는 재판을 찍어야 할 만큼 인기였고, 7만 부가 팔렸다. 1년 동안은 5만 부가량의 판매 부수를 유지할 만큼 잘나갔다. 그 후 15년, 2014년 7월호로 <뉴타입>은 창간 15주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Dreams come true!” 안영식 <뉴타입> 초대 편집장이 <뉴타입> 한국판 창간호를 봤을 때의 기분이었다. 일본판 <뉴타입>을 5호부터 모았던 그는 “원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회사에서 해보라고 하니까 너무 좋아 밤을 새웠다”고 했다. 신나서 일을 하던 열정은 고스란히 높은 완성도로 이어졌다. 일본판 <뉴타입>의 번역을 통해 최신 정보를 알려주었고, 마니아들을 위해 일본에는 없는 분석 기사와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 소식까지 전했다. 당시에는 일본 <뉴타입>도 그리 오래된 잡지가 아니어서 <뉴타입>에 없는 예전 애니메이션 화보들은 레이저 디스크의 표지를 스캔하고, 저작권 허가를 받아 쓰기도 했다. 가격은 약 6,500원 내외. 부록을 포함해 많을 때는 300페이지가 넘었다. <뉴타입>은 일본 <뉴타입>의 ‘한국어판’이 아닌 ‘한국판’이 된 것이다.

1999년 6월 15일 화요일 <한겨레>에 실린 한국판 <뉴타입> 창간 기사.

<뉴타입> 초창기,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은 PC통신 동호회나 일본어판 책들로 정보를 입수했다. 1988년 창간했던 <월간 우뢰매>는 1990년에 폐간됐고, <애니메이션툰>은 업계지에 가까웠으며, <월간 모션>과 <애니테크> 등은 광고 수주, 일본 애니메이션 라이선스 비용, 여기에 IMF까지 겹쳐 폐간됐다. 반면 1997년 SBS <마법소녀 리나>(원제 <슬레이어즈>)가 시청률 35.7%, 1998년 SBS <슬램덩크>가 36%를 기록하는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그 시기에 <뉴타입>은 일본의 최신 정보와 자료들을 마음껏 전달하며 승승장구했다. 게다가 <뉴타입>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당수 수입하던 도서출판 대원(현재 대원씨아이)이 만들었다. 대원은 <뉴타입>의 라이선스를 구매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저변 확대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만큼 회사는 잡지에 적극적이었고, 다른 잡지들처럼 재정적인 어려움도 없었다. 대원은 <뉴타입>을 위해 케이블 TV 광고까지 했고, 창간 소식은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등 일간지들에서도 다뤘다.

다만 의욕적인 투자와 상당한 팬층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국내의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은 대부분 불법 복제를 이용했고,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 광고는 많지 않았다. 대신에 한국판 <뉴타입>은 게임 광고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밖에 없었고, 의류 광고나 MP3 플레이어 등 애니메이션 소비층이 관심 가질 만한 아이템을 다뤘다. 게임 잡지가 게임 CD를 부록으로 주는 것처럼 애니메이션 파일럿 필름이 수록된 CD 패키지와 같은 부록도 줬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잡지는 한동안 준수한 판매량과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게임은 가정용 콘솔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중심이 이동했고, 게임 회사들의 개임 팩이나 디스크 광고는 점차 줄어들었다.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도 1990년대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붐과 함께 국내 작품의 제작이 잠시 늘어났지만 대부분 결과는 좋지 않았다. 거액이 투자된 <원더풀 데이즈>의 처참한 흥행 결과는 제작 환경을 더욱 위축시켰다. 그나마 10페이지 정도를 특집으로 꾸릴 흥행작이 나오면 잡지 판매량도 올라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작품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뉴타입>의 신우미 편집장은 “<기동전사 건담 SEED>와 <강철의 연금술사> 이후로 이렇다 할 대작이 없다”고 말했다.


2014년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은 인터넷과 케이블 TV, IPTV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케이블 TV는 일본과의 시차를 줄이기 위해 수입한 작품을 더빙 없이 자막으로 방송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공짜로 볼 수 있는 정보와 리뷰가 넘쳐난다. 이제 <뉴타입>은 마니아가 아닌 ‘애니메이션 입문자’를 위해 잡지를 만든다. 시장 변화에 맞춰 국내 케이블 TV에서 동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과 일본의 최신 애니메이션 정보를 전하고, 방송 편성표를 싣는 것이다. 구독료만으로 제작비를 채우기 어려워 판형을 줄였고, 페이지도 150쪽으로 줄었다. 또한 미소녀 계열 애니메이션 계간지 <냥타입>과 라이트 노벨 레이블 ‘NT노벨’, 그리고 단행본 출판 등으로 <뉴타입>의 부족한 제작비를 채우려 노력 중이다. 

마니아들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위해 잡지를 사고, 최초의 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투니버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명감독들을 소개하던 그런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렸다. 신우미 편집장은 “예전에는 잡지를 사면 돌려 보는 문화도 있었는데,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들키면 이상하게 보거나 왕따를 당한다고, 부록을 너무 (오타쿠) 티 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달라는 독자엽서도 온다”고 말했다. 누구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예전 같은 열기는 없다. 애니메이션과 운명을 함께하는 <뉴타입>도 좋았던 시절을 지나 고군분투한다. 판매 부수는 줄었고, 독자 엽서도 예전만큼 오지 않지만 15년 동안 애니메이션을 다뤄온 잡지를 계속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많던 영화, 만화, 게임, 아이돌 잡지들은 그 사이 사라졌다. 이 정신없이 빠르고,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서 <뉴타입> 하나쯤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그러나,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 전했던 메시지. “그래도 살아라.” 그때처럼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교복을 입고 <뉴타입>을 사보던 그때처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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