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김민희의 시선집중

2014.06.09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친구가 자리를 뜬 사이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손목을 잡혀 화들짝 놀라지만 그가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어줄 때 굳이 뿌리치지 않고 친구가 돌아오자 가느다란 손가락을 접어 감추던 여자아이가 화면을 장악하는 데는. 친구의 남자친구와 눈이 맞은 나쁜 계집애라 욕하기에 앞서 그 여자애가 전화를 할까 말까 궁금해진 이유의 팔 할은 그 얼굴에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당황하면서도 설레는 표정을 짓던, 얄밉지만 세상 모든 여자아이들이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짧은 드라마의 주인공은 1999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민희였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시선을 끄는 사람은 스타가 될 기회를 얻는다. <쎄씨>나 <키키> 같은 하이틴 패션잡지 모델들이 여학생들의 워너비던 90년대 후반, 이대 앞 옷가게에 갔다가 우연히 캐스팅된 김민희는 당대의 인기 모델이던 배두나, 신민아, 전지현 등과 함께 최고의 커버 걸로 떠올랐다. 눈이 크지도 코가 높지도 않은, 그래서 전통적인 미인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도드라진 광대뼈 위로는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간 눈매가, 아래로는 뾰족한 턱이 묘하게 긴장감 느껴지는 인상을 결정지었다. 무엇보다 앙상하다시피 마른 몸에 길쭉길쭉한 팔다리는 그 자신도 “왠지 더 괴상해 보이고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느낌”(2007, <씨네21>)이라 할 만큼 독특한 피사체로서 김민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부스스한 호일 펌에 생기 없는 표정, 수업 시간 내내 자다가 그럴 거면 나가 있으라는 교사의 지적에 태연히 나가버릴 만큼 남들을 개의치 않는 KBS <학교 2>의 일진 신혜원은 김민희를 통해 무심해 보이면서도 호기심을 끄는 소녀가 되었다.

물론 시선을 끈다는 것이 언제나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작품 안으로 숨어들 수 있는 테크닉을 갖추지 못한 채라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낯가림이 심하다는 성격답게 시간이 좀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SBS <순수의 시대>를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 김민희는 여전히 눈길을 끌었지만 어색하거나 부족했다.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는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획득하지 못하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훈장이 아닌 허울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배우의 시간은 대중의 시선 앞에 더 빨리 흐른다. 스물여덟을 코앞에 두고 찍은 <여배우들>에서 김민희는 “난 놀구 있는데, (김)옥빈 씬 막 끝나고 노는 거잖아요. 좋겠다… 난 이십 대가 너무 아까워. 시간이 너무 빨리 가. 한 건 없고”라며 하소연했다. 어디까지가 연기고 얼마나 그의 진심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뭘 좋아하고, 어디에 가고 싶고, 하고 싶었던 건 확실했던”(2013, < GQ >) 덕분일까. KBS <굿바이 솔로>에 출연하기 위해 몇 번이나 노희경 작가를 찾아가 오디션을 본 고집, 혹은 근성은 그에게 의미 있는 분기점을 만들어냈다. 나이 든 건달과 대책 없는 사랑에 빠져 인생의 그늘에 들어서는 카페 주인(<굿바이 솔로>), 피로에 젖어 뚱한 얼굴을 한 채 악착같이 취재에 파고드는 신문기자(<모비딕>)가 김민희로부터 생활감을 끌어냈다면 <화차>는 이 묘한 느낌의 배우에게 더 강렬한 드라마를 부여했다. 사람을 죽이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자의 살갗 위, 셀 수 있을 것처럼 마디가 드러난 등뼈는 그 자체로 그로테스크한 효과였다. <연애의 온도>에서 마침내 김민희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저 지금 기분 되게 좋은데” 하고 하하 웃곤 방에서, 버스에서 혼자 흐느껴 우는 은행원 장영이 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김민희를 ‘재발견’했다 말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 되었다.

시선을 끌되 이야기로부터 이탈하지 않는다는 것은 배우의 특별한 능력이다. 킬러 곤(장동건)의 실수로 아이를 잃은 여자 모경으로 등장하는 <우는 남자>에서 김민희는 밸런스가 무너진 영화 한가운데서도 납득될 만한 연기를 펼친다. 죽은 아이의 유류품을 가지러 가는 날에도 아이라인 그리는 걸 잊지 않는 이 늘씬한 미인이 유치원생 딸을 둔 엄마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지만, 남들의 눈으로부터 벗어난 순간이면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모경의 처절한 감정은 설정을 넘어 전달된다. 무수한 총탄이 퍼부어지고 거친 남자들이 육박전을 벌이는 전쟁터에서 진기라고는 다 빠져나간 듯 마른 몸 위에 척척 감긴 옷자락의 무게조차 감당하기 힘겨워 보이는 모경만이 일관되게 긴장감을 자아내는 존재라는 것은 이 영화의 아이러니다. 여전히 비일상적인 분위기와 비현실적인 몸을 가졌지만 망가진 이야기를 어떻게든 끌고 가는 힘도 갖게 된 배우, 그래서 막이 내린 뒤 떠오른 질문도 이 하나다. 김민희는 다음에 또 뭘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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