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림 “연기를 밥벌이라 생각하는 순간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게 됐다”

2014.04.16
조각 같은 몸매와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분위기. 2009년 데뷔한 이후부터 각종 CF에 등장했던 송재림은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자체로 완벽한 피사체였다. 마초들이 우글대는 KBS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이하 <감격시대>)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활용해 단동 지주 모일화를 유독 눈에 띄게 만들었다. 언제나 예를 갖추고 멋을 아는 모일화는 송재림의 손짓,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느 순간 살기를 내뿜는 카리스마를 얻었다. MBC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의 운, <투윅스>의 김선생을 거친 송재림은 어떻게 자신의 독특한 분위기를 캐릭터에 녹이며 성장할 수 있게 된 걸까. 나른하게 움직이지만 연기의 디테일을 파고들 때에는 힘이 느껴지는 배우 송재림을 만났다.
화이트 차이나 카라 셔츠 더셔츠스튜디오, 워싱 데님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후반부에 다시 투입된 기분을 “쾌변한 것” 같다고 했더라. 종영한 소감은 어떤가.
송재림
: 먹먹하다. 이상하게 조금 가슴도 아프다. 연애하다 헤어진 기분이랄까. 더 이상 모일화로 연기할 수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송재림으로서 친해진 사람들과 헤어지게 돼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게 매번 힘들긴 한데 모일화는 좀 더 특별했다. 대본 2장으로 모일화란 캐릭터와 처음 만났지만 그의 우아함이나 ‘똘끼’는 연기하면서 하나하나 다 만들어갔던 거거든.

그런 모일화의 특징은 어떻게 구체화시켰나.
송재림
: 모일화가 여성적인 캐릭터라 해서 여자처럼 연기하겠다고 하면 사실 남자가 여자 흉내를 내버리는 꼴이 된다. 모일화는 여성적이라기보다 무림의 고수고 얼굴이 곱상하지만 구역의 대장이며 지켜야 할 이들이 있기 때문에 잔인할 수도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동시에 멋을 알고 차를 즐기는, 낭만 주먹의 한 사람인 거지. 그래서 모일화의 우아함과 알 수 없는 속내를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 단순히 무표정이나 포커페이스로는 아니고 다양한 표정이 빠르게 극과 극을 오가는 식으로 연기했다.

처음 만난 데쿠치가야(임수향)가 일본 낭인에게 살해된 어머니를 언급하자 모일화의 눈빛이 확 달라지더라. 캐릭터의 전사가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눈빛만으로 보는 이를 설득시켜야 했을 때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뒀나.
송재림
: 일단 모일화를 찾아온 손님인 가야가 차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모일화를 도발한 상황이었다. 모일화로서는 자신을 굉장히 여유로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무술 강자라 생각하는데, 내 구역에 온 적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쉽게 동요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입술에 묻은 찻물도 살짝 닦으면 되는데 손으로 세게 입술을 누르며 닦아내지 않나. 일국회의 가야 ‘히메님’ 앞에서 입술을 만지는 것 자체가 도발이라 생각해서 한 행동이다. 그런 식으로 서브 텍스트를 변환시켰다.

서브 텍스트라는 것이 지문으로 다 나와 있던 건 아니었을 것 같다. 하나하나 직접 해석을 했던 건가.
송재림
: 대본을 받으면 모든 걸 연기할 수 있는 단어로 바꾼다. 예를 들어 지문에 ‘열정적으로’라고 나와 있으면 열정적이라는 것은 굉장히 추상적인 거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연기할 수 없는 언어인 거다. 그래서 미친놈처럼 행동하는 건지 혹은 불에 덴 듯 하는 건지 브레인스토밍을 해본다.

모일화의 손짓이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인사 등의 디테일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건가.
송재림
: 그렇다. 인터넷 카페에 대본이 올라오면 한 면에 두 장 인쇄를 한다. 이상하게 그 사이즈로 봐야 더 잘되는 것 같더라고. (웃음) 출력해서 신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손짓은 어떻게 하며 시선은 마지막에 누구에게 줄까를 디테일하게 쪼개간다. 5회에서 모일화가 일국회 사람을 죽이고 무심한 듯 먼 산을 바라보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턴 것도 그렇게 나왔다. 설두성(최일화)에게 인사할 때도 고개는 옆으로 기울이되 눈은 똑바로 떴다. 어렸을 때 우리가 많이 혼나지 않았나. 어디 어른한테 인사할 때 눈을 똑바로 뜨냐고. (웃음) 브레인스토밍할 때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다 도움이 되더라.

경험을 세세하게 다 기억하는 편인가 보다.
송재림
: 평소에 메모하고 관찰하고 만화 보는 거 좋아한다. 특히 만화는 일종의 콘티 같은데, 부감과 앙각 등 모든 앵글이 그 안에 다 있고 극적인 순간의 표정도 잘 표현돼 있다. 어떤 사무라이 만화를 보면 되게 나른한 사무라이가 큰 베개에 기대 있던데 참 매력적이더라. 그래서 모일화를 연기할 때도 그런 걸 많이 참고했다. 가끔은 고양이 행동에서도 따 왔고. 왜, 인터뷰하면 롤 모델이나 연기할 때 영향받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시지 않나. 근데 나에겐 평소 이렇게 보고 기억해두는 모든 게 다 롤 모델이다. 이 선배와 연기하면 이분만의 호흡이 있어 따라하게 된다. 마치 사투리가 옮아가듯, 연기를 하다 보면 그런 게 자연스레 체화되더라.

그래서 신정태(김현중)부터 정재화(김성오)처럼 후반부에 만난 인물까지, 어떤 캐릭터들과 붙어도 ‘케미스트리’가 좋았던 걸까.
송재림
: 동화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이 사람과는 어떻게 해야 분위기를 잘 맞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모일화에게 정태는 은인의 아들이면서 새파랗게 어린 게 덤비니까 가끔은 귀엽기도 한 아이라, 그런 의미로 정태에게만 윙크를 했다. 나름 모일화식 애정 표현이었던 거지. 반면 정재화와는 티격태격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마지막 회 트럭 신에서 정재화에게 “그러게 제가 복면이라도 준비하자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대사만 있었는데, 모일화가 핀잔을 주고 자기만 복면을 쓰면 웃길 거 같더라. 그래서 스타일리스트 동생에게 부탁해 안 쓰던 패딩 안감을 찢어 현장에서 복면을 만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연기는 누구를 만나든 그렇게 열린 상태에서 서로 호흡을 교환해가며 만들어가는 것 같다. 또 그런 연기를 추구하고 있고.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을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깃털에 비유한 것과 같은 맥락인가.
송재림
: 당시에는 피해의식과 자괴감의 표현이었다. 인생이 힘들어 젖어버린, 자기 능력으로는 어디에도 못 가는 그런 깃털이 나인 거 같았거든. 근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 해가 뜨고 땅바닥이 말라서 바람이 불고 운때를 잘 만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게 깃털이다. 비둘기에 박혀 있는 깃털은 비둘기가 가는 곳만 갈 수 있는데 빠져버린 깃털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 같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오간다. 사람인 이상 이 직업을 좋아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배우가 된 걸 후회하기도 하거든.

지금의 자신은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깃털이라 생각하나.
송재림
: 어느 정도 그런 편이다. 바람을 타고 부유하는 상태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연을 날리는 상황 같기도 하다. 깃털이 하늘을 떠다니며 운명에 순응하는 것처럼, 연은 바람이 불 때 바람 부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야 날지 않나. 나도 지금 사람들에게 나를 각인시키고 더 뛰어야 하는 상황이라 조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왜 그렇게 불안한 것 같나.
송재림
: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이 늘 선택받는 직업이니까. 그리고 어렸을 때는 자신감이라는 게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니 자신감이 없어지더라. 무기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는 거지. (웃음) 나이는 계속 먹어 가는데 수동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았었고. 말없이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건 정말 어디부터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감이 전혀 안 오거든. 히키코모리를 바깥으로 꺼내는 것처럼 어렵다. 그런 역할을 많이 해오다 보니 나이는 먹는데 자신감은 없고 그래도 지금까지 해온 게 연기라 놓을 수도 없고 막막했다. 아마 <해품달> 끝나고 나 자신에게 너무 창피해 2년 정도? 그렇게 많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연기를 하는 이유는 뭐인 것 같나.
송재림
: 이상하게 미련이 남더라. 연기를 관뒀을 때를 생각하면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이제는 그런 미련과 배수진을 치고 임하는 마인드나 직업의식이 동력이다. 신기한 게, 연기를 직업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배우라는 것 자체를 사랑하게 되더라. 단순히 꿈이 아니라 이게 내 밥벌이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니 정도 들게 됐다.

보통은 일을 일로만, 현실적으로만 대하면 재미도 못 느끼고 지치지 않나.
송재림
: 그러게. 사실 이렇게 생각해도 불안한 건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다. (웃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후회하고. 하지만 일을 할 때는 그런 불안함을 잊는다. 현장에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내가 현장이 가장 좋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고.

그럼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송재림
: 불안은 혼자 삭히려고 노력하고 따로 바쁘게 지내려고 하지만, 그냥 우울하게 지내는 것 같다. (웃음) 작품의 여운을 오래 붙잡는 이유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다음을 생각하려고 하는데, 앞으로는 일상적인 연기에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tvN <환상거탑>이나 MBC QueeN <네일샵 파리스>에서 했던 걸 지금 보면, 그때보다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확실히 수월해진 것 같거든. 모일화도 직접 부딪치면서 만들어갔듯, 다른 기회가 오면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다.

<감격시대>로 이전의 과묵한 이미지와는 다른, 여우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배우로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갈증을 푼 것 같나.
송재림
: 그렇다. 실제 여우 같은 성격이 있기도 해서 나로서는 재미있었다. 후반부에 정태에게 진 이후로는 장난스러운 모습까지 많이 보여드린 것 같다. 작은 신이라도 원평(이준석)이와 합을 맞춰 눈을 희번득하게 뜬다든지 어떻게든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거든. 자칫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만 하면 밋밋할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연기 맛이 달라진다는 걸 알았다. 모일화가 내 터닝 포인트인 거지.

어렸을 때 엄하게 자란 탓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익숙하다고 들었는데, 배우는 자신을 표현하는 직업이다. 연기를 하며 성격도 변하는 것 같나.
송재림
: 낯을 가리는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꼭 배우로 살면서가 아니라 천성이 소심해도 그걸 부정하고 지를 수 있는 배짱은 나이를 먹어서 생긴 것 같다. 어디에 가서 날 내세우지는 않지만 명분이 확실할 때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연기를 하면서 표현을 하는 것은 이제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송재림에게 바라는 모습과 배우로서 보여주고 싶은 것 사이의 적정선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송재림
: 결국에는 다 개인주의다. 이기주의와는 다른 건데, 난 나를 위해 일을 한다. 그게 당연한 거고 대신 덤으로 내가 날 위해 한 일을 보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고마운 거다. 내가 선택받는 직업을 갖고 있다 해서 대중을 겨냥해 일을 한다면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팬들과 좋은 걸 함께 나누고 싶지만 그들에게 좌지우지되진 않을 거고 내 만족을 위해 일하고 싶다.

UN이 지정한 5개국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처럼 배우로서도 구체적인 목표가 있나.
송재림
: 아, 언어 배우는 건 진짜 너무 어렵더라. (웃음) 일본어는 조금 하지만 중국어는 문법책만 쌓아두고 있는 상황이다. 배우로서는 사실… 좀 더 멋있게,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고, 목표는 단기적인 것밖에 없다. 올해 안에 다작을 하자는 거다. 생활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현장에 계속 있고 싶다. 물론 웬만하면 로맨틱 코미디의 현장이었으면 좋겠다. 난 지금까지 늘 남자와만 ‘케미’가 터져. (웃음) 어떤 남자랑 붙어도 무조건 ‘케미’가 터지는 편인데 이제는 여자와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스타일리스트. 이선희│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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