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장 “16년 동안 사심을 채우려고 회사를 다녔다”

2014.02.06
지난해 <파운데이션>을 복간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하 <애거서> 시리즈) 77권을 완간한 출판사.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황금가지가 장르문학 시장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장르문학의 걸작들을 복간하는 것은 물론, <파운데이션>처럼 다른 책들이 범접하기 어렵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책 디자인과 기존의 오역을 바로잡는 번역은 장르문학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한국 SF 단편선>,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등을 꾸준히 내놓으며 장르문학 작가를 양성, 장르의 토대를 다져가고 있다는 점은 황금가지를 단지 많은 출판사 중 하나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하지만 의문 하나. 과연 황금가지의 이런 노력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만큼 장르문학 시장이 성장했을까. 황금가지가 또다시 정성스런 디자인의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를 낸 지금, 황금가지의 김준혁 편집장에게 물어보았다. 장르문학은, 그리고 황금가지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애거서> 시리즈가 77권으로 완간되고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이하 <에디터스 초이스>) 세트도 나왔다. 다 끝낸 기분이 어떤가.
김준혁
: 완간은 했지만, 사실 두 권을 더 낼 생각이다. (웃음) 완간까지 14년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독점으로 계약했는데, 그 이전에 낸 책들은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보상 저작권을 갖고 있었던 데다 저작권사와의 충돌로 거의 4년 동안 책도 못 냈었다. 저작권사에서 한국에 번역된 권한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해 해외로 변호사도 보내고 돈도 많이 들었다. 나중에 해결이 된 뒤에는 기뻐서 떡도 돌렸다. (웃음) 그사이에 MBC <무한도전> ‘세븐 특집’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패러디하면서 다른 출판사의 책이 시장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어찌 됐건 완간되어 기쁘다.

엄청난 양의 책을 내겠다고 계획했을 때는 그만큼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김준혁
: 사실 내가 처음에 기획한 건 아니다. 선배들 중에 <셜록 홈즈> 시리즈로 밀리언셀러를 만든 분이 있었다. 또 <아르센 뤼팽> 시리즈도 잘됐다. 당시 ‘3대 추리소설’ 하면 애거서 크리스티가 빠질 수 없었고, <셜록 홈즈>와 같이 묶어서 마케팅하면 잘될 거라 생각했다. 마침 그때 정식으로 계약한 출판사가 없었는데 저작권사에서 요청이 왔다. <애거서>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양분된 시장에서 독점은 지켜지지 않고 우리 계약조차 흔들려서 힘들었다. 그리고 <애거서> 시리즈와 같은 전집은 뒤로 갈수록 판매는 줄어들지만 계약금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책을 만들 때는 77권을 전부 새로 번역, 디자인, 편집을 다시 해야 하고. 시리즈를 담당하는 최고운 편집자가 <애거서>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일일이 다시 손보고 고쳤다.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

정성을 들인 만큼 표지 디자인도 굉장한 완성도로 나왔다. 이렇게 디자인에까지 신경 쓰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김준혁
: 대략적인 방향을 디자인팀에 전달하긴 하지만, 디자인팀의 공이 크다. 초반에 디자인이 왔을 때는 표지가 너무 예쁜데 소설 같은 느낌이 없어서 걱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케팅팀에서는 책을 사서 볼 독자들은 이 책이 소설인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팬들에 의해서 전파될 거라고 했다. 디자인이 오면 단순히 확인하는 게 아니라 연관 부서에도 물어보고 다니는 절차를 거치고 시장 반응도 확인한다.

누가 읽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 같다. <애거서> 시리즈는 양장본으로, <에디터스 초이스>는 반양장본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독자에 따라 다르게 타깃팅을 한 건가.
김준혁
: 기존 <애거서> 시리즈처럼 양장으로 하려면 비싸다. 우리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 유지하려면 반양장으로 절충을 해야 했다. 반양장은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그리고 <파운데이션> 시리즈나 <에디터스 초이스>는 특정 팬들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서 반양장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팬이 아닌 사람들을 팬으로 만들고자 하는 게 목표니까. 고립된 문화에서는 먹고사는 게 한계가 있다. 그래서 팬들도 만족시키면서 대중도 사로잡는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 점에서 팬들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고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책을 사면 <애거서 크리스티 A to Z>라는 무가지를 주기도 했다.
김준혁
: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 A to Z>로 책 판매 수입이 올라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출판 홍보는 매우 긴 호흡이다. 설령 이걸 보고 책을 사는 사람은 없더라도 받은 사람이 보고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좋다. 그래서 “황금가지 좋아” 이것도 효과이고, 이 정도만 돼도 만족한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파운데이션> 때는 독자 시사회도 했었다. 그만큼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 같다.
김준혁
: 사실 ‘팬 시장’이란 걸 이영도 작가의 책을 내면서 알게 되었다. 2004년도에 이영도 작가의 책을 낼 때 독자 편집자를 뽑았다. 정말 팬인 분들을 뽑아서 작품을 보여주고 어떻게 표기를 할지, 편집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들어서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도 만들었다. 카페에 과거 흔적들이 있는데, 추적해보면 독자들의 의견이 많다. 그 의견 중 7~8명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공통된 의견을 구체화시켜서 상품을 만들면 “그 상품 괜찮다”는 입소문이 나오고 성공한다. 그 DB가 아직까지 도움이 된다.

그 DB가 다른 팬들에게도 적용이 되나.
김준혁
: 그렇다. 팬들의 성향이 다 비슷하다. 이때의 경험으로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만들었다. 디자인도 제대로 만들고, 박스 세트도 만들고, 서비스 상품도 만들었다. 또 특정한 곳에 글을 올리면, 팬들이 이걸 퍼뜨린다. 내가 좋아하는 건은 남들도 누려야 한다는 게 팬들의 기본 생각이다. 독자들이 알아서 마케팅을 해준다.

반면에 팬들은 눈높이가 굉장히 높아서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김준혁
: 팬들은 도움도 되지만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기 때문에 힘들다. 예전에 <반지의 제왕>을 냈을 때, 거기서 ‘Middle-Earth’를 ‘중원’이라고 번역하니까 중원이라는 표현이 무협지 같다고 항의 전화가 왔다. 지금은 <반지의 제왕>이 대중적인 소설이지만 당시에는 특별한 포지션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정식 라이선스 판으로 온전하게, 제대로 나와야 되는 책이었던 거다. 그러니 중원이라는 번역은 용납할 수 없었겠지. 그때 눈물 나게 항의를 받은 뒤로 지금은 내공이 쌓였다.

그만큼 팬들이 번역에 굉장히 민감해한다.
김준혁
: 번역하시는 분들은 나름 자존심이 있다. “나는 내 스타일이 있다”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팬과 번역자의 중간을 절충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만, 1년에 한 명의 편집자가 3~40권의 책을 내니까 번역을 다 확인할 수가 없다. 장르 소설들을 시리즈로 펴내는 <밀리언셀러 클럽> 같은 경우 초창기에 50권을 빠른 시간 안에 내는 게 중요해서 실수가 많았다. 질을 높이려고 밤새서 한다고 했지만 인력의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크로스 교정을 본다. 내가 못 본 걸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으니까.

50권을 빠르게 내야 할 이유가 있었나.
김준혁
: <밀리언셀러 클럽>은 처음에 책이 안 나갔다. 그래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의 판매 추이 그래프를 확인해보니까 역시 책이 하나도 안 나가다 한 50권쯤 되니까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호밀밭의 파수꾼>의 영향도 있긴 했다. 그걸 보니 우리도 50권을 만들면 움직이기 시작하겠다고 판단해서 짧은 기간 동안에 책을 많이 냈다. 다행히 50권 정도 나왔을 때 <나는 전설이다>와 <13계단> 그리고 <살인자들의 섬>까지 동시에 3개가 뜨면서 순탄해졌다. 책이 영화화하면서 잘 팔리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영화 때문에 잘 팔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소설이 알려지고, 영화로 시너지가 나야 한다.

처음부터 책을 고르는 안목이 중요할 것 같다.
김준혁
: 안목이라는 걸 잘 모르겠다. 나는 이른바 ‘덕력’이 중급도 안 된다. 다만 내가 소비자로서 “나라면 이 정도면 살 거 같다”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낼 거야” 이것도 크다. 사실 난 좀비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워킹데드> 만화책도 내고, 좀비 문학상도 만들었다. 내가 편집자로서 경력이 있으니까 어떻게 잘 포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거지, 안목은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가끔 실패한다. 지금은 흑자 전환을 했지만, <워킹데드>는 초반에 힘들었다. 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둘 줄 알았는데. (웃음) 자기가 좋아하는 입장에서 재미있는 것과 대중의 바로미터는 다르다. 그래서 이제는 확신하려고 하지 않는다.

편집장으로서 확신이라는 것은 어떤 거 같나.
김준혁
: 확신이 독이다. <워킹데드> 이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제노사이드> 같은 경우도 읽으면서 재미있는데 내용이 어려웠다.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가 친한파라 한국 친구도 있고 태권도도 배우고 책에서도 한국인이 등장해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걸 노리고 주요 일간지 기자들을 불러서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반응이 없더라. 그런데 예상외로 까칠한 비토씨라는 분이 네이버에 글을 너무 재미있게 써주시고, 그게 네이버 메인에 올라가면서 판매가 좋아지더니 성공했다.

장르문학의 팬이자 편집장이기도 한 입장에서 늘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있겠다. 장르문학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나.
김준혁
: 1990년대에 판타지 소설도 쓰고 좋아하기도 해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고 그랬다. 그러다 어쩌다가 황금가지에 입사하게 됐다. 당시 나 같은 사람들이 지금은 30~40대가 되어 구매층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파운데이션> 독자 시사회 참여를 신청한 사람이 200여 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에 해당되는 사람들 중 40대, 50대는 물론 심지어 60대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나이가 올라갔다.

1990년대와 비교해 지금 장르문학 시장은 어떤 것 같나.
김준혁
: 예를 들어 지금 젊은 세대는 SF에 대해 전혀 모른다. 지금 SF를 쓰는 배명훈 작가 같은 분들도 30대고, 읽는 분들도 30대다. 10~20대와의 격차를 좁히기가 어렵다. 그들에게는 가볍고 쉽게 읽히는 네이버 웹소설 같은 글이 더 매력적이다. 지금의 웹소설 작가와 소비자들이 더 성장하면 깊이가 있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편집자의 관점에서 이런 시장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김준혁
: 시장 전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구세대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끌어와야 한다. 나는 ‘돈벌이’란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편집장으로서 어쩔 수 없다. 보통 출판사들은 10권을 내서 8~9권을 실패하더라도 그중 1~2권을 성공하면 된다. 성공한 책으로 내가 좋아하고 사심이 있는 책에 투자한다.

편집자는 사심이 없으면 안 되는 직업인가?
김준혁
: 맞다. 나는 아니지만 직원들은 좋은 학교 나오고 능력도 뛰어난데 박봉이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일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내가 “나 좀비 좋아하고 공포문학 좋아해, 퍼트려야지. 으하하하하” 하면서 계속 책을 내는 것처럼. (웃음) 가끔 일하기 싫은 날 왜 내가 16년 동안 회사를 다녔나 생각해보면, 사심을 채우려고 다녔다는 확신이 든다. 황금 드래곤 문학상을 만들었던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나도 소설가가 되려고 글을 써봤기 때문에, 장르문학의 국내 작가도 발굴하고 소개도 하면서 스스로 만족이 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일을 맡길 때도 그들이 좋아하는 걸 알고 시킨다.

앞으로 황금가지라는 브랜드의 방향은 어떤 것일까.
김준혁
: 황금가지의 브랜드 이미지는 ‘이영도를 비롯한 장르문학 작가를 꾸준히 소개하는 큰 출판사의 계열사’ 이 정도다. 그런 정체성에 어떤 실망감도 주지 않는 게 목표다. 예전에 <어스시> 시리즈가 3권이 나왔었는데, 선배 편집자가 다음 권 판형을 완전히 바꿔서 4년 뒤에 책을 냈다.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전 판을 산 사람들에게 무료로 책을 교환해줬다. 물론 손해다. 하지만 내가 그 책을 모으고 있는 독자라면 너무 실망할 거다. 그런 믿음에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

다른 장르문학을 펴는 곳과는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싶나.
김준혁
: 대부분 번역본을 펴내기 때문에 차별점을 가져갈 게 별로 없다. 진짜 차별화는 작가진을 다르게 하는 거다. 공포문학 작가들하고 계속 책을 내고 있는데, 다른 데서는 책을 잘 안 내준다. 그리고 외국처럼 편집장이 붙어서 작가랑 같이 책을 구상해서 내는 방식으로 국내 작가를 키워보고 싶다. 또, 우리나라는 장르문학 전문 평론가가 없다. 책이 나와도 평론할 사람이 없는 거다. 그래서 평론가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밀리언셀러 클럽> 책 중에 국내 작가 책이 100권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직 20권에서 멈춰 있다. 그게 유일한 한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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