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② 허드슨 부인의 은밀한 편지

2014.01.07

기쁘다 셜록 오셨네
① 21세기 ‘덕후’를 집결시킨, 19세기에서 온 그대
② 허드슨 부인의 은밀한 편지
③ 성우 장민혁·박영재 “<셜록>은 더빙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것 같다”
④ 셜록부터 우사미 짱까지,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들

셜록 홈즈는 게이일까, 아니면 무성애자일까, 혹은 ‘그 여자’ 아이린 애들러에 대한 마음을 평생 간직했던 로맨티스트일까? 분명한 건 코난 도일의 원작 소설에서부터 BBC의 <셜록>까지, 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남자의 유일한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가 존 H. 왓슨 박사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탐정과 조수인 동시에 역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브로맨스’ 커플이기도 한 두 사람의 관계는 특히 각국의 여성 팬들의 볼에 홍조를 띠게 하며 수없이 많은 2차 창작물을 탄생시킨 바 있다. <아이즈>에서는 현재를 배경으로 한 <셜록>에서도 여전히 베이커가 221B의 집주인으로 두 남자의 생활 반경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자, 허드슨 부인의 따사로운 시선으로 관찰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입수했다. 다음은 허드슨 부인이 미국에 살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이웃 마거릿 먼로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친애하는 마거릿
드디어 2층에 들어올 사람을 구했어요. 당신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플로리다에 있을 때 월터 일이 깨끗이 해결되도록 도와준 셜록이 지금 런던에 살고 있다우. 셜록은 성 바르톨로뮤 병원에서 뭔가 피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것 같은데 며칠 전 한 남자를 데려와 함께 살 사람이라며 인사시켜 주더군요. 존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다리를 좀 절긴 하지만 아주 귀여웠어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관계인 것 같은데 동거라니 요즘 사람들이란…. 물론 모든 게 우리 때와 같을 수는 없겠죠. 게다가 셜록은 좀 남다르긴 해도 착한 아이거든요.

그래서 난 존에게 조심스럽게 침실이 하나 더 필요하면 위층에도 방이 있다고 말해줬어요. 셜록은 방을 아주 어지럽히는 편이라 책더미는 물론 반년 치 <타임즈>며 해골이 여기저기 쌓여 있거든요. 가끔은 그런 방을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자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존은 당연히 자기 침실이 필요하다며 펄쩍 뛰더군요. 난 나이 든 사람이지만 별일을 다 봐서 괜찮다고 넌지시 말해줬는데, 존은 좀 예민한 남자 같아요. 그리고 셜록이 곧바로 어디선가 일어났다는 연쇄살인 사건 소식을 듣고 실실대며 나가버리자 가엾게도 아픈 다리에 대고 화풀이를 하더군요. 물론 나도 내 엉치뼈가 아프거나 말거나 월터가 휑하니 나가버릴 땐 얄밉기 그지없었죠. 어쨌든 두 사람이 와준 덕분에 은행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조금씩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예전에 당신이 궁금해했던 와인 크림 레시피를 동봉해요. 중요한 건 질 좋은 계피를 쓰는 것과 계란을 아끼지 말고 한 다스 몽땅 넣는 거랍니다.

P.S. 존에게는 해리엇이라는 술꾼 누나가 있는데 클라라라는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 소송 중이라고 해요. 불쌍한 존, 그런 일을 옆에서 지켜봤으니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그리운 마거릿
오래된 카펫에 생긴 피 얼룩은 어떻게 지우는 게 좋을까요? 셜록은 미안해하며 모로코산 새 카펫을 두 개나 사주겠다고 하지만 이건 언니 마사가 내 결혼 축하 선물로 사줬던 거라 버리고 싶지 않아 베이킹 소다에 샴푸로 세 번이나 닦았는데도 얼룩이 남아 있네요. 물론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토마토소스나 그런 걸 엎지른 줄 알겠지만, 실은 사람 머리에서 나온 거니 말이죠.

얼마 전에는 존과 셜록이 밤늦게 여자 한 명을 집으로 데려왔어요. 셋이 함께 중국의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하는데, 나도 별일 다 봐온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소위 말하는 ‘Open relationship’이란 걸까요? (주: 여기서 허드슨 부인은 ‘threeso’라는 단어 위에 두 줄을 그어 지웠다. 아마도 ‘threesome’을 떠올렸다가 떨쳐낸 듯하다.) 어쨌든 누구라도 배가 고픈 건 안 되니까 프루트펀치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좀 갖다 줬어요. 절대 그들이 뭘 하는지 훔쳐보려던 건 아니었답니다. 여자는 그만하면 미인이었는데 그 후로는 다시 오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그런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건 쉽지 않겠죠.

친애하는 마거릿
나쁜 일을 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나쁜 일이 생기는 거라는 말 들어봤어요? 월터가 자주 하던 농담인데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밀방망이로 그를 때려주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기회가 없네요. 게다가 냉장고에 사람 머리가 들어 있는 걸 발견한 날 벽에 총구멍이 여러 개 나고, 맞은편 건물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우리 가게와 집 유리창이 모두 박살 나는 걸 보니 그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사람 머리가 내가 만든 블랑망주에 코를 박지 않는 한 냉장고에 들어 있는 건 용서할 수 있어요. 다만 셜록은 존과 함께 있어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지 벽에 총질을 해대길 멈추지 않는군요. 우리와 같이 <코니 프린스 쇼>라도 보면 좋으련만. 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 사람도 볼 수 없게 되었어요. 녹슨 못에 찔려 파상풍으로 죽었다고 하네요. 그 사람이 알려주는 컬러 매치 비법이 아주 유용했는데 참 안타까워요. 아, 그러고 보니 파이 반죽이 부풀 때가 되어 이만 줄여야겠어요.

보고 싶은 마거릿
내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는 잘 도착했나요? 어쩌면 아직 바다를 건너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존이 알려주기론 인터넷으로 카드를 보내면 30초 만에 지구 끝까지도 도착한다고 하던데, 그런 걸로는 정향나무 향기를 전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나저나 우리 집 크리스마스 파티는 엉망이었어요. 모처럼 존과 셜록이 손님들을 초대해서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나 했더니 시작하자마자 끝나고 말았죠. 어떻게 된 일인지 존이 ‘여자친구’를 데려온 데다 셜록이 손님들에게 어찌나 심술궂게 대하던지, 셜록과 함께 일한다는 몰리 후퍼라는 아가씨는 거의 울 뻔했다니까요. 게다가 셜록의 핸드폰이 며칠 전부터 아주 망측한 소리 - 그… 여자 신음 소리 같은 거 말이에요- 를 내고 있어서 존도 신경이 곤두섰는지 벌써 57번째라고 지적을 하더군요. 난 그걸 존이 다 세고 있다는 데 더 놀랐지만 말이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셜록이 정신없이 나가버린 뒤 존이 안절부절못하자 그의 ‘여자친구’가 자기를 셜록과 경쟁 붙이지 말라며 신경질을 내고 떠난 일이에요. 존이 사과하며 붙잡으려고 했지만, 알잖아요. 여자들은 자기가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채죠. 불쌍한 존… 아니, 존의 ‘여자친구’….

어쨌든 당신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즐거웠길 바래요. 올해는 저지방 우유로 케이크를 만드는 안타까운 일이 없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친애하는 마거릿
한동안 편지하지 못해 미안해요. 하지만 몇 달 전 말한 적 있는 그 영감, 빌어먹을 채터지에게 더 이상 시간 빼앗길 일이 없으니 이젠 홀가분하군요. 마누라가 있는 주제에 나에게 접근한 걸 진작 알았더라면 크루즈는커녕 손바닥만 한 조각배에 태워서 멕시코 만에 던져버렸을 거예요.

당신이 인터넷을 조금 쓸 줄 안다면 아마 셜록과 존의 소식은 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셜록이 경찰들도 어려워하는 사건을 해결해줘서 아주 유명해졌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는 어떤 여자가 혼자 가게에 와서 치킨파이와 다이어트 콜라를 주문하더니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는 그냥 플라토닉인가요?”라고 묻더군요. 어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질문을, 그래서 난 “당신 콜라 맛이 플라토닉이겠죠”라고 답해준 뒤 무시했어요. 나중에 존에게 슬쩍 알려줬더니 아주 당황하면서 그 여자는 기자일 거라고 하더군요. 오, 요즘 사람들은 누가 누구랑 만나고 헤어지느냐뿐 아니라 닫힌 침실 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까지도 기자들이 알려주기를 바라나 봐요.

P.S.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셜록에게도 여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존 말로는 셜록이 ‘그 여자’를 몹시 싫어한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존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그렇게 믿는 게 더 행복하다면 진실이 뭐 중요하겠어요?

P.S. ii. 하지만 셜록은 때때로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지난겨울 어느 날 아침, 목욕 가운만 입은 채 어떤 신사분을 따라 외출했다가 돌아오더니 재떨이 하나를 주며 버킹엄 궁으로부터의 선물이라더군요. 여왕님의 티타임에 초대받는 소원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거릿에게
요즘 런던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며칠 사이 건너편 집에도 옆옆 집에도 러시아 사람이 이사를 왔어요. 아, 알바니아는 러시아와 다른 나라던가요? 아무튼 오늘 낮에 길에서 내 식료품 봉지가 터졌을 때 집까지 양배추와 오렌지를 들어다 준 대머리 남자는 아주 친절하더군요.

참,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 카메라가 달려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하필이면 잠옷을 입고 있을 때라 무척 당황했답니다. 나같이 늙은 사람의 잠옷 차림을 몰래 엿보다니 정말 숙녀에 대한 예의범절이라곤 모르는 녀석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몇 줄 쓰지도 않았는데 스튜가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나니 불을 줄이러 가봐야겠어요.

오늘은 정말 정신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날인가 봐요. 한밤중에 경찰이 와서 셜록을 체포해 갔어요. 유괴 사건이 어쩌구 하던데, 절대 그럴 리 없는 것이 셜록은 아이들과 가까이하는 걸 무척 꺼리거든요. 30분 이상 같은 공간 안에 있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리고 뭐하러 아이를 유괴하겠어요? 게다가 셜록이 잡혀가자 화가 난 존이 경찰서장을 때려서 함께 체포되었어요. 존은 평소 무척 얌전하고 (셜록에 비해서는 특히) 예의 바른 사람인데 누군가의 코를 부러뜨리다니 역시…. (주: 여기서 허드슨 부인은 ‘power of love’라고 적었다가 두 줄을 그어 지웠다.)

그리고 바깥이 시끄러워져 순경에게 물어보니, 경찰차를 타기 직전에 둘이 수갑을 찬 채로 도망갔다고 하더군요. 문득 옛날에 보았던 미국 영화의 주인공 보니와 클라이드가 떠오른 건 왜일까요?

P.S. 한동안 경황이 없어 이 편지를 부치지 못했어요. 이렇게 끔찍한 소식을 전하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TV에서 이미 봤겠지만, 셜록이 죽었어요. 존과 나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답니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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