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③ 성우 장민혁·박영재 “<셜록>은 더빙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것 같다”

2014.01.07

기쁘다 셜록 오셨네
① 21세기 ‘덕후’를 집결시킨, 19세기에서 온 그대
② 허드슨 부인의 은밀한 편지
③ 성우 장민혁·박영재 “<셜록>은 더빙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것 같다”
④ 셜록부터 우사미 짱까지,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들

절대적으로 지지받는 작품.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배우의 더빙을 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 분명 원작과 하나하나 비교당해야 하는, 어렵고도 부담스러운 작업일 거다. 그러나 KBS에서 방영되는 <셜록> 시리즈의 더빙을 담당하고 있는 성우 장민혁과 박영재는 또 다른 셜록과 왓슨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았다. 두 사람의 연기는 원래의 텍스트가 가지고 있던 매력을 배가시켰고, 덕분에 <셜록> 더빙판은 DVD까지 제작될 정도로 큰 사랑을 얻고 있다. KBS 31기 공채로 입사해 영화 <트랜스포머>의 재즈와 <아이언맨 2>의 해피 호건 등을 맡아온 박영재, 32기 공채로 입사해 마찬가지로 영화 <트랜스포머>의 샘과 <뉴욕 아이 러브 유>의 제이콥 등을 맡아온 장민혁은 실제로도 셜록과 왓슨 못지않게 잘 어울리는 파트너였다. 두 사람에게 <셜록>에 관해, 그리고 더빙이라는 것에 대해 물었다.


<셜록> 한국 더빙판에서 셜록과 왓슨을 맡은 장민혁, 박영재. (왼쪽부터)

지난 12월 30일에 이미 <셜록 3> 1화 더빙을 끝냈다고 들었다. 주변에서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진 않던가.
박영재
: 많이들 궁금해한다. 아내도 나한테 내용을 물어봤다가 “아니야. 그냥 방송할 때 볼래” 그러더라. 물론 물어봐도 가르쳐주진 않을 거다. (웃음)
장민혁: 사람들이 부러워하니까 기분은 좋다. ‘우린 내용을 다 알고 있지!’ 하고 괜히 우쭐해진다. (웃음)

이번에는 BBC와 KBS의 방송 날짜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 어떤 과정으로 더빙이 진행됐나.
장민혁
: 영상은 보름 전쯤 이미 들어왔고, 번역된 대본도 열흘 전에 받았다. 시청자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더빙 작업이 촉박하게 진행된 건 아니다. 덕분에 연말에도 모든 스케줄을 뒤로하고 틈만 나면 대본을 봤다. 봐도 봐도 더 잘하고 싶으니까.
박영재: 이 정도 시간이 주어지는 게 적당한 것 같다. 연기에도 리듬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오래전부터 연습한다고 해서 녹음이 잘되진 않는다.

시즌 2 이후 오랜만의 더빙에 적응이 잘 되던가.
장민혁:
성격을 잡는 것부터 목소리 톤을 낮추는 것까지, 전 시즌 때 했던 고민을 다시 했다. 내 목소리도 예전보다 더 두꺼워지긴 했지만,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너무 두껍게 내면 시즌 2의 셜록 목소리와 또 다르게 들릴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시즌 2 더빙판을 계속 들어봤다.
박영재: 내 경우엔, 휴대폰과 PMP에 더빙판을 넣고 심심할 때마다 듣곤 했다. <셜록> 시리즈 자체가 워낙 재미있기도 하고 괜히 뿌듯하기도 해서. 그런데 사실 시즌 3의 1화에서 왓슨 대사는 호흡 위주였다. (웃음) 얼마 전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봤더니 마틴 프리먼 특유의 호흡과 동작이 있더라. 비둘기처럼 목을 움직인다든가, ‘아, 음, 음’ 하고 목을 가다듬는다든가 하는 것. 그런 걸 보면서 호흡 하나하나도 원래 배우와 똑같이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처음 <셜록>을 맡게 됐을 땐 각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장민혁
: 셜록은 성격이 확실하다. ‘까도남’ 혹은 ‘차도남’이랄까. 문제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아무튼 최대한 냉정한 캐릭터로 잡았는데, 특별한 방법이 있진 않았다. 시사 할 때 원어로 들어보고, 또 대본만 가지고 혼자 연습하면서 스무 번 이상 영상을 봤다. 웬만한 <셜록> 팬분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봤더니 나도 모르게 까칠한 성격이 나오더라. 베네딕트 컴버배치와는 좀 다르지만, ‘초딩 셜록’ 같다고들 해주신다. (웃음) 새로운 셜록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박영재: 처음 왓슨을 봤을 때, 셜록을 받쳐주는 엄마 또는 아내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멋있게 연기할 필요가 없더라. 지적인 군의관 출신이라고 해서 어깨에 힘줄 필요도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툭툭 뱉는 식으로 연기했다. 물론 너무 가볍게 보이진 않도록 주의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캐릭터가 몸에 배기도 하겠다.
장민혁
: 나도 모르게 일정 기간 셜록처럼 행동하게 된다. 오늘도 택시를 타고 오면서 뒷좌석에 딱 앉았는데, 명찰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이름은 김수진, 백화점 로고가 그려져 있네? 뒤쪽에 자석이 있고, 끊어진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그럼 이 택시가 어디서 왔다는 얘기지?’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 그런 놀이를 한다. (웃음)
박영재: 가끔 민혁이가 얘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셜록>의 BGM이 저절로 떠오른다. (웃음)

두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뉘앙스는 어떤 식으로 살리는지 궁금하다.
장민혁
: 그런 부분을 일부러 찾진 않는다. 다만 시사를 하다가 느끼는 바가 있으면 확실히 살리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시즌 2에서 셜록과 왓슨이 손을 잡고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도 그냥 밋밋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호흡을 더 써서 “자, 내 손 잡아”라고 말했다. 잘 모르는 분들은 도망가는 중이니까 저렇게 말하나 보다 하시지만, 아는 분들은 또 알아챈다.
박영재: 의도하지 않았는데 표현되는 부분도 있다. 셜록이 장을 보러 가겠다고 할 때, 왓슨이 “우유도 사오고, 콩도 사와” 이러는 게 있었다. 특별한 감정을 담은 건 아니었는데 보시는 분들에겐 굉장히 다정다감하게 들렸다고 하더라. 마치 부인이 남편에게 말하는 것처럼. (웃음)

시즌 1 첫 회에서 셜록과 왓슨이 존대를 하다 말을 놓는 부분도 적절하게 캐치했더라.
박영재
: 작가님께서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아주 기막히게 잡아주신 거다.
장민혁: 대본에 ‘여기서부터 존칭을 쓰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는 그 정서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고. 좋은 타이밍이라는 평들이 많았다.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감정이 같이 격해질 때도 있나.
장민혁
: 셜록이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 시즌 2의 마지막 회 같은 경우엔 실제로 많이 울컥했다. 더빙을 끝내고 최종 시사를 하면서 다시 보는데도 울컥하더라.
박영재: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슬프지만 꾹꾹 눌러 참는 연기를 했다. 마틴 프리먼이 실제로 그렇게 숨으로 감정을 조절하기도 했고. 아쉬움이 있다면 더빙할 때 녹음실이 좀 건조했었던 것 같다. 코가 적당히 젖어 있어야 훌쩍이는 소리가 잘 나는데, 바람이 너무 맑게 들어가서 그 느낌이 덜 났다. (웃음)

두 사람의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품인데,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장민혁
: 셜록은 나를 포함해 세 명 정도가 오디션을 봤다. 전부 시즌 1의 1화에 있는 짧은 장면을 더빙했지. 셜록이 왓슨의 휴대폰을 보고 추론한 내용을 택시 안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박영재: 나중에 피디님께 “어떻게 저희가 하게 됐습니까?”라고 여쭤봤다. 오디션을 본 셜록과 왓슨들의 목소리를 따로 따서 다 조합해보신 거다. 그중 최상의 조합을 찾은 게 장민혁 셜록에 박영재 왓슨이었다고 하시더라.
장민혁: 그런데 피디님들도 은근히 불안하셨던 것 같다. 둘 중 한 명은 이끌어줘야 하는데, 당시엔 둘 다 별로 경력이 없었으니까. 사실 시즌 1 때 나는 5년 차였다. 원래 KBS에서 3년은 더빙을 하지 않는다. 라디오 드라마만 하다가 4년 차에 전속에서 프리랜서로 풀린 건데, 바로 <셜록>을 하게 된 거다. 하지만 우리가 한방에 빵! 터뜨렸지. (웃음)
박영재: 선택 잘 하신 거다. (웃음)

실제로도 서로 친했나.
장민혁
: 박영재 선배가 나보다 1년 윈데, 워낙 나를 예뻐해 주시기도 했고 MT를 같이 다니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사사롭게 많이 알고 있었지.
박영재: 가까운 사이다 보니 확실히 연기하는 데 도움은 된다. 만약 둘 중 한 명이 한참 선배였다면, 나머지 한 명이 연기할 때 기를 못 폈을 거다.

시즌 2에서 모리어티 역을 강수진 성우가 맡지 않았나. 두 사람과 기수 차이가 꽤 나는데 긴장됐을 수도 있었겠다.
장민혁
: 강수진 선배는 워낙 친구 같다. 얼굴도 동안이시고. (웃음) 평상시에 편하게 대해주셔서 부담감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기수 차이가 중요하진 않은 것 같네.
박영재: 선배님들 중에는 ‘성우가 NG 없이 가는 게 기본자세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종종 계신다. 그만큼 NG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니까 후배 입장에서는 더 긴장되는 거다. 하지만 <셜록> 더빙 팀은 후배들을 혼내기보다 비교적 격려하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다.
장민혁: 시즌 1 땐 경력이 별로 없는데 어려운 역할을 맡다 보니 NG도 많이 내고, 녹음 시간도 길어졌다. 나 스스로는 소심해졌지만, 선배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더라. 오히려 “편하게 해, 괜찮아” 이러셨다.

어느덧 시즌 3까지 왔는데, 인기나 지명도가 예전보다 올라간 걸 느끼나.
장민혁
: 일반 성우 팬들에게도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셜록>을 하면서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다. (웃음) 섭외에 있어서도, 셜록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들어온다.
박영재: 음악회 같은 지방 행사를 가면 <셜록>의 위대함을 더더욱 느낀다. 한번은 중학교에 갔는데 선생님 한 분이 옆에 오더니 “왓슨 성우하신 분 맞죠? 사인 좀 해주세요. 제가 완전 팬이거든요” 이러셨다. 그리고 입사한 후배들에게 왓슨 성우라고 밝히면, 갑자기 팬 모드로 바뀌기도 한다. (웃음) 그만큼 성우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셜록>은 더빙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반응도 있을까.
박영재
: ‘존 왓슨’을 ‘조완순’이라고 불러주시는 것. 마틴 프리먼이 한국말을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꽤 계신다. 성우인 내 입장에선 그런 반응들을 접할 때 굉장히 자랑스럽다. 우리가 더빙을 하는 주목적이 그거니까. 외국 영화지만, 마치 한국말로 연기한 듯이 보여드리는 거다.

그런 피드백들이 연기하는 데도 영향을 끼치나.
장민혁
: 분명히 힘은 된다. 만약 나쁜 반응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거른다. 더빙이니까 당연히 한계는 있는 거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물론 참고할 만한 이야기는 당연히 주의 깊게 본다. 누군가 “셜록 목소리가 너무 얇지 않아요?”라는 글을 썼는데 “그래도 괜찮던데요?”라는 댓글이 달리면, 조금 두껍게 할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박영재: 내가 생각했을 때도 약간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는 댓글이 보일 땐 그렇다. 한 예로, 시즌 2에서 “나 없을 때도 계속 혼자 말해?”라는 대사가 있었다. 야외에서 편안하게 던지는 대사다 보니 마지막 음절에서 목소리가 너무 꺾인 거다. 좀 어리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왓슨의 목소리가 너무 젊게 들린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셜록>과 관계된 선물을 받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웃음)
장민혁
: 시즌 2 시작할 때, 디시인사이드 영국드라마갤러리 분들이 오셔서 주황색 담요를 주셨다. 시즌 1의 1화에서 셜록이 사건을 해결하고 난 후 쓰고 있는 것과 같은 거다. ‘I’m Shocked’라고 적혀 있는 담욘데, 아직도 집에 있다.
박영재: 나는 영국식 문양이 그려져 있는 머그컵을 받았다. 마이크로프트를 맡은 성우는 우산을 받기도 했다.

<셜록>이 외화 더빙물 중에서는 나름 성공을 거둔 작품인데, KBS 내부의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장민혁
: <셜록>이 잘 되면서 외화 더빙을 좀 더 활성화시켜보자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시즌 1 때는 내부에서 ‘괜찮은 작품 했네’ 정도였는데, 예상외로 시청률이 잘 나온 거다. 2도 그랬고, 심지어 DVD까지 잘 팔렸다. 그때 분위기가 좋아서 후속작으로 다른 외화 더빙판을 틀었다. 보통 일요일 밤 12시 30분 정도였던 편성시간을 금, 토요일 밤 11시로 바꾸면서. 그런데 역시 <셜록>보다는 반응이 없는 작품이다 보니 편성이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더라. 좀 아쉬웠다. 지금은 외화 더빙의 암흑기를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영재: 이거 하나 잘 됐다고 해서 더빙을 활성화하고, 외화 수입을 더 많이 하기엔 힘이 약하다. 때문에 시청자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엄청난 댓글로 “더빙 왜 안 하세요?”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시면 좋겠다. 시대의 흐름 때문에 더빙을 안 한다? 이건 무책임한 거다.

더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
박영재
: 일단 KBS는 공영방송이고, 자막을 못 쫓아가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시각 장애인분들을 위해서 더빙이 꼭 필요하다. 일반 시청자들 역시 이걸 또 다른 한국어 버전으로 받아들여야지, 원작이랑 비교하면 안 된다. 성우가 그 배우의 목소리를 모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같을 수가 없다. 성우는 천의 목소리가 아니라, 천 가지 혹은 만 가지의 성격을 묘사할 수 있는 연기자라고 생각해주시는 게 맞다. 더빙판을 제2의 창작물로 받아들여 주신다면, 더빙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거다.

혹시 베네딕트 컴버배치나 마틴 프리먼의 작품 중 더빙해보고 싶은 게 있나.
박영재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있는데, 이미 다른 성우분이 하셨으니 어쩔 수 없다. (웃음) 나는 <호빗> 시리즈를 해보고 싶다. 거기선 또 다른 마틴 프리먼을 볼 수 있고, 호빗 특유의 느낌을 살릴 수 있어서 욕심이 난다.
장민혁: 나는 컴버배치가 워낙 연기를 잘해서 두렵다.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봤는데 ‘나라면 저 역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더라. 해보고 싶긴 하지만 진짜로 맡게 되면,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될 것 같다.

컴버배치가 맡았던 <호빗>의 용, 스마우그는 어떤가. (웃음)
장민혁
: 나한테 맡겨주시진 않을 것 같다. 나보다 목소리 두꺼운 분들이 많다. 용 담당 성우가 따로 있기도 하고.
박영재: 내가 보기엔 <호빗>은 더빙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너무 길어. (웃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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