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데프콘, 온리 원 힙합 비둘기

2013.12.16

힙합 뮤지션 데프콘은 거친 남자였다. 1998년 데뷔한 이래 분노에 찬 욕설과 비속어,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을 아끼지 않은 그의 가사에는 줄줄이 ‘19금’이 붙었고,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서 데프콘의 음악에 대해 언급하던 강호동은 “방송에서 인용할 수 없을 정도”라며 난감해했다. 하지만 요즘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의 새 멤버가 된 데프콘은 길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들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손을 덥석 잡고 말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남자, 평화밖에 모르는 남자, 비둘기 같은 남자 데프콘입니다.” 물론 ‘어머니’ 또래의 시청자 대부분은 데프콘의 음악을 잘 모른다. 젊은 층 사이에서도 그의 최대 히트곡은 지난해 정형돈과 함께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발표한 앨범 <껭스타랩 볼륨1>의 ‘안좋을때 들으면 더 안좋은 노래’다. 그 전까지, 팬들의 응원과 평단의 호평에도 데프콘의 앨범은 그의 말을 빌자면 “결국엔 망했어요”.

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데프콘의 음악과 ‘예능 우량주’로 떠오른 데프콘의 캐릭터가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분리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너무 유명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험상궂어 보이는 외모와 은근히 곱고 여린 성격의 간극은 ‘힙합 비둘기’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난 8월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폭풍 같은 ‘컨트롤 비트 대란’에 뛰어들었을 때도 참전하지 않고 신보 활동에 매진한 데프콘은 KBS <해피투게더>에서 선보인 야식 ‘닭갈비 만두’로 검색어에 올랐다. 이렇듯 예상과 다른 희한한 귀여움은 데프콘의 매력이다. 거대한 몸집에 화려하게 프린트된 윗도리를 걸치고 옆구리에 낀 일수가방과 굵은 금줄 목걸이로 ‘건달 룩(자칭 비즈니스 룩)’을 완성하는 이 남자는 선글라스 아래 숨겨진 자신의 눈이 “다코타 패닝을 닮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섬유유연제와 향초를 사용할 만큼 섬세한 취향에, 잘 모르는 상대 부모님의 안부를 묻기가 조심스러워 “나는 엄마 아빠 살아계셔”라고 슬쩍 돌려 말하는 센스도 있다.


구성진 입담과 쩌렁한 목소리, 남다른 친화력을 지녔지만 1인자가 되려는 야망보다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즐겁게 지내고 싶어 하는 그의 태도는 ‘1박 2일’과 MBC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 등 남성 집단 안에서의 관계가 중심인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1박 2일’의 새 멤버가 되어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데프콘은 김주혁에게 운전을 부탁하는 척하며 따뜻한 자동차 안 자리를 양보하는 동시에 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너스레를 떨며 장난스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한도전> 조정 특집 편에서 게스트 섭외 전화를 받고 10분 안에 가겠다며 의욕만 앞선 약속을 남발해 놀림받던 그는, 당시 어렵게 자신을 밀어줬던 정형돈으로부터 요즘 ‘신 스틸러’라며 칭찬받는다.

최근 데프콘의 연관검색어에는 ‘오타쿠’와 ‘에반게리온’이 나란히 추가됐다. 핑크색 헬로키티 침구를 선호하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포스터를 방문에 붙여놓은 그는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지 않되 솔직하게 드러낸다. “혼자 사는 남자가 만화영화를 좋아하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것 같다고 보는 것은 편견”이라며 ‘오타쿠’라는 용어에 담긴 부정적 선입견에 반박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10월 부천 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홍보대사를 맡았던 그는 현장에서 만난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의 명대사를 주고받으며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어요. 다만 서로 모르는 체할 뿐이에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래서 데프콘이 사는 방식은 ‘느슨하게 가는 마이웨이’에 가깝다. 남들과 잘 지내면서도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데프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원하는 길을 향해왔다. 힙합에 미쳐 있던 기독교학과 학생은 다섯 장의 앨범을 낸 힙합 뮤지션이 됐고, 월세를 내기 위해 열심히 녹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훗날 ‘구세주’가 된 정형돈과 친해졌고, 토요일 저녁 외출도 피해가며 챙겨봤던 <무한도전> ‘제8의 멤버’로 떠올랐고, 오프닝 녹화 현장을 지날 때마다 부러워했던 ‘1박 2일’의 고정 멤버가 되었고, 자신의 ‘최애캐(최고로 애정을 갖는 캐릭터)’ 아스카를 그린 <에반게리온>의 원화가도 만났다. 그러니까 “무조건 버티고 노력하면 인생은 바뀔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성공한 자의 뻔한 멘트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음반을 내기 위해 빚을 내고 갚길 쳇바퀴 돌 듯 반복하던 시절 ‘개구리 중사 케로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노래할 때도 그는 이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야 하늘을 봐봐
빛나는 별들 가운데서 니 별을 찾아
넘버 원보다는 온리 원 그게 너야”
- 데프콘 ‘힙합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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