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 안녕

2013.12.03
ⓒ 윤이나

2013년 12월 3일 날씨 맑음
호주는 여름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이 반대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더운 12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은 것이 그렇다. 그리고 나에게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그랬다. 어쩌다 보니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에 임박했을 때 비자를 받고 출국을 결정했고, ‘1년 뒤에는 바르셀로나에 간다’ 정도를 제외하면 어떤 계획도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여름을 떠나오자 겨울이었고, 다시 봄을 지나 또다시 여름이 되었다. 브리즈번에 와서 잡 인터뷰를 볼 때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일들을 했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실제로 다양한 일을 했으니까. 그 경험들이 일을 구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들을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책과 옷을 살 수 있었다. 여기서도 열심히 닭을 뒤집고 치킨 텐더를 20개씩 포장하면서 번 돈으로 밥도 먹고 집세도 내고 있다. 상상과는 다르지만 상상보다 나쁜 것은 아니다.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12월도 처음 겪어보지만 나쁘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 모두들, 상상과는 다르지만 그래서 나쁘지 않은 오늘을 살길.

2002년, 여름 “손을 흔들며 이별의 인사를”
“제가 이렇게 손을 위쪽으로 들면 같이 웃어주시면 되고, 아래로 내리면 멈추시는 거예요. 알았죠? 이렇게 하면 놀라는 소리를 내고, 이러면 고개를 끄덕이시면 되고요. 잘 모르겠으면 그냥 절 따라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방송국 스튜디오 안까지 모두를 인솔해 간 아저씨는 지휘하듯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우연히 알게 된 방청 알바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신청해둔 지 2주. 드디어 방청 날짜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대학생이 된 후 첫 방학을 오직 알바와 알바와 알바로만 보내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방청 알바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든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방송국 아닌가. 연예인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게다가 앉아서 박수를 치고 웃는 것만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 보통 녹화는 2시간에서 3시간가량 진행되는데, 시급으로 주지 않고 프로그램당 돈을 준다고 한다. 3000원. 서빙 한 시간 할 때와 비슷한 돈이지만 그래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별로 힘들진 않을 것 같았다. 5호선을 타고 여의나루역에 내려 MBC 건물까지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방청 알바를 위해 온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다리면서 몇몇 개그맨을 봤는데 줄에서 이탈할 수가 없어서 사인은 받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바로 연습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리액션 연습.

“자 그럼 따라 해볼까요.” 아저씨가 손을 올리자 모두들 와르르 웃음을 쏟아냈고, 아래로 내리자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내가 어디 가서 리액션으로 뒤지지는 않지. 그런 자세로 나 역시 아저씨의 손을 따라 박수를 치며 깔깔댔고, 아아아 탄식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머리띠 한 아가씨. 엄청 잘하네. 자, 여기 앞자리 중간으로 앉아요.” 거봐. 뒤지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렇게 난 맨 앞줄 중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방청객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아저씨의 신들린 지휘에 맞추어 몇 번 더 연습을 하자 녹화가 시작되었다. 아나운서와 여배우가 진행을 하는 <와! e-멋진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해외 각지의 특별한 사연들을 화면을 통해 시청하는데, 그걸 스튜디오에서도 직접 보여주는 걸 처음 알았다. 대강 웃음소리만 입히는 줄 알았는데 현장감을 살리다니, 역시 방송국이란 프로페셔널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영상들은 크게 재미는 없었지만 큰 화면으로 함께 보며 열심히 박수도 치고 웃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중간중간 방청객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던 아나운서가 이제 마지막 영상 하나만 보면 된다며 힘을 내라고 말했다. 어쩐지 믿음직한 목소리에 슬슬 아파져 오는 허리와 어깨의 통증을 견디며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마지막 영상은 남미 잉카의 유적지인 마추픽추에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몸이 작고 날랜 소년은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떠날 때, 버스가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 크게 손을 흔들며 “꿋빠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는 그 아이가 마치 버스보다 빨리 나타나는 마법이라도 쓴 것 같지만, 실은 험한 산속 지름길을 통해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돈을 주었다. 아이는 그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위험할 것 같은데 힘들지는 않으냐는 물음에, 더 키가 크고 몸이 커지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대답했다. 영상은 그 소년이 다시 한 번 산을 내려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꿋빠이!”하고 외치는 것으로 끝났다.

누군가는 그 아이의 인사를 그냥 “깁 미 더 머니”로 듣겠지만, 나에게는 좀 다르게 들렸다. 안녕, 잠시 이곳에 들렀던 사람들. 안녕,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들. 안녕, 그래도 여길 기억해줘요. 안녕, 돈을 주면 더 좋고요. 안녕, 안녕, 안녕. 자라난 이후에는 하지 못할 일들,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안녕.

* ‘미쓰윤의 알바일지’는 다음 스텝을 위해 잠시 휴식기간을 갖습니다. 곧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윤이나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않는 일만 하면서도 서른 너머까지 용케 살아남아 있는 비정규직 마감 노동자. 현재는 브리즈번의 외국인 노동자. ‘장당 만 원 대신, 시급 16,000원!’을 외치며 남반구까지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리오넬 메시를 보러 바르셀로나에 가는 것이 목표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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