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웹툰작가 데뷔백서 part.2

2013.11.21
ⓒ 이종범

수많은 독자가 묻는다. “제가 웹툰작가가 될 재능을 갖고 있을까요?” 글쎄, 잘 모르겠다. 일단 난 만화에 필요한 재능이 뭔지 잘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어떤 일을 하는 데에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만화를 10여 년 그린 선배가 술자리에서 “만화에 필요한 재능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만화의 신이 있다면 알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만화가가 될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직 만화를 제대로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10여 년 경력의 만화가도 모르는 만화가의 재능을 자신이 안다고 믿는 매우 교만한 사람이거나. 데뷔를 원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전에 어떤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포커를 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 포커페이스? 상대방의 수 읽기? 아니다. 그보다 먼저 나한테 돌아온 패가 뭔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그 패에 원페어가 있다면 원페어로, 포카드가 있다면 포카드로 게임을 하면 된다. 그런데 만화가 지망생들 중 아주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 손에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없으면 이 게임에 낄 수 없어.” 하지만 게임이란 건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상태로 데뷔하는 신인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데뷔작을 준비하던 당시 갖고 있던 패가 너무나 형편없어서 절망했었다. 글도 그림도 연출력도, 모두 형편없었으니까. 하지만 습작(재즈만화)을 하기 전과 비교해서 몇 가지 새로운 카드가 내 패에 포함된 것은 발견했다. 바로, ‘전문 소재’를 공부하고 파고들어서 취재하는 기술레벨 1단계 카드. 다행히 웹툰 바닥에는 아직 전문 소재를 파고들었던 만화가 거의 없었고 나는 이 방향으로 원고를 해서 네이버 웹툰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딱 1년만 도전하자. 그리고 안 되면 다른 사이트에서 더 연재를 하며 수련하거나, 잠시 취업에 도전해도 되겠지. 그리고, 지옥 같은 1년이 시작되었다.

담당자에게 직접 원고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최소한 두 가지다. 전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시놉시스. 그리고 1화 원고. 여기에 각종 설정이나 캐릭터 시트를 더하는 건 각자의 자유지만 적어도 위의 두 가지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작가마다 편차가 크지만 보통 이야기를 구상해서 1화 원고까지 준비하는 데에는 아무리 부지런해도 3~4개월이 걸린다. 나는 거기에 취재의 개념을 더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은 더 많았다. 하지만 데뷔작 연재가 끝나고 네이버에서 연재에 들어가기까지 만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총 6개의 작품을 거절당했다. 자살한 펀드매니저의 뒤를 둘러싼 암투. 음악에 구원받은 두 천재의 이야기. 일진들이 반드시 따라 할 거라는 우려 때문에 보류당한 세태풍자 학원 액션물부터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소년의 이야기까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거절당했다. 나중에는 담당자도 미안했던지 “작가님 연출 스타일이나 그림에 대해서는 이해하겠으니 1화 원고는 콘티까지만 해서 보내주세요”라고 말해줄 정도였다.

돈은 늘 없었다. 하루 종일 미숫가루로 연명한 적도 있었고 물도 참 많이 마셨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돈을 빌리러 뛰어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있는 작업실에 들어와 동료 작가, 형들과 생활하면서는 그들이 늘 돈을 빌려주었다. 당시 우리 작업실에는 <지상 최악의 소년>의 정필원 작가나 <연옥님이 보고계셔>의 억수씨, <움비처럼>의 권혁주 작가 등 많은 동료가 있었고, 같은 층엔 동갑내기 친구인 <삼단합체 김창남>의 하일권 작가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밥도 참 많이 얻어먹었다. 작업한 원고는 그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었고 동료들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노하우들을 아끼지 않아 준 것에 대해 지금도 늘 감사하다. 심지어 <소녀 더 와일드>의 제나 누나는 전화로 그림에 대해 질문한 나를 위해서 자기 그림파일이 담긴 시디를 들고 지방에서 올라와 주었다. 누나가 내 옆에 앉아서 레이어 하나하나를 켜고 끄면서 설명해줬을 땐 고마워서 살짝 울었다. (물론 몰래.)

그렇게 1화를 고쳐 그리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거절당하는 나를 옆에서 바라보는 동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에게 허락한 1년이 거의 다 흘러갔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보낸 원고를 보고 담당자가 전화했다. “다음 주 수요일, 작업실에 들르겠습니다.” 오, 신이시여. 드디어 되는 건가. 동료들도 하나같이 이야기했다. “설마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겠어?”, “야, 진짜 축하한다. 드디어 연재 시작이냐.” 축하주까지 그들의 돈으로 마시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한 날 찾아온 담당자는 만나자마자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중략) …한 이유로 어렵겠습니다.” 충격. 그럼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거절은 전화로 해줘!! 그러나 바로 그 이유를 알았다.

담당자는 바로 내 옆에 있던 정필원, 하일권 작가에게 물었다. “차기작 연재 언제 들어가실 건가요?” 그들에게 연재 제안을 하기 위해 들른 김에 나에게 거절을 전해준 것이었다. 민망해하는 동료들과 담당자가 미팅을 하는 동안 조용히 벽에 기대어 1년 동안 채워나간 소재 수첩을 멍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깜깜했다. 잠시 취업을 알아볼까.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담당자가 돌아가려고 일어났을 때, 내 수첩 마지막 장에 쓰여 있던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시놉시스도 없었고 원고는커녕 캐릭터도 없었다. 단 한 줄.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이야기.’ 나도 모르게 작업실에서 나가려는 담당자 등에 대고 얘기했다.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어떨까요?” 담당자가 돌아보더니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작가님 전공이 심리학이었죠? 아직 전문 소재 만화가 없고 앞으로도 많이 없을 것 같네요. 언제부터 시작하실래요?”

이 모든 일이 단 10초 안에 일어났다. 아, 자기 패를 보라고 말하던 주제에, 나 역시 내가 가진 패를 제대로 보지 않고 1년을 보냈구나. 내 전공은 심리학이었지. 그렇게 <닥터 프로스트>의 연재가 결정되었다. 나는 타고난 재능의 부족함을 후천적으로 보완할 길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적어도, 웹툰은 절대 재능만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렴풋이, 다른 대부분의 일 역시 그럴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만화가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리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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