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이 다 뭔데! 10월의 마지막 밤은 이용 데이라고!

2013.10.29
© 윤이나

2013년 10월 29일 날씨 흐림
친구들이 소포를 보내주겠다며 뭐가 필요한지를 물을 때면 나의 대답은 언제나 책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용히 다른 대답을 한다. “기모 자켓 있잖아, 왜. 목까지 지퍼 올릴 수 있는 거.” 그러면 친구들은 하나같이 거긴 여름인데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하루의 반을 냉장고 같은 데서 보낸다고 생각해봐. 뭐가 필요할지. 숨을 내쉬면 입김이 폴폴 나오고 소리를 질러야 대화가 가능한 춥고 시끄러운 공장에서 10월 한 달을 보내는 중이다. 출근할 때는 한여름 한낮이라 선글라스 없이는 눈도 뜰 수 없는 정도지만, 메고 다니는 가방에는 언제나 두꺼운 옷이 들어 있다. 퇴근할 때는 깜깜한 밤. 가는 곳마다 징그러운 호박들이 웃고 있어서 할로윈인 걸 알았고, 그렇게 10월도 끝을 향해 가는구나 싶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스산한 마음이 들었다. 선글라스를 팔 때까지만 하더라도 해외에 나왔으니 절대로 잊지 못할 할로윈데이를 보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10월의 마지막 밤을 30분 남기고 퇴근하게 될 테니 다 부질없는 일이다.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고글까지 쓰고 나가면 꽤 훌륭한 분장이 될 것 같기는 했지만, 파티 한 번에 잘릴 수는 없지. 쓸쓸하다. 할로윈이 다 뭔데! 10월의 마지막 밤은 이용 데이라고!

2002년, 10월의 마지막 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미사리 카페촌의 가장 큰 명절은 누가 뭐래도 크리스마스다. 그리고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처럼 연인들의 날에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 가게 열린음악회에는 또 하나의 명절이 있다. 10월의 마지막 밤. 하루 종일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오는, 이용의 날이다.

지난 주말부터 10월의 마지막 밤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가게 앞에 ‘이용의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현수막도 내걸고, 도로변에도 눈에 띄는 깃발을 달아두었다. 그날만을 위한 특별 메뉴판을 만든 것은 물론이다. 이번 달부터 이미 ‘잊혀진 계절’에 쏟아지는 박수의 질이 달라진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전 직원 출동이니 도대체 오늘 손님이 어느 정도일지, 얼마나 바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이용 아저씨는 1년 중 이때 가장 바쁘겠네요?” 특별한 날이니만큼 직접 지시하며 함께 오픈 준비 중이던 사장님은 나의 질문에 뭘 그렇게 당연한 말을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냥 이날을 위해 사는 거지. 나도 이런 노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덧붙인 한마디는 혼잣말이었다. 앨범을 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가수였다는 사장님은 평일 오후 시간 즈음 무대에 올랐다. 기타를 치며 사장님은 김광석이나 해바라기의 노래를 불렀고, 내가 아는 노래들이 들리는 그 시간을 난 참 좋아했다. 자기 노래가 없는 가수라는 건, 좀 쓸쓸한 거구나. 맞아.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픈 거니까. 난 어쩐지 가라앉아가는 분위기를 띄워보려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가수 되면 이용 아저씨처럼 계절이나 날짜에 딱 맞는 노래를 불러야겠어요. 벚꽃축제에 어울리는 노래라든가, 뭐 그런 거.”

하지만 벚꽃이고 꿈이고 뭐고, 수다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용 타임이 되기 한참 전부터 몰려든 손님들은 당연히 그 시간이 될 때까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에는 간이 의자와 테이블도 아예 동이 났다. 개중에는 의자만 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며 생색을 내는 손님들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피크 타임에는 식사 주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들은 대부분 특별 메뉴판에서 4만 원짜리 원두커피를 선택했다. 매 주말마다 라이브로 ‘잊혀진 계절’을 듣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과연, 조용필을 누르고 가요대상을 탄 가수다웠다. 지금까지 꿀차 타서 가져다 드리는 거 귀찮아해서 죄송해요, 이용 아저씨.

오늘 이곳저곳 방방곡곡에서 하루 종일 같은 노래를 불렀을 이용 아저씨는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왜 이렇게 안 나오냐, 오늘 안 오는 건 아니냐, 커피가 다 식었다 리필은 안 되냐, 자리가 비좁다 손님 그만 받아라, 앞사람 머리 좀 치우라고 해라, 온갖 아우성은 오늘의 주인공이 무대에 오른 순간 잠잠해졌다. 평소보다 훨씬 들뜬 분위기와 똑같은 내용인데, 어쩐지 더 웃긴 농담으로 시작한 무대는 끝을 향해 갔다. 이윽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과 함께 노래가 시작됐을 때, 그저 평범한 10월 31일은 각자에게 특별한 ‘10월의 마지막 밤’이 됐다. 아마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나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는 걸,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어떤 가을밤으로.

윤이나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않는 일만 하면서도 서른 너머까지 용케 살아남아 있는 비정규직 마감 노동자. 현재는 브리즈번의 외국인 노동자. ‘장당 만 원 대신, 시급 16,000원!’을 외치며 남반구까지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리오넬 메시를 보러 바르셀로나에 가는 것이 목표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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