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① 아티스트라는 이름의 분홍신을 신은 소녀

2013.10.22

I'm Unusual
① 아티스트라는 이름의 분홍신을 신은 소녀
② 아이유 메이커
③ “내가 회사에 딱 끌려오는 순간 재미없는 앨범이 됐을 거다”
④ 작곡하는 음원 3대장: GD, 장범준, 아이유

그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다. 소녀, 유망주, 아이돌, 삼단 고음, 국민 여동생, 대세, 오빠들의 뮤즈, 싱어송라이터, 이지은, 그리고 아이유. 이제 스물하나가 된 이 젊은 가수의 데뷔 후 5년의 시간은 그토록 다양한 궤적을 남겼다. 기타를 메고 상큼한 목소리를 내던 소녀는 어느 순간 오빠가 좋다고 외치는 대세 아이돌이 되었고, 또다시 시침 떼듯 이적, 윤상 등과 함께한 결과물을 내놓으며 진지한 뮤지션의 모습을 과시하듯 보여주었다. 그 많은 모습, 그 많은 이름 중 그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하는 건 부질없을지 모른다. 프로듀싱의 총합으로서, 또 대중이 부르는 이름으로서 의미가 결정되는 대중가수의 삶이란 그런 법이다. 그의 정규 3집 앨범 < Modern Times >가 특별한 건 그래서다. 아트워크, 세련된 편곡, 피처링까지 그를 실력파 뮤지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앨범 콘셉트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역대 그 어느 때보다 프로듀싱의 힘이 강력한 이 앨범 속에서도 미처 포섭할 수 없었던 그의 목소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이즈>의 이번 스페셜은 아이유의 음원 순위나 대중적 포지셔닝을 분석하기보다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그 어떤 이름도,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유에 대하여.



소녀는 춤을 춘다. 신나게,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유 정규 3집 < Modern Times >의 ‘분홍신(The Red Shoes)’ 뮤직비디오는 철저히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삼는다. 피해도 피해도 쫓아오는 빨간 구두를 신은 아이유는 영문도 모른 채 스윙 리듬에 맞춰 위태롭게 춤을 춘다. “기다리기만 하는 내가 아냐 너를 찾아 뚜벅” 걷는 노래 속 화자의 심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 장면에서 창작자의 의도를 섣불리 해석할 수는 없다. 다만 빨간 구두의 뜻에 따라 억지로 춤을 추는 모습과 댄서들과 함께 흥겹게 춤추는 모습의 교차 편집은 쇼 비즈니스의 길 위에 선 젊은 대중가수에 대한 훌륭한 메타포 역할을 한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미소를 지으며 노래하지만 온전히 자의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춤을 추는 예쁜(혹은 잘생긴) 아이.

아이유가 쇼 비즈니스에 포섭된 꼭두각시 인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중의 반응을 얻기 위해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대중가수에게 순수한 자의와 타의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부터 넌센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 Modern Times >는 대중성과는 살짝 벗어난 지점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아이유를 어느 때보다 강조하는 앨범이다. 그가 MBC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에서 ‘분홍신’이 스윙이기 때문에 잘될 줄 몰랐다고 한 건 단순한 겸양이 아니다. 시원하게 터지는 코러스 파트를 제외하면 아이유의 보컬은 듣기 쉬운 멜로디를 뽑아내기보다는 반주와 함께 연극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를 대세로 만들었던 ‘좋은 날’ 같은 이지리스닝 타입과는 거리가 멀고, 브라스 편곡이 너무 화려하고 풍성해서 예의 3단 고음을 과시할 만한 사운드의 빈틈도 없다. 덜 대중적일 수는 있지만 장르적 완성도는 높다. ‘분홍신’만이 아니다. < Modern Times >라는 제목 그대로 1930년대의 재즈 사운드를 앨범 전면에 내세운 가운데 블루지한 발라드(‘입술 사이’), 최백호의 중후한 목소리를 앞세운 보사노바 스타일(‘아이야 나랑 걷자’) 등이 흑백 톤의 앨범 재킷처럼 철저히 복고적인 질감으로 녹음됐다. 요컨대 아이유의 모든 앨범을 통틀어, 어쩌면 올해 나온 대중가요 앨범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콘셉트의 앨범이다.

하지만 < Modern Times >가 그 어느 때보다 아이유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한다면, 오히려 그의 숨길 수 없는 욕망이 이토록 뚜렷하고 꽉꽉 짜인 콘셉트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자작곡이자 마지막 트랙인 ‘Voice Mail’은 “녹음 시간은 벌써 2분 30초가 막 넘어가고 있”다고 즉흥성을 강조 혹은 연기하며 앨범이 구축한 가상의 시간여행으로부터 청자를 다시 지금 이곳으로 돌려놓는다. 앨범의 다른 곡들과 달리 피아노 선율과 아이유의 목소리만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곡이 13번이 아닌 보너스 트랙인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는 앨범의 전체 콘셉트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자작곡을 수록할 정도의 고집은 있지만, 그것이 어디 위치했을 때 가장 무난한지도 안다. 역시 아이유가 가사를 쓴 ‘을의 연애’는 어떤가. 본인이 작사, 작곡한 ‘Voice Mail’, ‘싫은 날’과 달리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곡을 받아 앨범의 도입부 역할을 훌륭히 해내지만 또한 “나 왜 이렇게 한심하니”라는 ‘Voice Mail’의 세계와 묘한 대구를 이룬다. 아이유가 실제로 보이스 메일을 남기고 초조해하는 을의 연애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청자의 그런 지레짐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프로듀서와 작곡가, 작사가들이 공들여 만든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서명을 선명하게 남기는 방식으로. 이 균형은 안정적이기보다는 아슬아슬해서 매력적이다.


물론 아이유는 이번 앨범 이전에도 독보적이었다. ‘좋은 날’로 대세가 되기 전부터 아이유는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고정 출연하고 홍대 여신들처럼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는 등 본인의 음악적 소신이 있는 10대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의 김구라와 윤종신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작곡을 불러 인정받는 송라이팅 아이돌. 윤상, 이적, 김광진 등 90년대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참여한 2집 < Last Fantasy >에서 윤상이 1997년 알로가 부른 ‘잠자는 숲속의 왕자’를 아이유의 목소리로 재탄생시킨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사실 아이유는 기획형 아이돌의 시대에 다시금 90년대와 같은 고급 대중가요 아티스트의 영역을 확보하고 싶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최고의 원석과도 같았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현재로선 유일무이할지 모를 존재. 하지만 결국 독보적 포지션이란 쇼 비즈니스의 지형도 안에 속했다는 뜻의 다른 말이다. 그 무엇도 온전히 내 뜻일 수 없는 빨간 구두의 댄서로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지금의 아이유가 특별한 건, 철저한 프로듀싱으로 가수에게 아티스트의 아우라까지 부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쇼 비즈니스에도 미처 포섭되지 않는 개인의 욕망과 개성이 존재하고 표현될지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다. 장기하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쉬울지 모른다. 본인의 자작곡을 만드는 건 쉽지 않지만 특별하진 않다. 아예 대중음악 시장의 바깥에서 혼자만의 천재성을 과시하는 것도 외롭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유는 쇼 비즈니스의 중심에서 자신에게 투자된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이용하는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도했다. “혀끝을 지나기도 전에 벌써 지루해져 버린 내 이름”(‘을의 연애’)을 버리고, “아무 소리도 없는 방 그 안에 난 외톨이”(‘싫은 날’)로 돌아가 “아무 대책 없이 그냥 한 번 질러”(‘Voice Mail’)보는 한 개인이 되어. 동화 속 주인공은 빨간 구두를 제어할 수 없어 발을 잘라야 했지만 이 명민한 가수는 그 힘을 빌려 자신만의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그 끝은 아직 몰라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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