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선생님의 마지막 뺄셈

2013.10.15
ⓒ 윤이나

2013년 10월 15일 날씨 맑음
“샵에 남자친구나 친구를 데려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잘리실 겁니다.” 스마트폰 메신저로 직원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단체 대화창에서 존댓말을 쓰는 척하며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지만, 뭐 그러려니 했다. 남자친구도 없고, 친구도 없…다고 쓰려니 뭔가 슬프지만, 어찌 됐건 나에게는 별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주에 새로 우리 집에 이사 온 여자분은 정말 ‘짤리셨다’. 내가 한 번 퇴짜를 먹은 바 있는 액세서리 세일즈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이렇게 하시면 같이 일 못 하죠”라는 말과 함께 정말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보통 한인들이 하는 캐시잡(주급을 현금으로 지급받는 일-보통 고용자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시급을 적게 주고 고용하는 형태)의 경우, 잘리면 그냥 그 주에 일한 만큼의 돈을 받거나 아니면 그나마도 못 받고 그냥 다음 날부터 일을 하지 못한다. 모든 알바가 그렇지만, 언제 겪고 언제 들어도 참 씁쓸한 이별이다.

2003년 여름, “큰 수를 가르치는 방법”
결전의 날이다. 드디어 과외 학생의 기말고사 성적이 나오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무슨 시험을 이렇게 자주 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국어야 별걱정 없지만 수학 성적이 어떨지 몰라서 뭔가 불안했다. 사실 한두 번의 시험 성적으로 이렇게 초조해지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학생의 어머님이 워낙 유별난 분이라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 학생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는 정말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이니 미리 예습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몰래 답안지를 보는 살 떨리는 상황도 연출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또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사회와 과학을 가르치니, 나는 국어와 수학만 가르치면 된다. 게다가 두 과목을 한 번에 두 시간, 주 2회씩 가르쳐 중고생 과외와 거의 비슷한 돈을 받으니 아주 맞춤인 자리였다. 동선을 줄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인 광진구에 학생의 집이 있다는 점까지 완벽했다. 과외의 기본 원칙인 선불 대신 후불이긴 했지만, 뭐 이 정도 돈을 주면 그럴 수 있지. 이렇게 다들 과외 재벌이 되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초등학생 과외를 과목별로 나누어 과외를 시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돈이 내 돈이 아니므로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상당히 상관이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과외를 시작한 후 알게 됐다. 다른 과외와는 달리 이 학생은 조금의 일정 조정도 허용되지 않았다. 방과 후 시간이 언제나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천에서 만 단위가 넘어가는 ‘큰 수’를 어려워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에게 문제 몇 개를 만들어서 내주고는 올림과 내림을 헷갈려 하는 걸 보고 있다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화요일이랑 목요일은 선생님이랑 하고, 수요일이랑 금요일은 혜진 선생님이랑 하면, 다른 요일에는 뭘 해?” 한참을 음, 하고 뜸을 들이며 생각하던 학생이 대답했다. “화요일이랑 목요일에는 선생님이랑 하는 거 끝나면 피아노가 있고, 월요일에는 미술을 하고요. 토요일에는 영어랑 태권도랑, 또 일요일에는….”

아이가 외우지도 못할 정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심지어 일요일까지도 과외 일정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나와의 수업이 끝난 다음에 저녁을 먹고 그다음 피아노를 배운다는 건 거의 9시에서 10시까지 과외를 한다는 의미였다. 어쩐지 기가 질려버린 나는 가끔 학부모가 방문에 귀를 대고 몰래 엿듣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매일매일 과외를 하면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면 졸리긴 하는데요, 그냥 괜찮아요. 그래도 저는 발레는 안 하잖아요. 다른 애들은 학교 끝나고 발레도 가요.” 그래, 그렇구나. 발레도 가는구나. 나는 할 말이 사라져버린 입으로 큰 수 계산을 다시 가르쳤다. 4에서 7을 뺄 수 없으니까, 그 앞자리에서 10을 빌려오면 말이야….

그런데도 결국 아이는 수학을 43점 맞고 말았다. 국어는 20점이 올라 90점대가 되었지만, 어머님이 아이를 무릎 꿇리고는 내 앞에 들이민 시험지는 당연히 수학이었다. 역시 또 할 말이 사라져서 시험지를 보고만 있었더니 어머님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로 그만하셔야겠어요.” 그제야 할 말이 생긴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머님. 제가 지난번 과외비를 받고 2주간 네 번을 더 왔으니까요. 20만 원을 주셔야 하는데요.” 학생의 어머니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는 듯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가 돈을 꺼내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난 학생의 방으로 들어가 마지막 수업을 했다.

“20만에서 43을 빼 봐. 침착하게. 그래, 0에서 3을 뺄 수 없으니까 앞에서 10을 빌려와야 하는데 0이니까 앞으로 가서 한 자리씩 10을 빌려오면…” 아이는 문제를 틀리지 않았고, 난 엄마가 던져버린 20만 원을 주워 가방에 넣은 뒤 공손히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그나마 발레를 안 해서 행복한 저 아이는 아마도 잊지 않겠지, 큰 수의 뺄셈.

윤이나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않는 일만 하면서도 서른 너머까지 용케 살아남아 있는 비정규직 마감 노동자. 현재는 브리즈번의 외국인 노동자. ‘장당 만 원 대신, 시급 16,000원!’을 외치며 남반구까지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리오넬 메시를 보러 바르셀로나에 가는 것이 목표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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