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허지웅이 TV로 간 까닭은

2013.08.21

“3주째 월요일마다 프로그램 두 개를 12시간 릴레이 녹화. 둘 다 입으로 터는 거. 이건 내 체력으로는 더 이상 무리다.” 허지웅 영화평론가가 얼마 전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그는 JTBC <썰전>의 패널에 이어 신동엽, 성시경, 샘 해밍턴과 함께 남녀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녀사냥>의 고정 MC가 됐다. <썰전>에서 “방송은 하나만 하고 본업인 글만 쓰고 싶다”던 그가 방송 출연을 늘린 건, <마녀사냥> 1회에서도 말했듯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하지만 그가 얻는 건 단순히 경제적인 보상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 포털 사이트나 SNS에 ‘허지웅’을 검색하면 ‘<썰전>의 허지웅’이라는 타이틀로 그가 쓴 영화평이 기사화되거나 블로그에 언급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TV를 통해 쌓은 인지도가 평론가인 그의 본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평론가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TV에 출연해 인지도를 쌓고 본업에 도움을 받는 것은 과거에도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TV에서 인지도를 쌓는 방식은 달라졌다. 과거의 전문가들은 관련 분야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딱딱하게 지식을 설명하는 의사나 평론가는 방송 출연 후에도 여전히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얼마 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이경제 한의사가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건강보감’에 출연해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당시 그는 조금 더 재미있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KBS <해피투게더>에 축구 전문가 한준희가 출연해 축구를 주제로 다양한 토크를 하기도 했고, KBS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는 국악평론가 윤중강이 나와 결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마녀사냥>의 정효민 PD는 “<썰전>에서 정치와 성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며 허지웅 평론가의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연예인들의 스캔들도 시시해져 가는 요즘, 허지웅 평론가같이 연예인은 아니지만 말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허지웅 평론가는 <썰전>과 <마녀사냥>에서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평은 물론 “헤어진 여자친구와 절대 친구로 지낼 수 없다”는 가치관을 드러내고, “이혼 후 성욕이 없어졌다. 사마천처럼 마음이 평온하다”는 등의 멘트를 한다. 이런 멘트는 평론가로서의 전문성에 더해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허지웅 평론가는 방송 출연에 대해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라 출연하고 있다”고 했다. JTBC <닥터의 승부> 등에 출연한 박용우 비만클리닉 원장 역시 “그동안 딱딱해 보인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게 돼 방송을 즐기게 됐다”는 글을 블로그에 남겼다. 그의 블로그에서는 박용우 원장이 보여준 50대 청춘의 캐릭터를 응원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출연을 시작하되, TV를 통해 인상적인 캐릭터를 얻으면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인지도를 얻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결과가 달라졌다. 캐릭터를 입은 전문가는 연예인의 인기와 전문가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동시에 가진다. 강사로 활동했던 김미경은 지난해 tvN <스타특강쇼>에 나온 이후 올해 초 <김미경쇼>라는 단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미경쇼>를 시작한 지 3달도 되지 않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고, 이 방송은 강호동의 MC 복귀 이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MBN <동치미>와 스토리온 <렛미인>에서 준수한 외모와 미혼이라는 점으로 여성 시청자의 인기를 얻고 있는 양재진 의사는 KBS <해피선데이> ‘맘마미아’까지 출연했고, 박은영 아나운서에게 호감을 비춘 순간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런 관심은 전문가로서의 활동에 실질적인 수익으로 연결된다. 김미경이 낸 책 <언니의 독설> 판매량은 한 달 평균 약 3,263부였지만 방송 이후 3주 만에 1만 3,690부로 뛰었다. SBS <힐링캠프>에 김정운 교수가 출연한 후 그의 신간 <남자의 물건> 판매율 또한 30% 이상 급증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전문가이자 셀러브리티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기도 하다. 올해 초 출판사 21세기북스는 판매 예정인 책의 저자를 TV에 출연시키는 것뿐 아니라 TV 출연자 중에서 저자를 발굴하는 미디어믹스 팀을 신설했다. 전문가가 셀러브리티가 되고, 셀러브리티의 영향력이 전문가로서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시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TV 출연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는 만큼 부작용도 생긴다. 21세기북스의 미디어믹스 팀이 신설될 당시, 지나치게 ‘팔리는 책’ 위주로 출판하려는 전략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필력보다 미디어로 포장된 인지도에 기댄 책이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방송 출연 제의를 받지만 대부분 거절한다는 한 작가의 말도 귀 기울일 만하다. “방송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이라 출연하려면 최대한 프로그램 정보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어렵고, 기획에 대해 들어보면 섭외 자체가 우선으로 보일 때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의 캐릭터로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 전문가가 탄생하고, 그들이 다시 미디어에 노출되는 새로운 고리. 전문가들의 활동 분야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영향력도 늘어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 그 방향이 미디어와 전문가, 그리고 대중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이 새로운 현상을, 그 현상이 일으키는 힘을 지켜봐야 할 이유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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