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웹툰 작가들의 마감생활 해부: ② 감금 이후

2013.08.22
© 이종범

지난주에 이야기했듯, 지금의 웹툰 작업은 대부분이 컴퓨터로 이루어진다. 작업실을 들고 다니지 않는 한, 웹툰 작가들은 스토리나 콘티처럼 이동 가능한 공정이 끝나갈 즈음이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붙들려 하루나 이틀 정도 작업을 한다. 이 공정이 긴 작가는 일주일에 3~4일 동안 나가지도 못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짧으면 하루 만에 끝나기도 한다. 나는? 짧으면 열흘, 보통은 2주 정도 폐관수련의 기분으로 작업실에 갇힌다. 이렇게 들어앉아 한 번에 4화 분량의 그림을 그리려면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갈아입을 옷들과 간식을 잔뜩 챙겨서 작업실로 출근한다. 그러고 나서 웹서핑을… 아, 아니 원고에 쓰일 배경 그림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야만 한다. 아니, 그럴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마감을 방해하는 지뢰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컴퓨터 작업 최고의 지뢰밭은 IT 강국 대한민국의 초고속 인터넷이다. 분명히 여주인공의 의상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 포털에 들어온 것 같은 아련한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데, 이미 열려 있는 창은 수십 개. 개미지옥 속의 개미, 통발 속의 물고기의 기분을 잠시 느끼며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진짜로 ‘작업실을 들고 다닌’다.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등등을 차에 싣고 3~4일간 인터넷이 잘 안 되는 펜션에 들어가서 작업을 한다. 정말 대단하다. 이 단계가 지나고 나면 마감을 함께해줄 각종 콘텐츠를 준비한다.
 
예전에 읽었던 한 인터뷰에서 강풀 형님이 “그림 작업 하면서 다음에 그릴 차기작 스토리를 구상해요”라 말한 적이 있다. 그 인터뷰에 많은 동료 작가들이 놀랐었다. 보통은 그림 작업을 하면서 머리를 쉬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마감으로 일상이 가득한 웹툰 작가들은 좀처럼 취미생활을 할 시간이 없다. 사람을 만나서 놀 시간도 부족하고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을 볼 시간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림 작업을 하는 동안 바쁜 양손과 달리 한가한 귀를 그동안 놓친 방송으로 달래곤 한다. 그중 가장 많은 부류는 ‘예능파’다. MBC <무한도전>,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등을 쌓아두고 틀어놓는다. ‘드라마파’도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막을 볼 틈이 없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동영상 재생창을 작게 축소해 작업 창 옆에 살짝 붙여놓고 수시로 살짝살짝 감상하며 작업을 계속하기도 한다.
 
심야 작업 때엔 ‘라디오파’도 매우 많다. 요즘은 팟캐스트 방송도 많아졌고 지상파 라디오도 원하는 시간에 다운받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라디오 키드’ 출신 작가들은 주야장천 라디오를 듣는다. 김영하, 성시경이 옆집 형처럼 느껴지고 컬투가 옆 작업실에 사는 듯한 착각에 빠질 즈음 마감이 끝난다. 드물게는 텍스트 리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소설을 듣는 작가들도 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마감을 함께해주는 콘텐츠들이 이렇게 많아졌다. 그러나 나에겐 이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큰 고통이 있다.
 
(나처럼) 술을 매우 즐기는 작가는 마감 기간 동안 어떻게 해도 술에 대한 갈증을 풀 길이 없다. 20대 때에는 하룻밤 진탕 술을 마셔도 바로 다음날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하루 음주 후엔 하루 휴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마감의 릴레이 속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전쟁터 참호 안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연재가 길어지면 주량은 보잘것없어지고 간은 생기를 되찾는다. 좋다고 보면 좋은 일이지만 술에 대한 욕구불만은 쌓여간다. 예전에 김하늘, 윤계상이 주연을 맡았던 <6년째 연애 중>이라는 영화에서 이진성(신성록)이라는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술을 너무 마시고 싶지만 마감이 있을 때, 졸리면 안 될 때 나는 소주와 커피를 섞어서 한잔 마셔요.” 설마 하는 마음에 따라 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기도 했다. 난 커피를 머그잔에 마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신적인 체력을 잘 관리해가며 기나긴 마감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다음 마감이 시작된다. 웹툰 작가들은 이런 생활을 짧게는 반년, 길게는 2~3년 동안 반복한다. 그러니 웹툰을 읽다가 마음이 상해서 악플을 하나 달고 싶어지더라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만화가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리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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