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력은 국력│① 김준구 “세계의 조석, 세계의 하일권, 세계의 SIU가 되게끔 하는 게 목표”

네이버 웹툰 사업부 김준구 부장

2013.08.22
덕을 쌓으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이 문구에서 덕(德)을 오타쿠를 뜻하는 ‘덕’으로 바꿔도 뜻이 통하지 않을까.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에 마니악한 애정을 가진 이들을 조롱하던 오타쿠라는 단어를 그마저도 줄인 ‘덕’은, 이제는 대중문화 곳곳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즈> 기획 릴레이 인터뷰인 ‘덕력은 국력’은 이처럼 꾸준히 ‘덕력’을 쌓아 대중문화 산업에서 생산적 활동을 하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덕’의 긍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 첫 주자는 현재 만화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네이버 웹툰을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끌어온 네이버 웹툰 사업부 김준구 부장이다. 그는 웹툰이 무슨 만화냐는 편견 속에서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와 <마음의 소리> 등의 타이틀을 히트시키며 웹툰을 대중적인 콘텐츠로 만들고, 최근 선택형 수익모델(Page Profit Share, 이하 PPS. 텍스트 광고와 이미지 광고, 콘텐츠 유료 판매 중 각 작품에 가장 맞는 수익모델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시행해 콘텐츠 수익모델의 새 장을 열었다. 용돈을 모두 만화책과 잡지에 쏟아부었던 학생이 웹툰이라는 한국 만화의 새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까지의 이야기.

네이버 웹툰 서비스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웹툰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회사에서 이 일을 맡았던 건가.
김준구
: 처음에는 프로그래머로서 개발팀에 들어왔다. 원래는 대학에서 분자생물공학을 전공하다가 우연히 프로그램을 하게 돼서 IT 계열에 입사하게 됐는데 마침 회사에서 만화 관련 서비스를 해보려는데 너 해볼래, 라고 해서 담당하게 됐다.
 
회사에서 “만화 해볼래”라고 한 건 만화 좋아하는 게 알려져서인가.
김준구
: 회사에서 유명했던 게, 사원들이 엑셀로 리스트를 만들어 돌리면서 웬만한 만화책들을 나에게 빌리곤 했으니까. 또 만화책을 세 질씩 가지고 있는 걸로 유명했는데, 하나는 소장용, 하나는 내가 읽는 용도, 하나는 대여용이었다. 집에 8,000권 정도 있었는데 책이 먼지를 만드니까 아이 낳고 나서는 상당히 많은 양을 분양했다.
 
언제부터 사 모은 건가.
김준구
: 초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다. 신문수 선생님의 작품을 비롯한 명랑만화들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프라모델 대장군>이나 <디오라마 대작전> 등 소위 일본 ‘빽판’을 읽었다. 그러다 <보물섬>, <소년중앙> 같은 잡지를 보다가 역시 정식 발매되지 않은 500원짜리 < H2 >, <오렌지로드> 등을 봤다. 이후 <소년 챔프>로 대표되는 한국 만화 전성기를 지냈지.
 
혹 그중에서 처음으로 문화적 충격을 준 작품이 있나.
김준구
: 작품을 보고 나서 정말 쇼크를 받았던 건 이현세 작가의 <아마게돈>, 황미나 작가의 <파라다이스>였다. 그 두 작품은 연재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는 동시에 독자의 생각을 뛰어넘는 엔딩을 보여줬다. 그랬기에 독자들이 한국 작품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만화를 보고 한국 만화의 르네상스가 열렸다고 본다. 그 이후에는 일본 만화에서 임팩트를 받았는데, 가령 하라 히데노리의 <그래, 하자!!>를 보면서는 정말 깜짝 놀랐다. 같은 야구 만화라도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은 초반에 고전하긴 해도 히어로인 주인공이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래, 하자!!>는 초반 6권 정도까지 팀이 한 번을 못 이기고 훈련만 한다. 그러면서도 기승전결이 있고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덕질’의 시작이었나.
김준구
: ‘덕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건 그 이전의 <오렌지로드>였고, 거기에 불을 붙인 건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였다. 그게 만화책 계보라면 애니메이션 계보에선 <마크로스>가 ‘덕질’의 출발이었고. <마크로스> 극장판인 <마크로스 -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는 내 인생의 만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 원 주고 복사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당시 만 원이면 굉장히 비싼 돈이었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300번은 넘게 봤을 거다. 특히 소위 ‘민메이 어택’이라고 해서, 음악으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너무나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일하다가 힘들면 유튜브에서 ‘민메이 어택’ 장면을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한다.
 
만 원으로 만화를 복사했다고도 했지만, ‘덕질’을 위해선 역시 돈이 필요하지 않나.
김준구
: 정말 유일한 취미가 만화 보는 거였다. 여자친구를 사귀기 전까지는 모든 용돈을 만화에 들였던 것 같다. <소년 챔프>는 창간호부터 다 모았다. 또 만화 오타쿠인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혼자서 그 많은 만화책을 다 살 수 없으니 1권부터 10권까지 내가 사면, 11권부터 20권까진 친구가 사는 식인 거다. 당시 그래도 우리 집이 만화책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기에 친구들과 같이 사도 보관은 우리 집에서 했다.
 
“웹툰뿐 아니라 모든 인터넷 서비스를 통틀어 요일제 개념을 가장 먼저 만든 게 나다”

서울대 출신인 걸로 아는데, 공부를 잘하는 게 그 관대한 분위기와 연관이 있을까.
김준구
: ‘이웃집 만화가 종범씨’에서 이종범 작가도 했던 말인데, 공부는 만화를 보기 위한 권리 투쟁이다. 성적이 나와야 만화책을 봐도 안 혼나니까. 고등학교 때 수학 점수가 정말 높아서 애들이 어떡해야 수학 점수가 잘 나오느냐고 물으면 만화책을 보라고 했다. 어떤 말이냐면, 수학 문제가 안 풀리면 보통 해답을 보고 이해한다. 그러면 며칠만 지나도 까먹는다. 그런데 나는 문제가 안 풀리면 시간 낭비 안 하고 바로 해답을 보고 나서 ‘아, 이렇구나’ 한 뒤에 만화책을 봤다. 그러면 15분만 지나도 방금 본 해답이 하얗게 날아간다. 그러고서 다시 문제를 보며 15분 전에 본 해답을 떠올리려 노력하면 답도 떠오르고 풀이 과정이 내 안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효과가 컸고, 덕분에 집에서도 내가 공부하다 말고 만화책을 보면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그런 면에서 대학에 올라가 자유를 확보했을 때, 그리고 회사원이 되어서 현금을 확보했을 때 ‘덕질’의 양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김준구
: 대학 때는 스케일이 커지지. 전에는 번역서를 봤는데 과연 원서는 이 느낌일지 궁금해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됐다. 또 전에는 A라는 작품이 있을 때 그 작품을 보는 것에서 끝났다면, 대학 때는 과외로 번 돈을 퍼부어서 화보집이나 브로마이드 같은 파생 상품도 많이 샀다. 1997년에는 < H2 > 브로마이드를 사러 일본에 간 적도 있다. 그렇게 대학에 와서 좋아하는 작품을 소비하는 스케일이 커졌다면, 회사원이 되어서는 소비하는 영역이 다양해졌다. 전에 10명의 작품을 봤다면, 이제는 100명의 작품을 보는 거지. 지금도 한 달에 25만 원씩은 만화책을 사서 보는 데 꼬박꼬박 쓰고 있다.

굉장한 양이다. 혹 현재 웹툰 담당자라서 필요에 의해 구매하는 건 아닌가.
김준구
: 일 때문이면 이렇게까지는 안 할 거다. 왜냐면 나는 아마추어 작품까지 포함해 한국에 나오는 모든 웹툰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일로서 만화를 보는 건 다 한 셈일 거다. 그 외에 내 돈 주고 사서 보는 건 개인적인 충족을 위한 거겠지.
 
상당히 오랜 시간 만화를 봐왔는데, 꾸준히 보던 매체라는 것 외에 ‘이래서 만화가 좋다’는 자의식이 있나.
김준구
: 흔히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닌텐도라는 말을 하는데, 현재는 모든 콘텐츠가 시간 점유율 싸움을 하는 시대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작가들이 불안해하며 과연 만화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데, 나는 무조건 살아남는다며 세 가지 이유를 댄다. 먼저 라디오 드라마를 제외하면 최고의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다. 영화에서 3D로 우주를 구현하려면 몇백억 혹은 몇천억이 들겠지만, 만화는 작가가 상상하고 그리면 비주얼라이징이 된다. 두 번째는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이기 때문에 방대한 세계관으로도 몇 년씩 연재하는 게 가능해진다. 세 번째로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음악까지도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 소비할 수밖에 없는 데 반해 만화는 한 시간씩 정독할 수도, 15분 만에 속독할 수도 있다. 자기에게 맞는 호흡대로 즐길 수 있는 거지. 그게 내가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화를 좋아했는데, 직접 그리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
김준구
: 꿈이 있었지만 빨리 접었다. 미술을 오래 배웠는데, 창작 영역은 노력보다 재능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편집자로서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능력과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건 전혀 다른 거더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삶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해서 철저히 분리한다.
 
창작을 접은 입장에서 만화 서비스 기획은 취미를 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겠다.
김준구
: 우선 한국 만화 작가에게 돌파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소명 의식이 있었고, 내가 열광한 한국 작품이 몇 되지 않는데 나 같은 마니아들이 볼 만한 작품을 이 플랫폼을 통해 생산해보고 싶다는 것과 원래 만화를 안 보던 이들도 만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 포부였다. 현재 일본 만화 시장을 보면 굉장히 마니악하게 가고 있는데, 그게 딱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시장의 흐름이다. 1,000만 부 팔리던 잡지가 그만큼 안 팔리니까 100만 부 10개를 만들고, 그마저도 잘 안 되니 10만 부로 몇십 개를 내는데, 독자 저변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마니아 한 명당 소비량이 늘어나는 식이다. 그러면 시장이 좁아진다. 다행히 네이버 웹툰의 경우 이용자가 1,700만 명에서 2,000만 명 정도 되는데, 그런 식으로 시장이 일본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게 만화 시장에서 웹툰의 가장 큰 기여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적 콘텐츠를 수급해야 하는데, 네이버 웹툰 초기 그나마 출판 경험이 있는 건 김규삼 작가 정도였고 조석, 김선권 작가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김준구
: 파란과 다음에 이어 우리가 세 번째 주자였는데, 파란에는 판타지의 극에 이른 양영순 작가의 <천일야화>가 있었고 다음에는 드라마의 극에 이른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가 있었다. 후발 주자는 뭐가 됐든 기존 시장과 달라야 하므로 전략적 측면에서 개그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소규모 예산에서 성공을 이뤄내야 했기 때문에 고심해서 작품을 골랐다. 원래 김규삼 작가의 <역전 시네마>를 좋아해서 또 다른 작품인 <몬스터즈>를 봤고, 이런 개그 센스면 분명히 대중에게 먹힌다고 생각해서 연재 제안을 하여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가 나왔다. <마음의 소리>는 그보단 조금 쉽게 고른 경우인데, 당시 ‘도전만화’에서 <마음의 소리>를 응원하는 팬이 많았으니까. 그 두 작품이 폭발력을 보여주며 서비스가 힘을 받을 수 있었다.
 
본인의 취향은 편집자로서의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
김준구
: 개인과 편집자의 역할은 분리하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나중 탁구부>의 후루야 미노루인데, 만약 내 취향대로 하면 그런 풍의 만화만 네이버 웹툰에 오를 거다. 하지만 서비스를 할 때는 작화, 소재, 연출의 패턴을 정리해서 작품 하나하나 연령별·성별 핀포인트 타깃팅을 하려 한다. 이건 만화 오타쿠보다는 공학도로서의 접근인 거지.
 
그렇다면 만화 오타쿠로서의 경험은 어떻게 활용되는 것 같나.
김준구
: 웹툰뿐 아니라 모든 인터넷 서비스를 통틀어 요일제 개념을 가장 먼저 만든 게 나다. 일반 대중이 마니아가 되는 과정에서 주기적인 사용 패턴을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마니아 독자가 연재 시간에 예민하다는 것 모두 내가 만화 오타쿠였기에 알고 있는 패턴이다. 그래서 네이버가 다른 곳보다 업데이트 시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고. 이게 성공하면서 보편적인 웹툰 서비스의 패턴이 된 거다.
 
이 일을 하면서 만화에 대해 더 배우게 된 게 있을까.
김준구
: 작가를 만나면서, 외부에선 그저 오타쿠로서 몰랐던 것을 많이 배우게 된다. 채색에서 쓰리톤이 왜 어려운지, 스토리가 막혔을 땐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것들은 작가와 만나고 그 과정을 수반하면서 알게 된 거다. 그러면서 만화를 많이 본 사람으로서 조언할 때도 있고, 잘하고 있다고 모티베이션을 주기도 하는데, 후자가 제일 중요하다. 독자들이 재밌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집자가 작가에게 끊임없이 믿음을 줘야 한다. 만약 내가 이러이러한 패턴이 있다고 조언한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쓰는 작가는 없다. 그런데 A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에게 내가 B라는 패턴을 조언하면 그것만으로 C라는 새롭고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실제로 좋은 결과물을 계속 내놓았고, 최근 PPS라는 수익 모델까지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그다음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나.
김준구
: 국내에서 어느 정도는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이 작가들과 만화계를 위해 해외까지 나가고 싶다. 세계의 조석, 세계의 하일권, 세계의 SIU가 되게끔 하는 게 그다음 목표이고 내 ‘덕질’의 완성일 거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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