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生列傳│① <미생>, 우리 존재 파이팅

2013.07.23

未生列傳

① <미생>, 우리 존재 파이팅
② 윤태호 작가 “내가 규정한 영업3팀은 직장인들의 꿈동산”
③ 오 차장부터 선 차장까지, 인물별 수(手) 분석
④ 여섯 명의 창작진, <미생>에 반하다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턴 과정과 프레젠테이션 시험을 통해 ‘일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전쟁’(28수)에서 승리한 장그래는 2년제 계약직으로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하는 첫날 독백한다. ‘이곳이 내 인프라다.’ 그리고 2년 뒤 회사를 나오며 다시 독백한다. ‘내 인프라는 나 자신이었다.’ 이 순간 그가 경험했던 수많은 프로젝트와 여러 사람과의 인연은 회사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나라는 하나의 소실점으로 소급한다. 이것은 <미생>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사실 하나의 관점으로 읽어내기에 <미생>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분량의 문제는 아니다. IT 영업팀 박 대리를 보며 장그래가 깨닫듯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으며 <미생>은 그토록 많은 각각의 바둑을 종으로 횡으로 펼쳐낸다. 터키 관련 사업에서 안전한 방향을 지향하는 김 대리와 승부사적 기질의 오 차장(당시 과장)이 갈등하는 것처럼 장그래가 포함된 중심 에피소드 안에서 각각의 바둑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사수에게 반항하는 한석율의 이야기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선 차장의 경우처럼 작품의 조연들이 독립된 에피소드 안에서 자신의 바둑을 두기도 한다. 이것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닌 각각의 당위로서 제시되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이 작품 안에 그리고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공간 안에 공존한다.


회사는 곧 수많은 ‘나’에서 시작된다


‘개인 사업자의 집합’(140수)인 종합상사가 <미생>의 무대인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회사에서 개개인은 ‘누군가에겐 톱니로 불리’(1수)지만, 그 하나하나의 이는 결국 개인이다. <미생>이 기존의 어떤 작품보다 직장의 리얼한 모습을 그리면서도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톱니바퀴라는 거시적 시스템 안에서 톱니의 의미를 찾는 동시에 각각의 톱니가 하루하루의 치열함으로 자리를 지켜준 덕분에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걸 미시적으로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돌은 수 안에서 의미를 갖지만, 돌이 없다면 수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생>은 회사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수많은 ‘나’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그 둘이 동의어일지 모른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원 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장그래라는 한 개인의 성장 서사로 소급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함)이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오직 바둑판만을 보고 살아온 그는 사회에선 아직 미숙한 자아다. 요르단 수출 건의 아이디어와 명분을 끌어내는 등 종종 신입답지 않은 활약을 하지만 여전히 온전한 하나의 톱니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업무 능력도 모자라며 회사 안의 정치한 부분을 짐작할만한 깜냥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미세한 성장, 가령 일반적인 문장을 무역용어로 요약하는 과정이 하나의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건 특유의 디테일한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걸 통해 닿아야 할 한 사람 몫의 회사원이 시시하게 그려지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작품의 곳곳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개인의 당위들은 장그래에게 배움의 대상이다. 컷과 컷 사이 통찰력 있는 내레이션들은 전지적 입장의 가르침이 아닌, 보고 들은 각각의 당위에 대해 곱씹은 배움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미생>은 결국 ‘미생’ 장그래가 ‘어디 가서든 잘할’(144수) 장그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곳이 내 인프라라는 처음의 생각과 나 자신이 인프라라는 지금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같다. 오 차장과 김 대리가 있는 영업3팀은 ‘미생’을 위한 훌륭한 인큐베이터였고 그 안에서 성장한 장그래 안에 그 모든 배움은 남아있다. 어디 가서든 잘할 수 있는 장그래가 되는 순간 무대는 꼭 원 인터내셔널이 아니어도 꼭 영업3팀이 아니어도 된다. 다양한 종류의 성격과 관점, 당위를 경험하고 곱씹으며 다져진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장그래가 만나고 <미생>이 소개했던 수많은 ‘나’들이 준 가르침이 한 사람을 성장시킬 만한 것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작품이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자화자찬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이 작품의 끝에서 ‘나’란 역시 이렇게 소중한 존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기분 좋게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 자신일 텐데.

글. 위근우
 



직장생활 만화 <미생>이 독자들의 큰 호응을 끌어낸 것은 오늘날 화이트칼라 노동의 면면을 세밀하게 소재로 반영한 현실성 덕분이다. 그런데 그 호응이 일회성 공감대를 넘어 공전의 히트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현실적 상황에서 무언가 대리만족을 주고 응어리를 풀어주는 판타지적 요소들이기도 하다. 사업기획 발표현장을 긴장감 넘치는 전쟁처럼 그려낸다든지, 내용의 현실성과 연출의 판타지성을 결합하는 대목의 재미는 꽤 알아보기 쉽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미묘한 재미는, 현실적 그럴듯함이 넘치면서도 무언가 판타지스럽게 건너뛰고 넘어가는 느낌이 드는 부분들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미생>은 오늘날의 노동현실을 두루뭉술하게 뭉개지 않는다. 주인공 장그래는 “스펙”이 부족하기에, 인맥에 의한 낙하산으로나마 비정규직의 취직 기회를 잡는다. 아무리 업무에서 노력한들, 그런 위치에서 시작한 계약직이 정규직 전환을 얻어낸다는 허울 좋은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오늘날 월급쟁이들의 험한 처지에 대한 상징이나 다름없는 쌍용노동자 분향소가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분향을 한다. 하지만 정작 작중에 노조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큰 틀은 거대한 관료 조직이라는 기계가 나름의 룰을 통해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모습과 그 안에 톱니바퀴이면서도 인격체로서 기능하는 개개인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들의 대처만 있을 뿐, 연대와 조직화에 의한 개선은 제외되어 있다. 일종의 자기계발 판타지라고 꼬집어볼만 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현실이 겹친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턱걸이하기도 힘겹고, 그중에서도 사무직은 더 낮다.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은 정규교육과정으로 배우는 것도 아니며, 사회적 규범으로서도 충분히 비주류다. 즉 연대에 의한 개선이 아니라 개개인의 각성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현실적 판타지에서 다시금 현실을 읽다

<미생>은 그럴듯하지만 실은 판타지이고, 그런 판타지 안에 다시금 현실이 담겨있는 부분들로 가득하다. 직장인의 업무 묘사는 충실하게 현실적이다. 하지만 장그래가 일하며 정체성을 찾고 깨우침을 얻는 모습에 대해서는 판타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월급 받으러 직장에 가지 무슨 회사에서 득도하냐는 비판이다. 이렇듯 직장에서 벌어지는 어떤 상황을 통해 세상사에 대한 교훈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대목은 시적이라는 칭송과 닭살스러운 훈계질이라는 각기 다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한국 사무직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직장 관계에서 얻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만큼 직장 외의 나머지 인생이 빈약하다는 말이다. 일터에서는 날카로운 합리성을 자랑하는 오 차장이 가족여행을 다녀오면서 정작 가정에서는 그저 겉돌고 있었을 뿐이었음을 깨닫는 모습은 슬프게도 전혀 판타지가 아니다.

현실적 디테일에 끌려서 읽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깨달음과 성장이라는 판타지가 가미된 서사로 즐거움을 얻는 것에서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미생>을 한층 더 유용하게 감상하는 방법은 바로 그 위에 다시금 우리들이 처한 현실의 모습들을 반추하는 것이다. 작품을 위안의 쾌감으로 소모하지 않고, 성찰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근래 어떤 작품들보다도 뚜렷한 <미생>의 미덕은, 바로 그런 식의 읽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대리급 직원이 거의 신선 같은 경지의 통찰로 훈계를 직접 던져주거나, 맞벌이 남녀관계의 부당한 일 분담에서 너무 쉽게 양시론으로 흐른다거나, 극적 판타지가 과도해 보이는 대목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극의 단선적 흐름만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울 만큼 동시대적 현실의 모습들을 풍부하고 세밀한 디테일로 반영하여, 작품과 현실을 다시 비교하게 만든다. <미생>은 연재 댓글란의 독자들로 하여금, 으레 하는 칭찬 너머 자신들의 직장생활 경험과 처지를 나누도록 만든 귀한 작품이다.
글.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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