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언빌리버블한 성취에 모두다 축배를!

아카데미 쾌거는 101년 한국 영화 저력의 결실

2020.02.10

지난 1월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서 이정은(왼쪽), 송강호(오른쪽)와 함께한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타임머신을 타고 사전 검열이 살아 있던 1980년대 충무로 아무 극장 앞에 나가본다고 상상해보자!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에게 2020년도에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4개 부문을 수상한다고 말한다면 믿는 사람이 과연 하나라도 있을까? 아무리 한국영화에 애정이 많은 사람이라도 “에이 설마”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 40여년이 아닌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칸 국제영화제는 몰라도 아카데미상은 힘들지 않을까”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0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총 4개 부문을 수상,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놀라게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사실 국제 영화제이기보다 미국 국내 영화를 대상으로 한 ‘로컬 영화제’에 가까운 게 사실. 보수적인 할리우드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완성도와 장르롤 능수능란하게 오가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은 봉준호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증대되는 계급 충돌과 대립을 다룬 강렬한 메시지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국민적 경사일 뿐만 아니라 101년째를 맞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경사다. 또한 전 세계 영화사에 경이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기념비적인 성취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것부터 아시아 영화로서 아카데미상과 칸국제영화제 작품상 동시 수상 등 최초인 것들의 숫자를 세는 것만 해도 지칠 지경이다. 데뷔 이후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언빌리버블’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봉준호 감독은 ‘언빌리버블’한 사고를 치며 전 국민에 문화적인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전 세계 영화사에 남을 만한 거장 반열에 등극했다.


‘기생충’의 ‘네버엔딩’ 수상행렬이 더욱 고무적인 건 봉준호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공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쓰여진 각본으로 한진원 작가가 봉감독과 함께 수상한 건 의미 있게 봐야 할 대목이다. 또한 지난달 20일 열린 미국배우조합상에서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최우수 앙상블상을 수상해 과소평가된 것으로 보였던 연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걸 입증했다.


그건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카리스마가 있으면서 노련한 지휘관인지 알게 해준다. 영화란 바다를 항해하며 독선적으로 자신의 비전과 예술혼을 밀어붙이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합리적이고 능력 있는 선장인 셈. 그러기에 많은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고 함께 일하기를 소원한다. 작품상 수상 후 영화에 함께 참여한 모든 스태프들과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고 저절로 축하의 박수를 치게 된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쾌거는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란 시스템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이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엉뚱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영화청년’ 봉준호를 발굴하고 그의 꿈을 실현시켜 세계적인 거장으로 키워내는 데 일조했다. 101년 동안 쌓아온 한국 영화의 저력이 빛을 발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 실패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봉감독의 재능에 대한 믿음 때문에 ‘플란더스의 개’ 제작을 강행하고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흥행감독에 등극시킨 차승재 대표, 국내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괴수 영화 ‘괴물’의 신화를 함께 일궈낸 최용배 대표, '마더'의 투자 제작자 최재원 대표, ‘기생충’의 제작을 맡아 함께 영광을 나누고 있는 곽신애 대표, ‘살인의 추억’의 프로듀서 김무령 대표, ‘마더’의 서우식 프로듀서 등등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수많은 영화적 동지들도 함께 축하받을 만한 경사다.


특히 이번 경사가 남다르게 다가올 사람은 배우 송강호다.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영감의 원천이자 ‘페르소나’였다. 감독이 화가고 배우가 붓이라면 송강호는 최고의 붓이었다. 송강호가 있었기에 봉준호 감독의 머리속에 존재하던 비전이 완벽하게 스크린에 구현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20년 가깝게 봉준호 감독을 사랑하고 지재해온 영화 관객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2003년 ‘살인의 추억’은 525만, 2006년 ‘괴물’은 1091만, 2009년 ‘마더’는 298만, 2013년 ‘설국열차’는 935만, ‘기생충’은 1009만명을 동원하며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 이름 석글자만으로도 관객들은 보러갈 태세가 됐다고 할 만큼 믿고 보는 감독 ‘믿보감’ 반열에 올라섰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쾌거’는 모두가 기뻐할 일이지만 한국영화계에 풀어야 할 숙제도 제기한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를 중흥시킨 박찬욱, 김지운, 김용화 감독의 뒤를 이을 후배들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을 대체할 만한 재능 있는 신인들이 안 보인다는 관객들의 불만이 높다.


그러나 그건 창작자가 아닌 대기업이 주도하는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현재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기인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기 넘치는 신인감독들의 신선한 비전이 위험부담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제한되기에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공산품 같은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봉감독이 현재 충무로 시스템에서 나왔다면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도유망한 신인감독들의 재능을 살려줄 수 있는 시스템의 확립이 필요하다.


한편 봉준호 감독은 현재  한국 영화와 영어로 만들 글로벌 프로젝트 두 편을 준비 중이다. 이번 아카데미 수상으로 그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뜨겁다. 또 어떤 상상력으로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아찔한 쾌감을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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