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e별점] ‘99억의 여자’ 드라마의 공식을 깨버린 드라마!

2020.01.17
누구나 살면서 이런 경험 한 번씩은 해보지 않았을까? 뜻대로 물 흐르듯 잘 흘러가고 있다가 갑자기 이 확 틀어진 상황 말이다. 이런 일은 어리던 나이 많던 상관없이 대부분 겪게 되는 일이다. 반에서 제일 달리기 잘 하는 아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한테 졌을 때, 늘 1등 하던 아이가 전학 온 뉴 페이스의 등장으로 밀렸을 때, 말싸움을 하면서 이긴 줄 알았지만 상대방 언니의 등장으로 깨갱, 하고 아무 말 못 할 때. 이처럼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에게 졌을 때 그렇다. 어디 이뿐인가! 얼큰한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완성하고 보니 흥건하고 밍밍한 김칫국이 되어버렸고, 일기 예보에서 맑다고 했는데 갑자기 소나기를 퍼부을 때, 혹은 대박 날줄 알던 기획안이나 사업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실패할 때도 그렇다.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그래 세상 일이 맘대로 만만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다. 왜? 드라마의 속성이 어떤가? 1, 2, 3회... 이렇게 연속하여 시청하다 보면 스토리가 대략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 되고, 실제로 거의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지니까. 하지만 마치 시청자의 허를 찌르듯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KBS ‘99억의 여자’다. 한 마디로 말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 없는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99억의 여자’는 시작 직전부터 조여정, 김강우, 오나라, 정웅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드라마다. 게다가 조여정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던 영화 ‘기생충’ 이후 선보인 작품이어서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목이 ‘99억의 여자’란다. 오히려 100억이었으면 별 매력을 못 느꼈을 텐데, 99억이라니! 왜 하필이면 1억이 부족한 99억일까? 대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증까지 한껏 증폭시키니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는 드라마였다.  
▲KBS 2TV 수목 드라마 '99억의 여자'

이렇게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시작한 ‘99억의 여자’는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남편 정웅인(홍인표 역)에게 맞고 사는 여자 조여정(정서연 역). 그리고 그녀의 불륜남 이지훈(이재훈 역)과 그의 아내 오나라(윤희주 역). 그런데 알고 보니 오나라와 친구인 조여정. 이들의 관계만으로도 놀라운데, 99억을 싣고 가던 차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조여정과 이지훈이 돈을 훔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드라마에 더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99억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돈 가방 주인. 이들 사이에 돈 가방을 운반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남자가 이를 목격한 조여정에게 안주머니 안에서 간신히 USB를 꺼내 자신의 형인 김강우(강태우 역)에게 전해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죽는다.‘99억의 여자’는 초반 스피드한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으며 시청률까지 단숨에 끌어올렸다. 

그 후부터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스토리가 풀릴지, 작가와 수(?)싸움하는 것이다. 1, 2회 초반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마치 낚시 바늘의 미끼가 되었고, 시청자들은 이를 탁 무는 순간부터 앞으로 드라마 내용이 어떻게 될까, 대략적인 예상도를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 번 대부분 짐작하고 있는 예상도를 풀어놔 볼까? 우선 99억을 훔친 여자 조여정은 폭력 남편인 정웅인에게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큰돈이 화근이 되면서 불륜남 이지훈과 조여정의 사이가 나빠질 것이다. 그 사이에 조여정에게 USB를 건네 받은 김강우가 99억의 비밀을 밝혀내고, 조여정과 사랑에 빠질 것이다. 아마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스토리를 대략 짐작하면 더 이상 재미없을 텐데, 왜 계속 다음 편을 보는가? 물어본다면, 이것은 전체적인 아웃라인(outline)일 뿐 조여정과 김강우가 비밀을 어떻게 밝히고, 99억을 과연 차지하게 될지, 혹은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어떻게 하다가 사랑에 빠질지 등의 디테일한 사건들까지 점쟁이처럼 딱 맞힐 수는 없으니까,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디테일한 사건이 궁금해서, 그걸 보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 듯, 모든 것이 완전히 빗나갔다. 분명 대부분의 드라마는 앞서 예측한 상황들에 디테일한 사건을 넣어서 한 편의 수목 드라마를 완성했텐데, ‘99억의 여자’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드라마의 공식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인물 관계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조여정과 김강우는 서로 협력하고 도우면서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조여정이 사랑보다 돈을 선택하며 관계가 멀어졌다. 가면을 쓴 채 앞에서만 친한 척 했던 조여정과 오나라는 서로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적대감을 갖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런 오나라와 김강우가 서로 한 편이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조여정과 조력 관계인 길해연(장금자 역)의 아들과 김강우는 친구인 반면, 길해연은 오나라와는 원수지간이기에 더더욱 관계가 꼬여 버린다. 또한 조여정은 자기 오빠를 죽인 범인인 임태경의 목숨을 살려주고, 그와 손을 잡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임태경과 김강우는 적대 관계로 임태경은 김강우를 죽이려고 한다. 정리해 보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드라마 공식을 깬 인물 구성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주인공 남녀를 중심으로 적대관계, 우호관계, 조력관계 등의 구성이 명확하다. 이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흐트러지지 않고 가게 마련이다. 물론 중간에 살짝 변경되는 경우는 있으나 그것은 악인이 회심하여 선인의 편에 서는 경우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 벌어질 뿐, 대체적으로 인물 간의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99억의 여자’는 어느 한두 명 소수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관계가 계속 바뀌고 있어 시청자들이 어느 한 방향으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토리 또한 드라마의 흔한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조여정이 99억을 훔쳤다면 끝까지 완벽하게 가졌다가 잡히거나 반성(?)하거나, 둘 중의 한 가지 방향으로 몰고 가서 결론을 내리게 마련인데, 99억을 아예 놓쳐 버린 제3의 상황으로 스토리가 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99억의 여자’는 인물 관계도, 스토리도, 기존의 드라마 공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재탄생하였다. 이런 경우 자칫하면 시청자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 동안 의식하진 않았어도 드라마의 기본적인 구조에 익숙해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99억의 여자’에 시청자들이 계속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긴장감 있는 스토리의 힘이다. 오히려 모든 것을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만들어 놓으니 시청자들이  궁금해서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내공까지 더해졌다. 고통과 외로움에 웅크리고 있다가 야망을 드러내는 조여정의 모습, 사랑, 의리,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김강우, 악인의 잔인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정웅인, 허세와 가식, 욕망의 얼굴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오나라 등이 드라마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고 있다. 

이제 종영까지 얼마 안 남은 ‘99억의 여자’. 이제부터의 관전 포인트는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인 인물 관계가 어떻게 풀리는지와 99억은 과연 누가 차지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이다. 

▫ ‘99억의 여자’, 앞으로 벌어질 내용을 종잡을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되는 드라마! 그래서, 제 별점은요~ ★★★★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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