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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호법, 세상이 바뀌는 기적

2019.12.02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마음에 새기거나, 기억에서 지우거나. 난 후자를 택했다. 그를 기억하면서는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아 어떻게든 잊으려 노력했다. 사진을 지우고 녹음 파일을 지우고 창호가 기억날 때면 그런 나 자신을 나무랐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잊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창호로 물들었고, 결국 나는 창호를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함께 꾸던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나는 홀로 나아가야 하지만 그 모든 발걸음에 창호가 함께하리라는 것을 안다.

‘할 수 있을까? 이거 거의 90% 확률로 불가능인데…….’
‘야! 너 김민진이야. 왜 못 해. 할 수 있어.’

내 친구 창호는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90%의 불가능도 이겨내게 했던 내 친구의 응원 덕분에 어쩌면 난 내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선물을 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창호는 어떤 친구였나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과연 나는 그를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난 ‘아버지’라는 대답을 하곤 했다. 인생에 큰 고민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마다 그저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편이 든든해지고는 했던,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기대게 되고 믿을 수 있었던 나의 동갑내기 ‘아버지’ 친구 창호는 작년 11월 9일 나를 두고 먼저 떠났다.

창호가 병실에 누워 의식이 없었을 때, 의사는 창호가 우리의 말조차 들을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렇게 한창 창호의 장기 이식 이야기가 흘러나와 깊은 고민 끝에 창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창호야. 네가 살아야겠다 싶으면 삶의 끈이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절대 놓지 말고 잡아. 여기 그 누구도 너 포기할 사람 없어. 근데 너무 힘들면, 그러면 남은 사람 걱정 말고 편히 떠나야 해.’ 그 순간 창호가 나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나의 손을 있는 힘을 다해 잡아 주었고, 그것은 창호의 처음이자 마지막 움직임이었다.

그가 힘겹게 버텨준 46일은 내게 기적의 연속이었다. 창호가 생전에 친구들에게 베푼 우정은 태어나 처음 보는 창호의 친구들과 나를 묶어주기에 충분했고,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못 할 일이 없었다. ‘음주운전은 살인입니다.’ 우리의 외로운 외침은 국민의 분노로 타올랐고, 어느덧 우리의 아픔은 그들의 아픔이 되어 있었다. 국민의 분노에 국회가 움직여, 그렇게 꿈처럼 내 친구는 ‘윤창호법’의 이름으로 이 사회에 영원히 남았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니?’
‘다른 사람들은 바보라서 가만히 있는 것 같아?’
‘해도 안 돼.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 하지 마.’

이번에도 이러한 말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희망에 차 무언가 시작하려고 하다가도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래. 내가 뭐라고……. 대단한 것도 하나 없는데’라는 생각이 나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역설적이게도 내 안의 사춘기 어린 아이의 힘이 커지곤 했다.

‘안 된다고?’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내가 해서 보여주지 뭐.’

뒷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내 친구 창호는 가능성을 믿지 않았으니까. 매사에 걱정이 많던 내가 처음으로 세상의 걱정들에 반기를 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긴 싸움의 끝에 어느덧 세상과의 타협이 무뎌진 어른의 내가 아닌, 사춘기 어린 아이가 이겨주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세상은 한 순간 드라마처럼 바뀌지 않으며, 절대 개인은 세상을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창호는 나로 하여금 ‘나의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큰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지만 ‘나의 세상’은 나의 마음을 바꾸는 그 순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타인의 세상을 바꾸어 줄 수 없다. 오직 나의 세상만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바꾼 ‘나의 세상’을 온전히 살아내면, 내 주변인들이 그들의 세상을 바꾸어 줄 것을 안다. 그렇게 하나가 모여 결국 전체가 변화할 것을 믿는다.

세상은 바뀐다. 나는 그 기적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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