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유산슬이라는 신인

2019.11.27
지난 18일 방송된 KBS ‘아침마당’에서는 ‘2020년을 이끌어갈 초특급 대형 트로트 신인’ 네 팀이 출연해 대결을 펼쳤다. 선배 박상철의 소개로 등장한 유산슬은 신인다운 패기로 무대를 휘저었고, 그가 부른 ‘합정역5번 출구’는 이날 두 번째로 높은 득표수를 기록했다. 사실 유산슬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다. 오전 7시20분에 출근해야 하는 생방송도, 어설픈 개인기로나마 원 샷을 얻어내는 것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무엇 하나 신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인생에서 두 번은 없을 것 같은 이 특별한 시간을, 지금 유산슬은 경험하고 있다.

그에게 트로트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비 내리는 여름날, 오래된 작업실에서 마주한 작곡의 대가는 유산슬의 본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산슬은 타고난 가수는 아니었다. 그의 운명을 알아본 대가조차도 유산슬의 재능에 대해서는 ‘1등은 아니고 장려상’, ‘천재는 아니고 영재’라는 평가를 내렸고, 그의 데모 녹음 파일을 들은 트로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트로트 황제’ 태진아로부터 53점이라는 박한 평가를 들어야했던 날에도, 유산슬은 노래만 들으면 모든 시름을 잊고 몸을 흔들어댔다. 재능을 압도하는 흥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노래 ‘안동역에서’를 부른 진성에게 유산슬이라는 예명을 받고, 얼떨결에 지역 축제의 작은 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트로트 이무기’의 전설이 시작됐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베테랑 트로트 가수들은 트로트 진흥회를 결성해 ‘유산슬 데뷔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고, 일찍이 그를 영재로 점찍었던 작곡의 대가는 물론,작사와 편곡의 대가까지 합류하며 운명의 데뷔곡 ‘합정역5번 출구’가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어 갔다. 이 과정에서 유산슬이 만난 재야의 고수들은 그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다. 40년간 트로트 가수들의 옷을 만들어온 디자이너, 한국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불리는 최고의 세션맨들, 노래에 영혼을 불어넣는 코러스 가수까지. 언제나 어리둥절했던 유산슬의 표정은 비로소 진지해졌고, 두 번째 곡 ‘사랑의 재개발’을 완성했을 무렵에는 트로트 가수 최초의 버스킹 무대를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 부담감에 어쩔 줄 모르던 유산슬은 어느새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신인인 자신을 대신해 앙코르 요청을 받은 선배 김연자의 무대에 난입해 정신없이 몸을 흔들 정도로.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 유산슬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유산슬을 검색하면,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침마당’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 복도를 걸어가던 그는 29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데뷔했던 유재석은 2019년 같은 장소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트로트를 부르는 유산슬로 새롭게 나타났다. 무대 뒤에서 신인 트로트 가수들을 격려하던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인 시절 개인기를 선보이고, 여느 방송에서처럼 청산유수의 말솜씨를 뽐내면서도 떨리는 손과 마른침을 삼키는 모습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가장 성공한 개그맨 중 한 사람인 유재석에게도 신인 시절이 있었고, 여전히 그 마음이 남아있음을 엿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최근 몇 년간 미디어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그에게는 늘 위기론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기꺼이 신인으로 돌아간 유재석은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도전을 시작한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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