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방송국 놈들’ 앞에 나타난 거대 펭귄

2019.11.27
EBS ‘자이언트 펭TV’의 대표 캐릭터 펭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펭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00만 명 달성을 앞뒀고, 각종 공기관, 의류브랜드 스파오, 영화 ‘백두산’과 ‘천문’ 등 방송 외 시장까지도 날개를 뻗치고 있다. 유튜브 예상 수익 조회 사이트 녹스인플루언스에 따르면 ‘자이언트 펭TV’의 월 예상 수익은 지난 4일 구독자 40만 명을 기준할 때 월 5400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90만 명이 넘은 지금은 이보다 더 큰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며, 일각에서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연내 출시될 MD 등의 판매 이익을 포함하면 수천억 원에 달하는 뽀로로의 산업적 가치에 견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EBS의 당기순손실이 212억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펭수가 틈만 나면 EBS 김명중 사장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냥 유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펭수의 신분은 EBS 연습생이지만, 펭수는 이미 EBS의 스타다.

펭수는 이제 열 살이지만 키는 2미터가 넘는 펭귄에, 성별은 알 수 없다. 꿈은 인기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고, 구독자 수를 모으기 위해 인기 있는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중에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유튜브 구독자 만 명 돌파시 삭발’을 내세우는 것도 있다. 구독자를 모으려는 유튜버들이 하는 과격한 내기를 EBS 캐릭터가 한다. 하지만 매니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펭수는 이에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소송을 건다. 재판을 맡은 어린이들은 ‘약속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매니저는 조연출인 자신은 삭발이 싫었지만 ‘을’로서 ‘갑’인 선배 PD들 앞에서 선뜻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없었다고 호소한다. EBS의 ‘선’을 넘는 것 같았던 소재는 아이와 어른이 각각 공감할만한 현실과 함께 ‘권리 보장’이라는 교육적인 가치를 제시한다.

때론 아슬아슬해 보이는 펭수의 당돌함은 본질적으로 ‘위’를 향한다. 펭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선배에게 반기를 들고 김명중 사장의 이름을 그냥 ‘김명중’이라고 부른다. 반면 청소년 출연자들을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호칭하고 존중하며 겸손한 자세로 입시 미술, SNS 활용, 졸업사진 촬영, 수학여행 옷차림, 아이돌 연습생활 등에 대해 배운다. 펭수는 제작진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엄격하고 아이들에게 싹싹하다. ‘특별해서 외로운 별’ 펭수는 유달리 큰 덩치 때문에 남극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있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펭귄이다. 낮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걸그룹 오디션에 참가하고 공룡 알을 품어 부화시키기도 하는 펭수는 젠더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다. 자연 보호와 동물권 보장에 관심이 많고, 달리기를 못해서 고민이라는 친구에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잘하는 게 분명 있을 겁니다. 그걸 더 잘하면 돼요”라고 말해주는 따뜻함도 지녔다. 펭수는 소수이자 약자,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으로서 존재하고 삶의 교훈을 전달한다.

펭수는 과거 행적이나 미래에 발생할 논란의 위험성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펭수를 적절한 선 안에 위치시키는 ‘자이언트 펭TV’의 연출과 편집이다. 펭수가 성우 수업 도중 “사이코패스가 된 것 같다”라고 혼란스러워하자, 제작진은 이를 ‘기분이 이상해요’라는 자막으로 대체하며 이해를 돕는다. 펭수는 학교폭력 가해자를 향해 “죽탱이 날리겠다”라고 하지만, 자막은 ‘맴매할거야’로 순화된다. “전체적인 성격의 특성은 공유하지만 디테일은 펭수가 직접 말한다. 마음껏 말하게 한 뒤 편집으로 해결한다. 완성형 캐릭터가 아니고 성장하는 캐릭터이기에 틀에 가두지 않는다”(‘한겨레’)라는 이슬예나 PD의 말처럼, 펭수는 키가 크다는 설정부터 상대방의 말에 재치있게 대처하는 순발력, 비트박스, 랩, 요들송 등 각종 개인기까지 대부분을 담당 연기자에 의존하고 있다. 제작진의 연출과 편집은 연기자의 즉흥적인 언행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EBS가 지켜야할 것들 안에서 포용하도록 만든다. 펭수가 걸그룹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그는 ‘잠시 쉬는 시간 가졌지 / 이건 운동 뒤의 등목’이라는 가사로 랩을 한다. 스윙스의 ‘불도저’ 중 일부로, 해당 곡은 잔인한 묘사, 비속어, 여성혐오 표현이 포함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 곡이다. 제작진은 이 장면 직후 PC 오류 화면처럼 파란 배경에 ‘듣도 보도 못한 노래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라는 자막을 삽입하는 것으로 무마하려 한다. 펭수가 EBS가 다룰만한 소재나 방송윤리를 넘어서면서 규칙을 깨버리는 재미를 주면, 제작진은 기획을 통해 설정한 틀부터 편집까지 펭수를 EBS의 가치 안으로 유도한다.

펭수는 물론 제작진 전체가 프로그램 안팎에서 가상의 세계관을 준수하고 펭수의 실체를 묻는 질문에 “펭수는 펭수다”라는 답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펭수의 정체성은 단순히 동심을 보호하거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몫이다. 펭수의 탈을 쓰고 연기하는 ‘사람’이 부각될수록 펭수가 ‘자이언트 펭TV’에서 보여주는 재미있는 태도와 가치있는 메시지의 균형은 무너진다. 펭수가 EBS 바깥의 미디어에서 활동한 이후, 그의 언행이 아슬아슬해지는 것은 그래서다.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서 펭수는 홍진호에게 “2등은 없다. 기억해 주지 않는 세상”이라며 그의 경력을 폄하한다. 그 순간 꿈을 위해 노력해온 펭수의 서사는 지워지고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가 성황이었을 당시 온라인상의 밈이었던 ‘콩 까기’만이 남는다. 함께 출연한 배성재와 홍진호 역시 펭수에게 흡연 여부를 묻거나 ‘야동’을 언급하는 등 10세 펭귄에게 적절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 EBS 바깥의 미디어는 펭수를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10살짜리 펭귄이 아니라 한국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아는 사람처럼 대한다. 그리고 펭수와 펭수 안의 연기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JTBC ‘비하인드 뉴스’에서 박성태 기자는 외교부 출입 당시 신원 확인 과정을 보도하며 “펭수는 지금까지 본인의 성별에 대해서 남자나 여자, 이런 성별이 없다고 주장해 왔는데, 제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펭수의 성별이 수컷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힌다. 손석희 앵커는 “모르고 넘어갈 때 더 좋은 게 있다.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는 거다”라고 마무리했지만, 이미 펭수 연기자의 주민등록번호로 펭수 캐릭터의 성별을 특정한 뒤였다. 대외 인터뷰에서 ‘펭생’을 말하고 ‘선배님들의 수능’을 응원했으며, MC들의 질문에도 일관성있게 “성별이 없다”,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없다”라고 대답해왔던 펭수는 순식간에 ‘펭수의 탈을 쓴 연기자’로서 매체에 노출된다.

펭수가 본격적으로 인터넷상의 화제가 된 것은 MBC ‘아육대’(‘아이돌 스타 육상 선수권대회’)를 패러디한 ‘E육대’(‘EBS 육상대회’)부터였다. ‘E육대’는 한국 연예계의 선후배 문화를 풍자하고, 인간 중심으로 기준을 맞춘 운동 경기에서 펭귄이 불리한 점을 지적하면서 조건과 상관 없이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이 오히려 불공평할 수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자이언트 펭TV’는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를 패러디하면서 이들 미디어 속 콘텐츠의 문제를 풍자했다. 지상파 TV와 유튜브를 넘나들고, 유튜브의 태도로 기존 미디어 콘텐츠의 틈을 파고들어 갖고 놀았다. 그러나 펭수가 EBS 외의 방송사에서 주목할 만큼 스타가 된 순간, 미디어는 늘 하던 대로 펭수를 소비한다. 기존 포맷에 게스트를 데려다 놓고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소모하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가치관으로 펭수를 바라보려 한다. 펭수는 기존 미디어의 규칙들을 흔들면서 화제가 됐지만, 미디어는 여전히 펭수를 자신들의 방식으로만 소화한다.

‘자이언트 펭TV’와 펭수는 “EBS는 가르치려 드는, 애들이나 보는 프로그램이라며 성인 예능 채널을 시청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청층을 확보하기 위한 제작진의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방송 초반에는 ‘피지컬 갤러리’, ‘흔한남매’ 등 1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들과 협업하며 유튜브 콘텐츠의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했고, 펭수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E육대’에서는 “국장님, 저 열심히 했어요”라고 호소하는 짜잔형이 상징하듯, 재정난을 이유로 ‘딩동댕 유치원’과 ‘방귀대장 뿡뿡이’ 제작을 중단하고 수 개월간 기존 방송을 재활용한 EBS의 뼈아픈 현실을 꼬집었다. 한편으론 ‘꼰대’로 부상한 뚝딱이가 지적받은 잘못을 반성하고 펭수와 화해한다는 뒷이야기를 통해, 앞선 방송에서 희화화된 ‘위계를 위시한 폭력’이 문제라는 점을 짚으며 아이들의 모방하지 않도록 했다. 펭수는 EBS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소재들을 다루면서 오히려 소수와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EBS가 다뤄야할 이 시대의 가치를 성인들에게까지 전달했다. EBS는 펭수를 통해 EBS가 보여줘야 할 가치를 구현했다. 반면 나머지 방송사들은 펭수를 또다시 그들 바깥에서 성공한 ‘초대손님’처럼 대할 뿐이다. 펭수 같은 캐릭터를 만들 생각 대신 펭수 안의 연기자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그 태도야말로 2019년, 대부분의 방송사가 재미도 의미도 없어지고 있는 이유 아닐까.




목록

SPECIAL

image 아이유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