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차트│② 빌보드가 스트리밍 시대에 적응하는 법

2019.11.05
빌보드 차트의 권위는 이른바 지표성과 확대재생산성을 통해 세워지고 유지되어왔다. 주로 라디오 프로모션에 의해 대중의 지갑을 열게 한 음악의 순위를 매김으로써 ‘히트곡’을 정의하는 지표가 되었으며, 그렇게 차트에 오른 곡의 파급력과 수익이 극대화되는 창구로 작용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위상은 예전보다 못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티스트의 성공과 히트곡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었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음악시장이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대안이 되는 플랫폼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현재 몇몇 장르의 경우, 해당 업체의 차트나 플레이리스트의 영향력이 빌보드를 넘어선다. 특히, 확대재생산 측면에서 그렇다.

스포티파이의 랩/힙합 플레이리스트 ‘랩캐비아(RapCaviar)’는 좋은 예다. 전 세계 대중음악계의 모든 차트와 플레이리스트를 통틀어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로 유명하다. 주마다 업데이트되는 랩캐비아의 선곡은 스트리밍 횟수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 이는 대부분 빌보드 차트 랭크로 직결된다. 빌보드 차트의 확대재생산성이 현저하게 약해지고, 지표로서의 역할만 부각되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확실히 (한국과는 다르게) 큐레이션의 시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빌보드의 탁월한 지점 또한, 이 같은 현실로부터 비롯됐다. 무게중심이 차트 본래의 기능으로 완전히 쏠리다시피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세분화된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빌보드의 시도는 음악적인 측면과 산업적인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퍼포먼스의 형식과 프로덕션의 특징을 기준 삼아 랩과 힙합을 분류하거나 최소 세 개 이상의 장르 퓨전이 보편화된 현재를 반영하여 같은 곡을 다른 장르 차트에 동시 랭크하는 것 등이 전자의 예라면, 순위 측정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적용을 시도하는 것은 후자의 예다. 물론, ‘케이팝 핫 100’을 포함한 인터내셔널 차트(International charts)처럼 양쪽 측면을 전부 고려한 분야도 있다.

이중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산업적인 측면을 고려한 지점이다. 지난 2014년부터 빌보드는 종합 앨범 순위인 ‘빌보드 200(Billboard 200)’의 순위를 산정할 때 기존의 앨범 판매량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횟수 역시 반영하기로 했다. 그 방식이 흥미롭다. 한 아티스트가 10개의 디지털 트랙을 판매하거나 1,500번의 스트리밍을 기록할 때마다 앨범 한 장을 판매한 수준의 점수가 부여된다. 이후, 각 장르 차트에도 이 방법이 적용됐다. 당시 빌보드 측은 많은 사람이 음반 구입 이외에 다양한 플랫폼으로 음악을 즐기게 되었기 때문에 각 앨범의 성공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2013년, 제이지(Jay-Z)의 정규 12집 ‘Magna Carta... Holy Grail’에 대한 빌보드의 플래티넘 인증(*필자 주: 100만 장 이상 판매) 거부 사건도 좋은 예다. 그해 제이지와 삼성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해당 앨범을 발매일 전에 갤럭시 유저들에게만 무료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삼성은 무려 100만 장을 선구매했다. 이론대로라면, 제이지는 앨범을 내자마자 플래티넘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판매량을 집계하는 단체인 ‘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RIAA)’가 제이지의 마케팅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본인들이 만든 일명 ‘30일 원칙(The 30-day rule/*필자 주: 앨범 발매일로부터 30일 후 집계 가능)’ 규정까지 바꾼 상황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빌보드가 ‘RIAA’의 규정 변경에도 삼성이 구입한 100만 장을 집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으며, 실제 첫 주 판매량에 이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진실성과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전통적 기준을 고수한다.’라는 정신에 기반을 둔 결정이었다. 당시 이 같은 결과를 둘러싸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과연 빌보드의 선택이 옳았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그들이 예상치 못한 산업계의 변화와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던 순간이다.

음반 판매, 소비, 소셜 활동 등 모든 지표를 종합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의 순위를 매기는 ‘아티스트 100 차트’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트리밍 중심의 음악시장이 형성된 이후, 작품보다는 아티스트 자체의 영향력이 더욱 중시되면서 등장했다.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구입에서 구독으로 넘어간 것은 일본을 제외하면, 전세계적인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 음악시장을 기준으로 15년 전에는 신곡의 매출 비중이 64%였던 반면, 지금은 나온 지 18개월이 지난, ‘카탈로그’로 분류되는 매출의 비중이 정확히 64%라고 한다. 월이용료만 내면, 언제든지 수많은 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새 앨범이나 신곡에 돈을 많이 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시의성이 더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셈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한 아티스트의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드라마를 통해 구축된 영향력이 음원 구입으로 직결되는 사례가 많다. 자연스레 음반사의 마케팅 방향도 바뀌었다. 당장 새 작품을 구입해서 듣게 하기보다 꾸준히, 많이 듣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새 앨범을 발매했을 시 초반 싱글 홍보에 매진하던 이전과 달리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영상을 제작하여 약 1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공개하는 작금의 모습도 이 같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음반사들이 K-POP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한 팬덤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의 경우 개별 곡의 매출은 상대적으로 미국의 유명 아티스트보다 떨어지지만, 앨범을 낼수록 음원 전체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렇기에 특정 아티스트의 카탈로그까지 꾸준히 듣게 만들어서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아티스트의 영향력 평가 지표가 필요했고, ‘아티스트 100 차트’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하는 중이다.

물론, 빌보드의 시도가 항상 유의미한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아티스트 100 차트’도 아직은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준과 방식을 고심하는 행위는 리스펙트할 수밖에 없다. 이젠 모두가 바라보고 의지하던 독보적인 차트가 아니지만, 빌보드가 여전히 일정 수준 이상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도 이 같은 태도와 시도 덕분이다. 음악의 수준을 떨어트리고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핵심요인, 실시간 차트에 목맬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적폐임을 알면서도 눈치게임만 벌이며 시간을 허비하는 중인 한국대중음악계의 현실을 떠올리면, 부러움은 배가 된다. 



목록

SPECIAL

image 아이유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