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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여자에게 권하는 SF 다섯 작품

2019.11.04
SF를 추천할 때 어려운 점은 두 가지다. 보통 분량 또는 시간이 제한된다는 점과, 선정 기준을 매번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C. J. 체리의 ‘다운빌로 스테이션’은 SF의 장점인 거대한 스케일을 살린 묵직하고 치밀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작가가 남자들의 세계였던 미국 SF계에서 책을 내려고 이름을 남자처럼 보이게 손 본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러나 분량이나 이후의 작품들과는 거리가 있는 1970-80년대에 나왔다는 점에서 입문자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이 SF에서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되, 되도록 최신의, 한국의, 여성 이야기를 골랐다. 지금 우리 사회에 근접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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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나의 우주 영웅을 위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수록)

영웅은 위대한 사람을 뜻하지만 원래 히어로의 어원은 수호자라는 뜻이다. 고전적 의미의 영웅은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며, 자신의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공동체를 구한다. 그러니 ‘나의 영웅’은 뛰어난 개인일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부류를 대변하는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다. ‘나의 우주 영웅을 위하여’에서 ‘재경 이모'는 가윤의 영웅이다. 원래 재경 이모는 최초로 터널을 통과해 우주 저편으로 갈 영광스러운 우주인으로 선발되었다. 우수한 성적을 내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열렬한 찬사와 기대를 받지만, 동시에 끈질긴 의심과 분노를 샀다. 재경이 작은 체구의 중년 여성, 동양인, 비혼모, 신체적 결함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재경이 표준 우주인은커녕 인간의 표준형에조차 미달한다고 여기고, 재경에게 결함이 없다고 믿을 만한 증거를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재경은 그에 부합하기를 집어치우기 때문에, 애초에 정상이나 표준을 상정하는 규격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재경은 사회의 ‘부적합’ 판단에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재경의 삶을 향한 비난은 실제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었다가 기혼 여성이 된 이소연 씨에게 쏟아진 비난과 닮았다. 소설과 현실의 차이는 두 번째 사람, 가윤이 있다는 점이다. 가윤은 재경이 있었기에 우주인이라는 진로로 향했고, 재경이 먼저 떠났기에 그가 가지 않은 길을 택한다. 재경은 가윤의 ‘나의 영웅’이고, 가윤은 영웅을 생각하며 또 다른 ‘최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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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 마이어, ‘신더’

‘신더’는 ‘신데렐라’에서 모티브를 딴 영어덜트 SF다. 이 소설에는 미성년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계모와 새언니, 넋두리를 들어주는 친구, 사랑에 빠질 만큼 잘생긴 왕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신더는 부엌데기가 아니라 기계공이다. 신더는 재투성이가 아니라 기름때투성이로 지내고, 유리구두 대신 기계 의족을 잃어버리고 떠난다. 이 새로운 동화에서는 주인공 소녀가 신분이 바뀌는 데 왕자님이 필요하지 않다. 신더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왕자는 악당 여왕의 위협에 시달리며, 원치 않는 결혼으로 나라를 통째로 빼앗길 위험에 처해 그저 시간을 끌 뿐이다. 그동안 신더는 모험을 떠나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동료를 만나고, 상실과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왕자를 구출하고, 혁명의 아이콘이 된다. ‘신더’의 신데렐라, ‘스칼렛’의 빨간 모자, ‘크레스’의 라푼젤, ‘윈터’의 백설공주는 원래의 동화처럼 각자의 고난에 시달리지만 이들이 싸우는 과정은 결국 모두의 전쟁으로 귀착된다. 이들 혁명군의 미덕은 순종이 아니다. 소녀들이 맡는 역할은 힘껏 싸우는 것이고, 싸우는 자리야말로 동화 속에서는 주어지지 않았던, 주인공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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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윌리스, ‘여왕마저도’ (‘여왕마저도’ 수록)

코니 윌리스의 ‘여왕마저도’의 매력은 다양한 세대의 여자들이 모여 싸우고 흉보고 투덜대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들은 복작복작하게 제 할말을 하지만 모임 주제에는 입을 모은다. 생리는 끔찍하다고. ‘여왕마저도’는 기술 발달 덕택에 ‘암메네롤’ 약 하나면 생리에서 자유로워지는 세상이 배경이다. 그런데 애물단지 딸내미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생리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할머니, 엄마, 외할머니, 언니 등이 소환되어 한마디씩 거든다. 생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현실에서도 생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물론 ‘암메네롤’과 달리 현실의 해결책은 부작용이 있거나 비싸고 불완전하다. 이런 진입장벽을 넘더라도 오래된 통념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생리가 자연스럽고, 거기서 벗어나면 부자연스럽고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연적이라고 곧 필수적이지는 않다. 적어도 ‘여왕마저도’ 속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 사이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생리 근절 앞에서는 힘을 합쳤다. 자연과 부자연에 관해 할말은 많지만, 한 가지 포인트는 ‘여왕마저도’의 가족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백 년 전에는 ‘여성의 자리는 집 안’인 것이 자연스러웠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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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목하, ‘돌이킬 수 있는’
‘돌이킬 수 있는’은 SF와 스파이 스릴러의 혼합물이다. 건조한 문체와 간결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선뜩한 반전이 나오고, 그 뒤로는 썰물처럼 빠르게 읽힌다. 초능력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능력의 충돌보다는 두뇌싸움에 무게가 실린다.
이 소설은 초능력자를 파쇄자, 복원자, 정지자로 분류한다. 파쇄자는 살아있지 않은 물건을 날려보낼 수 있고, 복원자는 되돌리고, 정지자는 멈출 수 있다. 능력자에 따라 강약은 있지만, 힘 자체는 가위바위보처럼 맞물려 있어 우열이 없다. 사람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폭력조직 비원과 부패한 경찰, 숨기를 택한 경선산성 사람들과 진출을 택한 비원 사람들, 또는 정여준을 죽이려던 윤서리와 윤서리를 죽이려던 정여준은 서로 팽팽히 대치한다. 한쪽이 공격을 택하면 다른 쪽은 정지를 택하는 식으로, 이들은 엇갈리고 공격하고 억누르며 대립한다. 그리고 어느 쪽도 우세하지 않아 균형이 맞을 경우 생기는 일들이 발생한다. 전쟁, 협상, 이해, 연애다. 연애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상승효과를 내는 대표적인 예다. ‘돌이킬 수 있는’의 중요한 전제는, 누군가 능력을 쓰려면 다른 종류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수신을 하려면 송신이 필요하고 정지하려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두 힘이 만나야만 가능성이 생긴다. 선택의 시점에,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난 복원자예요. 먼저 폭발해 다가오는 게 없으면 돌려보낼 수 없어요. 그러니 이번 희망도 부서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적어도 그 전엔 되돌리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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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섬의 애슐리
집은 여행의 최종 목적지다. 성공적인 모험의 결말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밖으로 나서면 좋을까. ‘섬의 애슐리’의 애슐리는 말하자면 집이 없는 사람이다. 애슐리는 섬과 본토 혼혈로, 드물게도 섬 사람의 외모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 그저 까무잡잡한 본토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섬 사람의 외모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못마땅하고, 섬 사람을 가벼운 경멸과 호기심으로 구경하는 데 익숙한 본토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존재다. 마을사람들 속에서 애슐리는 챔피언이 한때 본토 뜨내기에게 홀려 태어난 사람, 저항하지 않는 사람, 겉도는 사람이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던 소행성을 격추시키던 날, 정작 격추를 맡은 우주선이 추락하는 바람에 많은 본토 사람이 피난민이 되어 섬으로 흘러든다. 그 과정에 애슐리는 우연히 유명세를 얻고, 가짜 로맨스, 선전을 위한 결혼, 당사자와 상관없는 메시지에 뒤덮인다. 그는 뿌리가 연약한 수상식물처럼 물살이 이는 대로 휩쓸린다. 애슐리는 폭행을 당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 믿고, 솔직하게 말해봤자 저열한 관심에 소모되고 오용될 뿐이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뿌리가 자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애슐리가 추는 민속춤은 사실 짜깁기로 만들어진 것이라 근본이 없다. 그래도 몸에 배어 자기 몸짓이 된다. 그는 삶을 지속하던 어느 순간 자기를 드러내더라도 마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배운다. ‘섬의 애슐리’는 먼 곳의 가상의 이야기지만, 애슐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성폭력 폭로가 잘못이, 이혼이 부끄럽지 않은, 1인 가구가 4인 가구만큼 많은 사회로 가고 있다. 우리는 자기만의 집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자립을 싹틔우는 이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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