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덤’의 무대 다섯

2019.10.31
Mnet ‘컴백전쟁:퀸덤’(이하 ‘퀸덤’)에서는 여섯 여성 아이돌 그룹이 모여 각자의 무대를 펼친다. 이들은 미션 주제에 따라 상대의 곡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거나, 이미 알려진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아이돌에게 무대 기획과 콘셉트 선정과 프로듀싱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보여준다. 음악 산업 속에서 프로듀싱의 대상처럼만 보였던 아이돌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직접 자신들의 무대를 기획하고, 자신들의 강점과 정체성을 전략적으로 고려한다. 이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기획했기에 더 의미있는 ‘퀸덤’ 속 여성 아이돌들의 무대 다섯 개를 선정했다. 무대 기획의 아이디어 측면에서 돋보이는 무대들을 선정한 것으로,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선호도나 실제 경연 순위와는 무관함을 미리 밝힌다.


(여자)아이들 ‘LATATA’
Mnet ‘퀸덤’의 1차 사전 경연 주제는 각 팀의 대표 히트곡 공연이었다.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곡을 새롭게 보여줘야 하는 만큼, 각 팀은 기시적인 느낌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해야 했다. 이전까지 자신이 소속된 (여자)아이들의 곡과 프로듀싱을 대부분 담당한 전소연은 유명한 타이틀 곡인 ‘LATATA’를 주술사 버전으로 재해석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공포영화 ‘기담’을 레퍼런스로 삼아 내레이션을 외국어로 녹음해 인트로의 주술로 삽입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무표정한 얼굴로 음산한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민니가 인트로에서 이를 태국어로 연기하도록 했다. 1절 후렴구가 끝난 뒤의 댄스 브레이크는 원곡의 군무 대신 멤버들과 댄서들이 다양한 팔 각도로 주술을 형상화하는 안무로 바뀌었고, 2절을 시작하는 랩 파트 역시 경배하는 자세를 취하는 댄서들 사이에 전소연이 엎드리는 퍼포먼스로 변경됐다. 일관된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바뀐 구성들이 모이면서, 사랑하는 상대를 유혹하는 곡이었던 ‘LATATA’는 관중을 사로잡는 강력한 주술이 됐다.

‘LATATA’를 작사 및 작곡한 장본인인 전소연은 정작 무대에서 자신의 노래를 내세우지 않았다. 원래 ‘LATATA’는 레게 비트를 중심으로 같은 리듬과 멜로디를 원형적으로 반복하는 댄스곡에 가까웠다. 그러나 편곡을 거치면서 원곡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던 레게 비트는 과감하게 사라졌고, 무대 위의 서사에 맞추어 곡 전반이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조로 바뀌었다. 리드미컬하게 시작하던 1절의 도입부는 배경음을 최소화하면서 각 멤버들의 보컬에 무게감을 싣고, 1절이 끝난 후의 댄스 브레이크나 2절을 시작하는 전소연의 랩처럼 임팩트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곡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대신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표현한다. 특히 편곡은 각 멤버들이 등장하는 순간을 부각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저음에 강점을 가진 우기나 후렴 대부분을 담당하는 미연의 보컬이 원곡보다 두드러지게 됐다. 멤버들이 원곡의 군무로 절정을 표현하는 2절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곡 전반의 스케일이 확장되면서 화려한 마무리를 유도한다. 노래가 무대의 서사를 뒷받침하는 장치가 되면서, (여자)아이들의 멤버들은 노래의 일부가 되는 대신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집중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여자)아이들이 ‘LATATA’로 경연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단순히 주술사라는 생소한 콘셉트의 승리라고만 볼 수 없다. 전소연은 민니의 내레이션이나 2절을 시작하는 랩 파트처럼 곡의 주제를 표현하는 핵심적인 파트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가진 멤버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멤버들의 음색과 퍼포먼스가 주목받는 순간까지 고려했다. 특히 주술사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변경된 퍼포먼스를 1절 후반부에서 2절 초반부까지 집중적으로 배치한 후, 가장 임팩트가 필요한 순간에 자신이 직접 랩을 소화하며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2절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원곡의 군무가 기시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한정된 시간 안에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제약된 환경 안에서 새로운 장치와 원곡의 요소를 모두 효율적으로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전소연은 아이돌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방송 무대와 경연 무대의 차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음악과 퍼포먼스, 서사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퀸덤’을 통해 프로듀서이자 무대 기획자로서의 전소연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각된 순간이었다. 

AOA ‘너나 해’
“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AOA의 멤버 지민은 마마무의 ‘너나 해’를 새롭게 해석하는 2차 경연 무대에서 이 랩으로 포문을 연다. 그는 이전에 남자가 흔히 해왔던 쇼의 호스트 역할처럼 수트를 입은 채 멋지게 인사한 뒤, 원곡에는 없던 이 파트에서 ‘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이 지겠지’라는 가사를 이야기한다. 이는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강요받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 아이돌의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지민은 그 뒤에 ‘나무’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꽃’으로 인식되곤 했던 걸그룹의 멤버가 홀로 선 나무가 되어 이 무대의 호스트가 되고, 무대의 주인공이 자신, 더 나아가 AOA임을 선언한 순간이다.

AOA의 ‘너나 해’는 ‘나무’의 역할을 하는 여자가 무엇을 행동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보여준다. 지민의 랩 이후 역시 수트를 입은 AOA 멤버들은 양쪽에 여성 댄서들을 두고 중앙에서 춤을 추고, 이후 댄스 브레이크에서는 화제가 된 보깅 댄서들의 커플댄스로 반전을 보여준다. 수트를 입은 채 절제된 동작을 하는 AOA 멤버와 보깅 댄서의 결합은 기존의 많은 무대들이 보여준 남녀 댄서의 역할을 뒤집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AOA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곡의 후반, AOA를 중심으로 보깅 댄서와 여성 댄서들은 모두 모인 후 자유로운 대형 속에서 다양한 몸짓을 보여준다.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AOA, 여성댄서, 보깅댄서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나무’이길 원했던 지민의 선언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다양성의 공존으로 이어지면서 얼마나 화려하고 즐거운 축제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무대 위의 세상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을지 보여줬다는 점에서 AOA, 특히 지민이 주도한 무대 구성은 이 공연의 주인공 그 자체라고 할만하다. 영민하고 야심있는 무대 연출자의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깅 댄서들의 투입이 젠더 반전 등 무대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 전체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은 중요하다. 수트는 AOA가 역동적인 안무를 소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의상이었다. 멤버들의 춤은 전반적으로 평소보다 딱딱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이 무대에 맞춰 편곡된 ‘너나 해’는 밴드 사운드로 단순한 비트를 반복하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구성이 없었고, 전개를 바꿀 때의 연주는 건반으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등 무대 구성의 화려한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육체를 노출하는 의상을 착용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춤을 추는 보깅 댄서들은 시선을 집중시키고, 특히 축제처럼 연출되는 마지막 부분에서 크게 점프를 하는 등 역동적인 동작으로 클라이막스에 필요한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AOA의 ‘너나 해’의 무대 연출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물론,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의 현실적인 문제까지 고려해 해결한 솜씨좋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무’로 자신을 소개하며 호스트 역할을 맡은 지민을 비롯해 그들이 무대의 주인임을 분명히한 AOA가 있다. 본인들이 역동적인 동작을 하는 대신 마치 권력자와 같은 위압적인 표정으로 무대의 중심을 잡아 나가는 모습은 ‘퀸덤’이나 시상식 같은 특별 무대가 아니면 쉽게 보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여성 아이돌이 무대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대신 쇼를 주최하는 주인 역할을 하고자 한 지민의 랩과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 결과, 제멋대로 행동하는 연인에 대한 여성의 체념을 쿨한 말투로 표현하는 것에 가까웠던 마마무의 ‘너나 해’는 이 무대를 통해 상대에 대한 자신의 확실한 애티튜드이자 강한 경고의 맥락을 갖게 됐다. 걸그룹에 대한 편견을 깨겠다는 선언으로부터 시작해 새로운 볼거리와 원곡의 의미를 확장하는 해석까지, ‘퀸덤’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게 된 무대. 이 무대가 단지 보깅 댄서의 등장만으로 화제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마이걸 ‘Destiny(나의 지구)’
“(러블리즈와) 비슷하게 보실까 봐 진짜 걱정이에요.” 상대 팀의 곡을 재해석하는 2차 경연을 준비할 당시 오마이걸 승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오마이걸은 마마무를 상대로 경연을 하고 싶어했지만, 마마무가 상대 팀으로 AOA를 선택하면서 평소 이미지가 겹친다는 평을 받았던 러블리즈의 곡으로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 차별성을 더욱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호는 “우린 (춤)선이 예쁘니까 한국적인 게 들어갔으면 좋겠다”라며 러블리즈의 ‘Destiny’를 국악 버전으로 재해석하자고 제안했고, 유아 역시 “이 ‘슬픔’을 표현할 팀은 우리 말고는 없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오마이걸은 단순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오리엔탈 판타지’라는 다소 독특한 콘셉트를 선택했다. 그 결과는 2차 경연에서의 1등이었다. 팀의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무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경쟁력인지 드러난 순간이었다.

오마이걸은 원곡의 정서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의 장점을 살렸다. 러블리즈의 ‘Destiny’는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달과 지구에 비유하는 서정적인 가사를 가진 곡이었다. 이는 이전까지 ‘Closer’나 ‘비밀정원’, 그리고 ‘다섯 번째 계절’ 등의 곡에서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소화해온 오마이걸과 어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마이걸은 이 유사성을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 동양적인 콘셉트로 이 무대가 재해석이라는 점을 한눈에 보여주되, 자신들의 강점과 연결되는 원곡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도입부에 추가된 국악 대금과 가야금 연주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강화하고, 원곡에 없었던 미미의 랩 파트는 천을 활용한 퍼포먼스와 개기일식 배경을 바탕으로 원곡의 세계관을 이어받으면서 보다 고조된 감정을 표현한다. 고음이 터지는 클라이맥스에서는 가창력이 뛰어난 멤버인 승희와 효정의 이중창이 슬픔을 극대화한다. 그 이후 이어지는 흰 천을 활용한 댄스 브레이크는 절정에 이른 감정을 폭발시킨다. 오마이걸은 경연 무대의 특성을 활용해 러블리즈의 원곡보다 더욱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감정이 폭발하는 무대를 연출했고, 고조된 감정을 자신들의 몫으로 소화하면서 각 멤버들의 강점을 부각시켰다. 그 결과 ‘Destiny’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섬세한 정서라는 오마이걸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무대가 됐다.

동양적인 콘셉트가 걸그룹으로서 참신한 시도라는 점과는 별개로, 국악풍의 편곡이나 한복 의상, 흰 천을 사용한 퍼포먼스 자체는 기시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마이걸은 지구-달-태양으로 삼각관계를 암시하는 원곡의 세계관을 존중하며 자신들만의 정서와 매력을 보여줬다. 이는 유아가 발목 부상으로 대부분의 퍼포먼스를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유아는 곡 분위기를 결정하는 인트로에서 고운 춤선을 보여주고, 댄스 브레이크 뒤의 솔로 보컬처럼 무대의 기승전결을 형성하는 부분에서 짧지만 효과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한 멤버의 부재라는 단점을 최대한 극복하면서도 무대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리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팀의 곡으로 경연을 해야 했고, 멤버 한 명이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오마이걸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오마이걸은 오마이걸이라는 얘기다. 그들은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여자)아이들 ‘싫다고 말해’
‘퀸덤’ 3차 경연의 2라운드에서 (여자)아이들이 공연한 ‘싫다고 말해’는 마음이 변한 상대를 추궁하는 노래다. 원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담당했던 전소연은 이 노래의 콘셉트가 “슬퍼서 미쳐버린 여자”라고 말했고, 의상에 대해서도 “흰 옷인데 피로 물든 것”이라 언급했다. 무대의 디테일한 구성은 그가 언급했던 요소들이 가사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보여준다. 전소연은 무대의 시작에서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운 표정으로 “싫다고 말해 /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봐 / 내 맘이 떠날 거 같이 / 네가 미워질 거 같이”라고 노래한다. 무대 주변은 사건 현장을 암시하는 폴리스라인으로 둘러져 있고, 시체처럼 흰 몸을 가진 남성의 입은 X자 테이프로 막혀 있다. 멤버들의 네번째 손가락에는 약혼을 의미하는 반지가 끼워져 있지만, 그들은 맨발에 “흰 옷인데 피로 물든” 것으로 보이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그들은 결혼을 앞둘 만큼 사랑했던 상대를 죽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대의 마지막에서 전소연은 처음 노래했던 가사를 뒤집어 “좋다고 말해 / 그래 계속 그렇게 말해줘 / 좋았던 그때와 같이 / 이제 사랑할 것 같이”라는 말을 기괴하고 섬뜩하게 노래한다. 죽어서 입을 열 수 없는 남성은 이제 추궁에 대답할 수 없고, 사랑하는 상대의 변심으로 괴로워하던 가사는 죽어서 마음대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비웃음이 된다. 가사의 의미가 무대를 거치면서 전혀 다른 의미로 전복되는 과정. 이는 곧 (여자)아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서사이기도 하다.

‘싫다고 말해’ 무대는 일반적인 방송 무대라기보다 연극, 혹은 뮤지컬의 형식에 가깝다. 전반부는 사운드를 최소화하면서 멤버들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에 가깝게 활용하며, 파트마다 멤버들에게 핀 조명을 비추어 극에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이 선보이는 안무들은 일반적인 걸그룹의 춤이라기보다 현대무용 동작에 가깝다. 무대에서 임팩트를 주는 요소가 춤이 아니라 멤버들의 자유로운 연기가 되는 이유다. 멤버들이 단체로 립스틱을 지우는 부분에서 수진의 표정 연기는 화제가 됐다. 뒤이어 전소연이 처절하게 뱉어내는 랩 파트에서의 퍼포먼스 역시 춤이라기보다는 어떤 감정을 극대화하는 동작에 가까웠다. 또한 그는 의도적으로 랩의 가사를 거의 말하고 외치듯이 표현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서사를 표현하는 중요한 소재였던 남성 댄서들이 사실상 무대 장치처럼 기능한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들은 엄청난 춤을 보여주기보다 무대 중간에서 기묘한 동작으로 분위기를 형성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었다는 설정 아래 더욱 부각되는 육체를 보여준다. 이는 헝클어지고 엉망이 된 모습을 했지만 살아있는 (여자)아이들 멤버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기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살아 있는 여성과 죽은 남성의 이야기’라는 가사의 줄거리를 강조한다. 이처럼 춤과 노래를 수단화하고 동작과 표정을 강조하는 무대 구성은 멤버 각자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보다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 안무가 없는 미니앨범 수록곡이었던 ‘싫다고 말해’의 약점이 가사의 재해석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보완됐다고도 볼 수 있다.

3차 경연은 팬들이 직접 골라준 노래로 무대를 꾸미는 ‘팬도라의 상자’가 주제였다. 활동곡이 아닌 미니앨범 수록곡이었던 ‘싫다고 말해’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고, 팬이 중심인 경연의 주제가 아니라면 좀처럼 선곡하기 어려운 노래였다. 선곡 당시 우기가 지적한 대로 “우리 팬들이 아니면 절대 모르는” 무대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여자)아이들의 3차 경연 최종 순위는 4위로, 3차 경연의 1라운드인 유닛 경연 순위와 동일하다. 이 무대로 획득한 표가 유닛 라운드의 순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호러 콘셉트의 무대에 호불호가 갈렸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슬픔이 극대화되다 못해 미쳐버린 여성을 표현하는 무대는 대중이 일반적으로 걸그룹에 기대하는 퍼포먼스는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여성의 극단적인 감정을 여성 아이돌이 표현하는 것은 지금 ‘퀸덤’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전소연은 (여자)아이들에 대해 “편견을 깨는 팀”이라고 이야기했다. 다소 아쉬운 순위와는 별개로, (여자)아이들이 편견을 깨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오마이걸 ‘Twilight’
오마이걸은 ‘퀸덤’ 3차 경연의 2라운드에서 ‘Twilight’을 뱀파이어 콘셉트로 소화했다. 이는 ‘13일의 금요일’이나 ‘할로윈’ 같은 가사, 그리고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동명의 영화 ‘Twilight’에서 지호가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이전 무대인 ‘Destiny’가 오마이걸의 몽환적이고 슬픈 정서를 살린 결과물이었다면, 뱀파이어는 기존에 오마이걸이 소화했던 청순하거나 발랄한 느낌의 콘셉트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오마이걸은 이를 자신들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뱀파이어를 표현하는 메이크업은 평소보다 진한 편이었지만 멤버들의 이목구비가 가진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고, 의상 역시 흰 색상과 프릴 등의 고전적인 디자인을 재해석해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줬다. 이는 적나라하게 뱀파이어를 형상화하는 메이크업을 하고 검은 의상을 착용한 댄서들과 대비된다. 이 무대에서 오마이걸의 분장은 뱀파이어 그 자체라기보다, 어떤 이유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어가는 소녀들의 상태를 재현한 것에 가깝다. 과하지 않은 분장은 오마이걸이 기존의 매력을 훼손하지 않고도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항상 오마이걸은 스토리가 있는 것 같아.” 마마무 문별이 오마이걸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한 이 말은 ‘퀸덤’에서 오마이걸의 무대가 흥미로운 이유를 보여준다. ‘Twilight’은 원래 사랑하는 상대 때문에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감정을 노래하는 곡으로, 앞서 이뤄질 수 없는 상대와의 관계를 지구와 달에 비유하며 간절한 사랑을 노래했던 ‘Destiny’의 무대와 연결되는 서사이기도 하다. 오마이걸은 ‘Destiny’ 무대의 마지막과 ‘Twilight’ 무대의 시작을 이으면서 무관했던 두 노래의 세계관을 연결했다. 그리고 불가피한 감정을 노래하던 ‘Twilight’의 가사를 인간을 감염시키는 치명적인 존재인 뱀파이어 콘셉트로 재해석했다. 인트로와 가사가 추가된 미미의 랩, 댄스 브레이크의 변형을 제외하면 오마이걸은 콘서트에서 보여줬던 ‘Twilight’의 안무를 대부분 그대로 소화했다. 대신 뱀파이어를 형상화한 댄서들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전달했다. 이들은 처음에 나무를 형상화하며 무대 구석을 차지하다가, 미미의 랩 파트에서 멤버들과 접촉하고, 무대 후반에 추가된 댄스 브레이크에서는 멤버들과 어울려 춤을 추다가 그들을 둘러싼다. 시간이 부족한 경연의 현실적인 한계 내에서 오마이걸은 댄서들과 효율적으로 협업했다. 그 결과 ‘퀸덤’의 ‘Twilight’은 비슷한 편곡과 안무를 유지하면서도 미지의 존재, 혹은 감정을 만난 이후의 변화를 표현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됐다. 

‘Twilight’을 공연하기에 앞서 지호는 관객들에게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그림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Twilight’ 무대에는 전 공연과 동일하게 시작하는 멤버들의 무대 배치, 망토를 쓴 채 무엇인가를 찾아 해매는 오마이걸 멤버들의 인트로,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가사에서 팔 각도로 시계를 형상화하는 안무, 그리고 미미를 둘러싼 댄서들에게 손을 뻗는 멤버들의 동작 등 의미를 상상하고 해석하게 하는 장면이 많다. 그동안 뮤직비디오에서 고래나 사슴, 새 등의 메타포를 사용하며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꾸준히 구축해왔던 오마이걸의 행보와도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마이걸은 경연에 필요한 새로움을 만들되, 이를 한 무대에 한정짓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기회로 만들었다. 앞으로 오마이걸이 보여줄 이야기들, 그리고 이를 쫓아갈 더 많은 이들의 ‘숨바꼭질’이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