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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2019.10.28
넷플릭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이하 ‘농염주의보’)는 경고에 가까운 선언으로 시작한다. 박나래는 앞으로 진행될 스탠드업 코미디쇼의 수위가 굉장히 세고,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통해 쇼가 공개될 150여 개 국가 중 몇 개 나라에서 이 쇼를 받아줄지 모르겠으며 어딘가에서는 화면을 모자이크하거나 얼굴에 CG 처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연애와 섹스 경험을 주로 이야기하는 이 쇼의 수위가 실제로 높든 아니든,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한국 여성, 그것도 연예인으로서, 심지어 상당히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한 스타로서 여성이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한국에서 ‘농염주의보’를 통해 박나래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특히 과감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는 쇼가 진행되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허리나 엉덩이를 흔들고, 섹스와 관련된 경험을 털어놓는다. 원래 이성과의 연애를 좋아하는 박나래의 캐릭터는 이 쇼를 통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농염주의보’에서 박나래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망한 연애와 섹스에 관한 것이다. 해변에서 만난 남성과 바닷가를 구르며 키스를 하다가 그가 자신의 속옷에 손을 넣으려고 하면 저지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결국 속옷 안이 모래사장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스킨십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선비 같은 남자친구로부터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보냈다는 편지와 같은 글귀를 받은 이야기, 집착이 심했던 남자 친구 이야기, ‘찌라시’ 속에서 혼자만 실명으로 거론되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모두 웃음을 위해 동원한 에피소드지만, 이것은 현재 한국 이성애자 여성에게 섹스와 연애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지 않다. 여성이 원하지 않는데 계속해서 속옷에 손을 넣으려 했다면 그것은 성폭력이며, 박나래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화장실 변기 물을 내려보라고 했다는 남자친구의 이야기 역시 연인 간의 폭력을 보여주는 일화다. 유명인의 사생활이나 그에 관한 평가를 악의적으로 지어내는 ‘찌라시’는 또 어떤가? 박나래의 실제 경험이든 쇼를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든, 이것은 여성으로서, 더 나아가 여성 연예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폭력적인 사건들이다.

여기에 더해, 박나래는 이미 TV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했던 성형 수술 사실을 이용한 자학개그를 수시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아쉽게도 “세상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서 뭐 합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그냥 시원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삽시다”라는 엔딩 멘트로 마무리된다. 박나래가 ‘농염주의보’를 준비하면서 많이 참고했다고 언급한 앨리 웡은 ‘베이비 코브라’를 통해 임신과 결혼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지, 그럼에도 왜 항상 남성이 여성보다 고평가되는지, 더 나아가 세간의 기준에서 조건이 괜찮은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게는 왜 늘 ‘발목을 잡았다’라는 말이 따라붙는지 비판한다. 해나 개즈비는 ‘나의 이야기’에서 여성이자 레즈비언으로서 더 이상 소수자인 자신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아디티 미탈은 설사 이야기로 시작해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경유해서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지적한다. 코미디라는 장르는 지금 우리가 무엇에 함께 웃어야 하고 무엇에 웃으면 안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는 일반 콩트와 달리 어떤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를 중요시하는 장르다. 많은 예술이 그렇듯, 스탠드업 코미디쇼는 작가인 동시에 코미디언인 스피커의 동시대적 감각이 특별히 요구되는 무대인 것이다.

쇼의 말미, 박나래는 자신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의 담당 PD들이 ‘앞으로 박나래가 방송을 계속할 수 있을지 체크하러 이 자리에 와 있다’라고 말했다. 아마 농담 섞인 말이었겠지만, 약간의 실수로도 언제든 비난받고 자리를 잃을 수 있는 여성 연예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완전히 농담이라고도 할 수 없다. 시대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다소 아쉽긴 해도, 끝내는 박나래와 ‘농염주의보’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여성은 웃기지 않다고, 여성은 혼자서 큰 무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이날을 위해 전완근을 키워왔다’라며 팔뚝을 자랑해 보이거나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놓고는 뻔뻔한 표정을 짓고, ‘세상은 나와 잔 남자, 앞으로 잘 남자로 나뉜다’며 ‘징기스칸’ 노래를 부르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힘있게 무대를 장악하는 것은 박나래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일 인분의 일상을 즐겁고 건강하게 가꾸고,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그의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섬세한 방식으로 들려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박나래는 징기스칸이고, 세상은 박나래가 정복한 무대, 앞으로 정복할 무대로 나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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