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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대에 성큼성큼 책 권하는 일

2019.10.21
ⓒShutterstock
“그러므로 꼭 책이 아니어도 된다.”

고등학생들이 모인다는 2박 3일 독서 캠프에 초대를 받았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여러 고등학교 독서부 학생들과 작가들의 만남을 주선해주겠다는 취지의 행사였다.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내가 낸 책 중에서는 ‘독서의 기쁨’이 학생들의 주제 책 중 한 권으로 선정되었다. 마지막날 아침 조별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시간이 주어졌고, ‘독서의 기쁨’을 주제 책으로 배정받은 학생들은 책을 소재로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책이 가장 좋은 친구일까?’ 그것은 책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친구라는 내 책의 글귀에서 따온 질문이었다. 몇 차례의 토론 회기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의견을 정리하는 조장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그러므로 꼭 책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므로 꼭 책이 아니어도 된다'라는 건 여러 겹의 부정(否定)이었다. 첫째, 책이 주는 재미는 다른 매체가 주는 재미로 대체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유튜브도 있고, 영화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예능 프로그램도 있고, 게임도 있다. 둘째, 책이 주는 정보 역시 다른 매체의 정보로 대체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인터넷이 있다. 궁금하면 검색하면 된다. 결론. 그러므로 꼭 책을 가장 친한 친구로 둘 필요는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와 박혔다. 책이 가장 친한 친구라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물었다. “여러분의 가장 재미있는 순간만을 함께 하고, 그 외에는 그 어떤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함께 시간을 경험하는 사이를 친구라고 부른다는 걸, 그건 꼭 1분 1초 곁에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그렇지만 어떤 무의미한 순간부터 가장 재미있는 순간까지를 함께 한다는 뜻이라는 걸, 가장 무의미한 말부터 가장 재미있는 말까지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라는 걸 설명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게 독서라는 마지막 말까지는, 갈 수도 없었다.

대 유튜브 시대. 유행도 이슈도 전부 유튜브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시대다. 짧은 편집 호흡과 '사이다썰'과 영화 줄거리 요약본이 사랑받는 플랫폼에서 책은 그 태생부터가 유튜브와 맞지 않는 퍼즐조각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먹방, 게임, 테크, 리뷰 등 유튜브에서 많은 호응을 얻는 분야의 다른 채널과는 달리 책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은 ‘보여줄 게 없다’라는 태생적인 약점을 지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채널의 방향성이 갈린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겨울서점’은 채널의 스탠스를 ‘책을 좋아하는 애호가가 책 이야기를 하는 채널’로 잡고(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책을 소재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책과 관련된 페스티벌을 담기도 하고, 책을 소재로 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작가를 인터뷰하기도, 언박싱을 하기도 하는 건 그래서다. 화면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기획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겨울서점’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목소리와 잔잔한 분위기가 합쳐져 지금의 ‘겨울서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겨울서점’은 일종의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꼭 책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겨울서점'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취향의 공동체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북튜브의 전망은 도서 시장의 전망만큼이나 불확실할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 통한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는 주인장이 불을 켜두는 한 계속된다. 짧은 편집 호흡에 지친 사람도, 혐오적인 콘텐츠를 피하고 싶은 사람도 늘 있다. 짧은 영상으로 교양을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시험 기간에 죄책감 없이 볼 수 있는 영상을 원하는 사람도,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일을 할만한 영상을 찾는 사람도 늘 있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이 채널이 만 명을 넘을 수 있을지 의심했지만 이제 1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며 진작부터 가능성은 충만했음을 느낀다. 그 사람들 중 일부라도 실제로 책을 집어들게 만들 수 있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만들 수 있고, 그래서 단순히 ‘겨울서점’의 분위기가 좋아서 들어왔다가도 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영상을 꾸준히 보다보면 책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이제 누가 책을 읽냐’는, 조롱조지만 진지한 장문의 댓글을 유튜브에서 실제로 받은 적이 있다. 요지는 학생들의 말과 같았다.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고, 재미는 굳이 책에서 찾을 필요 없다는 것. 책을 읽는 건 이제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것.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그 말에 반박할 수 있다. 책만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책은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가장 깊은 수준의 경청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그 독서 캠프의 강연장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의 일관되고 내밀한 이야기를, 적어도 수 시간에서 수 주에 이르기까지, 흐름과 논리를 따라가며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 어느 강연을 가도 여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없다. 수 시간은 커녕 수 십 분을 하기도 쉽지 않은 경험이니까. 하지만 책은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아니, 책만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나는 그걸 안다.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유튜브 역시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과 나눈 그 속깊은 이야기들을 듣는 사람들이, 그곳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다. '겨울서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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