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진│② 공효진의 캐릭터 다섯

2019.10.15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문지원

처음부터 주인공은 아니었다. 최강희, 김규리, 송지효, 박한별, 김옥빈, 오연서 등 한국 영화계에 수많은 여성 배우들의 데뷔작이 된 ‘여고괴담’ 시리즈는 공효진에게도 영화 첫 출연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짧은 커트머리,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는 지원은 흥이 넘치는 엉뚱한 학생이다. 친구들을 하나씩 카메라에 담다가 “안녕하세요! 지성과 섹시함을 겸비한 문지원 인사드려요!”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우리 앞에 등장한 이 소녀가 공효진이다. 호기심 때문에 남자 선생님이 소변보는 광경에 수업 장면까지 몰래 찍는 지원은 민규동 감독이 학창시절 연극반에서 만났던 친구를 떠올리며 만든 캐릭터임을 밝힌 바 있다. 지원은 보통의 십대 여자 아이다. 어느 쪽인가 하면 화제의 중심에 서는 법은 없는, 누구와도 척지는 법이 없는, 종종 벌을 서기도 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기억되는. 지원은 성장하면 이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와 영화 ‘러브픽션’에서 공효진이 연기한 배역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배우 공효진이 가진 최고의 장점인 웃는 얼굴이 주는 친근한 매력은 이때 이미 완성되어 있다.

‘파스타’의 서유

로맨틱코미디가 사랑한 배우라는 말은 드라마에서의 공효진을 따라다니는 찬사다. 2010년작 ‘파스타’의 큰 성공은 공효진이 뭘 입어도, 무슨 말을 해도 화제의 중심에 오르게 만들었다. 공블리라는 별명 역시 ‘파스타’를 계기로 얻게 되었다.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을 비롯해 이후 공효진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많은 로맨틱코미디 주인공 연기는 ‘파스타’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효진이 ‘파스타’에서 연기한 서유경은 청담동 최고의 이태리 레스토랑 라스페라에서 3년이나 주방 보조로 버틴 끝에 막내를 벗어나는데,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라고 주장하며 여자 요리사만 보면 자기 주방에서 해고해버리는 최현욱(이선균)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진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의 전형, 즉 사연이 있지만 쉽게 꺾이지 않고, 덜렁대지만 야무진 구석이 있고, 어수룩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숨은 실력의 소유자다. 이런 설정은 현실에서는 어쩌라고 싶지만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에서는 아주 흔한데 공효진이 연기할 때는 언제나 그럴 듯하다. 소리만 지르던 최현욱이 서유경을 보며 웃는다. TV를 보는 나도 최현욱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

공효진은 말이 안되는 걸 말이 되게 한다. ‘미쓰 홍당무’에서의 연기만큼 그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 사례가 또 있나 싶다. 비호감이던 주인공과 관객을 함께 울게 만든다. 양미숙은 늘 혼자다. 안면홍조증으로 늘 얼굴이 붉은 양미숙은 학창시절부터 왕따였다. 부모님은 안 계시고, 친구들은 따돌린다. 유일하게 편견 없이 대해준 학교 담임 서 선생을 좋아하는 마음을 미숙은 선생님이 되어 서 선생의 동료교사가 된 다음에도 버리지 못했다. 한국영화에서 이렇게까지 좋아하기 어려운 여성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사악하거나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다. 미숙은 절박할 정도로 외로운데, 외로운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 오로지 망상만이 그를 자유롭게 하고, 그 결과 미숙은 또다시 외로워진다. “내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한테 이러지 않았을 거면서 나한테 다들 이러고”라고 울부짖는 미숙에게 전교 왕따이자 서 선생의 딸인 종희(서우)가 외친다. “선생님 진짜 왜 그래요. 나는 선생님 하나도 안 챙피하거든요!” 공효진이 연기하는 미숙이 보여주는 괴로울 정도의 외로움이 마음에 사무친다. 공효진이 출연 여부를 망설이던 때 적극적으로 권한 사람이 전도연 배우였단다. ‘안전빵’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이후 공효진은 회고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모험같은 일이다.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여자, 한매. 중국 출신의 보모 한매는 한국사회 주변부의 인물이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한매는 그저 순한 인상과 아이에 대한 친화력으로 지선(엄지원)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와 함께 사라진다. 한국사회에서 조선족 여성들은 결혼이주자부터 보모, 간병인, 식당의 찬모 등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 대중이 친숙하게 다루는 서사는 그들을 다루지 않는다.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매 역시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존재를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누군가다. 한매가 사라지고 나서야 지선은 한매의 사진조차 변변하게 찍어둔 게 없음을 깨닫는다. 딱부러지게 쏘아붙이는 말솜씨에 능하고 패션 센스 뛰어난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라 이렇게까지 존재감이 ‘흐린’ 여자의 역할을 공효진이 맡았다. 몸에 올라타는 것 말고는 아내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남자의 아내, 건강하게 성장할 기대를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하는 딸아이의 엄마. 영화가 끝나면 애끓는 공효진의 울먹이는 표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공효진은 로맨틱코미디의 스타로 자주 회자되지만, 데뷔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때부터 여성들간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근사하게 해내곤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은 공효진이 맡은 역할 중에 다른 사람들의 애정을 가장 덜 구하는 인물로 꼽을 만하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술집하는 여자. 손바닥만한 동네 옹산에서 동백은 딱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 좋은 상황의 젊은 여자다. 동네에 홀연히 등장해 창문도 없는 가게를 얻어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연 동백은 가게를 연 지 6년만에 제법 자리를 잡았다. 경제력이든 생활력이든 여자들이 꽉잡고 있는 옹산에서 동네 남자들은 까멜리아만 가게 되었다. “마누라 직속 산하기관같은 동네”에서 까멜리아 주인인 동백만이 연고가 없어 말을 옮기지 않는 것이 성업비결이지만 동네 여자들 눈에는 그렇게 단순치 않다. 단골손님인 건물주의 아내는 노골적으로 남편과 동백의 불륜을 의심하고, 다른 가게 여자 주인은 “우리 부끄럽지 않게 살자”라며 비웃는다. 동백이 손님 테이블에 앉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없다. 동백은 큰 실망도 없이 중얼거린다. “진짜가 뭔지는 아무도 안 궁금해해요. 믿는 게 진짜인 거지.” 동백을 좋아하는 황용식(강하늘)의 진심이 통할까 여부가 관심사인 이 드라마를 아무리 봐도 동백은 혼자 살 때 제일 잘 살 여자다. 그러고 보면 공효진이 연기하는 어떤 배역인들 그렇지 않았던가. ‘댓쓰 오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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