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힙합’은 죄가 없다

2019.09.27
매년 Mnet ‘쇼미더머니’의 시청률과 영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논란의 빈도수가 높은 건 여전한 듯하다. 최근엔 몇몇 래퍼들의 판정을 두고 이른바 ‘인맥힙합’ 논란이 불거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도전자 신분 래퍼들과 한국 힙합 팬들의 분노와 설왕설래가 어김없이 이어진다. 한 마디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힙합 씬에서 인맥을 중시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래퍼, DJ, 프로듀서들이 출신지, 혹은 친분을 바탕으로 인맥을 형성하며 활동해왔다. 즉, 힙합 씬은 원래부터 인맥 힙합의 장이었다.

1980년대 뉴욕 퀸즈브릿지(Queensbridge) 출신의 래퍼들이 뭉쳤던 전설적인 집단, 주스 크루(Juice Crew), 에미넴(Eminem)을 중심으로 디트로이트에서 친분을 쌓은 이들끼리 결성한 디트웰브(D12), 애틀랜타에 기반을 둔 힙합/알앤비 아티스트 집단 던전 패밀리(Dungeon Family), 뉴욕 할렘 출신의 아티스트 집단 에이샙 몹(A$AP Mob) 등등, 이른바 인맥 힙합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는 유독 크루(Crew)란 개념을 중시하는 힙합 문화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집단을 구성할 때 실력도 중요하지만, 더 우선순위로 놓는 부분이 출신지와 친분이다.

물론, 세부적으론 저마다 온도차가 있다. 처음부터 정식으로 그룹을 결성하거나 크루를 구성하고 밑바닥부터 동고동락해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먼저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랩스타가 된 이의 명성에 기반을 두고 모이는 경우도 있다. 같은 아티스트든 그저 안투라지(entourage)든 상관없다. 과거 무명이었던 에미넴이 닥터 드레(Dr. Dre)와 계약하자마자 함께 랩을 하던 친구들(D12)을 불러모은 일화가 후자의 좋은 예다. 그렇게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씬에서의 세력을 넓히고 돈을 벌기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인맥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은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지만, 힙합 씬 안에서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요한 건 인맥질의 여부가 아니라 그렇게 모인 이들의 음악적 성취, 혹은 설득력 여부다.

그런 의미에서 “인맥 힙합? 애초에 내가 잘한다고 느끼고 좋아서 함께 일하고 크루하는 사람한테 좋다고 하고 뽑는데 뭐가 잘못이냐.”라는 기리보이의 항변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옳다. 비단 기리보이뿐만 아니라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다른 프로듀서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함께 일하고 같은 크루’인 이를 뽑지 않고 내치는 것이야말로 힙합 씬 안에선 이상하고 디스리스펙트(Disrespect)한 행동이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우습고 기괴하다. 논란이 벌어진 곳이 한국 힙합에만 존재하는 동시에 씬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시스템 안이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의 제작진과 참여 아티스트들은 누구보다 열렬히 힙합 문화 수호와 확장을 외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기존의 힙합 문화 왜곡과(‘한국 힙합은 왜 ‘쇼미더머니’에 먹혔나’ 참고) 래퍼들의 계급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아티스트 대부분은 오로지 생계 해결과 유명세 얻기에만 혈안이 되어 이 같은 현실을 외면, 혹은 무시해버렸다. 한국 힙합 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래퍼 지망생과 아마추어 래퍼 대부분 역시 플레이어와 팬의 경계에서 어느 순간 흐름에 동참해버렸다. 거대한 시스템 ‘쇼미더머니’의 오랜 힙합 조지기에는 침묵하던 그들이 유일하게 분노하고 항변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건 각자에게 공격이 가해질 때 아니면, ‘신분상승용 기회의 땅으로서의 힙합’이 위협받을 때, 그리고 정치적 공정성(PC)에 대한 지점에서의 비판이 가해질 때뿐이다. 이번 논란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셈이다.

장르와 문화의 근본을 뒤틀고 무너트린 시스템 안에서 공정함을 찾는 것은 매우 허망하다. 즉, 모두가 비판의 탄환을 잘못된 표적에 꽂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힙합문화적인 행동인 ‘인맥힙합’이 오히려 힙합을 위한다며 구축된 시스템의 룰과 취지에 반한다는 이유와 공정성을 근거로 비판받는데, 실은 그 시스템 자체가 힙합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근원인 현실. 현재의 한국 힙합은 그야말로 엄청난 모순 덩어리다. 지금의 논란은 결국, ‘쇼미더머니’, 힙합 아티스트, 힙합 팬 모두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힙합 안에서 '인맥 힙합'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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