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는 뭐하니?│① 김태호의 무한도전에 대한 도전

2019.09.24
김태호 PD는 요즘 MBC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상파의 시청률은 갈수록 하락하고, 영향력은 더 빠르게 떨어지는 시대에 김태호 PD는 토요일과 일요일 동시간대에 ‘놀면 뭐하니?’와 ‘같이 펀딩'의 연출을 맡았다. PD 한 명이 주말 예능을 동시에 맡는 이례적인 일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유희열과 이적은 유재석에게 자신을 ‘김태호의 간신들’이라고 말할 만큼 신뢰를 보내고, 힙합 그룹 리듬파워의 멤버 지구인은 김태호 PD를 ‘김태호 선생님’이라고 했으며, 데프콘은 ‘김태호의 페르소나’를 자처한다. 두 프로그램에서 김태호 PD는 화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화면 속의 유재석만큼이나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놀면 뭐하니?’의 ‘유플래쉬’는 김태호 PD의 위상을 단번에 보여준다. 유재석이 태어나서 처음 쳐 본 드럼 비트를 하나의 곡으로 만드는 데 유희열, 이적, 윤상, 이상순, 다이나믹 듀오 등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다. ‘놀면 뭐하니?’의 시작을 알린 ‘릴레이카메라’와 조세호의 집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게임을 하는 ‘조의 아파트’도 김태호 PD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기획이다. 연예인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집에 유명인들이 모여 게임을 하고 노는 것은 김태호 PD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김태호 PD는 ‘놀면 뭐하니?’를 ‘국내 최초 결핍 버라이어티’라고 표방할 만큼 규모를 줄인 채 시작했다. ‘무한도전’에서 시도하며 국내 예능 프로그램의 기준처럼 된, 출연자마다 주어졌던 많은 카메라들은 사라졌다. 대신 출연자가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은 영상들이 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대한민국 라이브’는 아예 출연자들이 카메라 한대를 들고 가서 대한민국 곳곳을 담아낸다. ‘유플래쉬’의 아이디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유재석의 드럼 연주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놀면 뭐하니?’가 방영 전 유튜브에서부터 시작했고, 유튜브를 비롯한 SNS의 브이로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김태호 PD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김태호 PD는 그동안 쌓아온 영향력으로 거대한 쇼를 만들기 보다, 유명인들을 유튜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계로 집어넣는다. 그 결과 화질은 종종 거칠고, 프로그램의 방향은 출연자들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릴레이 카메라’는 출연자가 카메라를 누구에게 주느냐에 따라, ‘유플래쉬’는 뮤지션이 어떤 편곡을 하느냐에 따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같이 펀딩’은 공익적으로 의미있는 아이템을 유명 연예인이 알린다는 점에서 MBC ‘느낌표’나 ‘무한도전'에서 종종 진행했던 공익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같이 펀딩’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해당 아이템을 미리 판매한다. 프로그램의 호응도는 펀딩 금액으로 그대로 드러나고, 그만큼 시청자가 프로그램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김태호 PD는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로 나아갔다. 지금까지 김태호 PD가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김태호 PD의 세계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김태호 PD가 지금 하는 도전은 ‘무한도전’ 시절 했던 도전과 다른 출발선을 갖는다. 그 시절에 비해 인지도와 영향력은 훨씬 더 커졌지만, 반대로 그는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의 입장에 서 있다. ‘무한도전’을 하던 시절에는 그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기준을 설정하는 크리에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버라이어티에 실제 상황을 끌어들이자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장르가 탄생했고, 출연자들이 서로 추격하면 추격전이 됐다. 반면 지금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은 유튜브 또는 TV의 어느 곳인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조의 아파트’처럼 가정집에 모여 노는 것은 이미 아이돌이 숙소 예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라이브’에서 한글을 배우게 됐다며 기뻐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정규 편성이 좌절된 MBC 파일럿 ‘가시나들’의 축소판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KBS ‘거리의 만찬’이 이미 잘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김태호 PD의 새 프로그램들이 MBC의 여러 프로그램들의 전통 안에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릴레이 카메라’에서 이동휘가 브이로그, 패션 정보, 지인 인터뷰, 노래 등을 선보일 때, 김태호 PD는 MBC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얼굴’(1997~2002)을 교차 편집해 당시 MC 박상원과 현재의 이동휘가 만나도록 한다. 유재석의 그 시절 셀프카메라를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는 건 덤이다. ‘조의 아파트’에서 유재석이 여러 연예인들 앞에서 퀴즈를 내고, 실로폰으로 ‘땡’을 치는 모습은 ‘무한도전’ 시절에도 여러 차례 반복된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스타서바이벌 동거동락’의 재현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한 ‘같이 펀딩’이 ‘느낌표’와 비슷하지만 요즘의 유행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듯, 김태호 PD는 기존 프로그램들의 형식을 유튜브로 대표되는 현실성,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실제상황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는 굉장히 더디게 오는 반면, 현재 그가 보여주는 그림은 ‘무한도전’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놀면 뭐하니?’ 첫 회에 유재석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전달하는 사람은 ‘무한도전’으로 인연을 맺은 하하와 유희열이고,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주고받는 이야기의 주된 화제는 ‘무한도전’이다. 이후 출연하는 양세형, 박명수, 정재형, 장윤주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무한도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만담을 나누고 당시와 다르지 않은 관계성을 보여준다. 태항호, 유노윤호 등 예상을 벗어나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곧 데프콘, 조세호 등과 함께 고정 멤버격인 ‘모니터 보이즈’가 된다. ‘형-동생’으로 이뤄진 식구가 만들어지고 이따금씩 소수의 여성 손님들이 방문하는 구조. 다시 ‘무한도전’이다. ‘유플래쉬’ 또한 ‘무한도전’ 시절의 ‘무한도전 가요제'처럼 유재석, 이적, 유희열이 나온다. 자신이 편곡을 할 때만 나오는 다른 뮤지션들과 달리, 그들은 고정 출연이다. ‘같이 펀딩’에서 태극기 함을 시작으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알리는 사람은 또다시 설민석이다. ‘무한도전’ 시절 김태호 PD가 설민석을 캐스팅했을 때, 그는 수강생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을 탔던 인터넷 강사였다. 반면 지금의 설민석은 누구나 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인이다.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시절 도전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가되,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과 사람들은 크게 성공했던 시절을 기반으로 한다.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데프콘이 이 프로그램을 “유재석의 ‘무한도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김태호 PD의 의도와 별개로 그의 프로그램이 ‘무한도전’ 시절 익숙했던 인물과 구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무한도전’ 다음을 준비하는 동시에, ‘무한도전’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서” 이제껏 MBC를 떠나지 않았다는 김태호 PD의 말에 모순의 실마리가 있다. 그는 복귀 전 기자간담회에서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미안했다”라며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겠다고 했다.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 첫 방송에서 유희열에게 털어놓은 속내도 결을 같이 한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보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뭔가 계속 이어질 수 있으려면 결국 또 새로운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나올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 유재석은 ‘세대교체’를 말하면서도 “예능프로그램이 하루에도 몇 십 개씩 방송되고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의 지속을 위해서는 인지도 높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태호 PD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후배들에게 기회를 마련하려 할수록 그는 검증된 인물과 아이템으로 프로그램의 인지도를 확보할 방법을 찾는다.

모험적인 시도에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면 뭐하니?’와 ‘같이 펀딩’은 모두 아이템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이 시도하는, 또는 제안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미지의 인물 또는 세계를 찾아나가는 시작점은 결국 김태호 PD와 유재석이고, 그들은 우선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과 사람들로부터 프로그램을 풀어나간다. 두 사람 모두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 기획의 특성상, 언젠가는 ‘놀면 뭐하니?’가 지금과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 ‘놀면 뭐하니?’는 김태호 PD와 유재석을 중심으로 그들이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도전하는 구도가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결국 유튜브 또는 2010년대의 리얼리티를 학습한 두 사람의 또다른 ‘무한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TV에 SNS의 세계를 끌어들이려 했다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든가, SNS의 영역을 보다 과감하게 끌어들였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김태호 PD의 프로그램은 새로운 세계와의 마찰을 각오한 도전이라기보다는 자신과 친구들이 안전하게 적응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고 바깥 세계를 천천히 탐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태호 PD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는 MBC를 기반으로 그 어떤 예능 PD보다 원하는 것을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실현되는 그의 상상 안에는, 12년간 줄곧 볼 수 있었던 ‘김태호와 친구들’만이 있다. 그 사이 바깥에서는 어떠한 경계도 없이 공유되는 이야기들이 진정한 무한함을 획득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선두에 선 길잡이에 가까웠다면, ‘놀면 뭐하니?’와 ‘같이 펀딩’은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의 역할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 다리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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