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클레프의 시

2019.09.05
지난 7월에 발매된 제이클레프의 싱글 ‘mama, see’는 제목 그대로 ‘엄마’에게 보내는 ‘시’다. 보는 행위를 의미하는 ‘see’와 ‘시’가 가진 발음의 유사성이 의도적인 장치로 보일 만큼, 노래는 엄마를 시적 청자로 삼아 일정한 운율 속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묘사한다. “엄마 세상이 자꾸 커져요 / 해서 먼 길을 가야만 해요”처럼 가사가 엄마에게 설명하는 세상은 어떤 죽음만이 간편하고, 또 세 딸을 둔 엄마가 다리를 펴고 잠에 들 수 없는 곳이다. '베푼다는 듯 뭐든 품을 수 있다 말하면서 나의 웃는 얼굴만을 바라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제이클레프는 이런 세상에서 엄마에게 보내는 시에 음악을 더해 열린 공간에서 노래한다.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는 소리와 함께 신스 리프와 드럼으로 구성된 비트가 재생되기 시작하면, 제이클레프의 목소리는 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중심에 놓인다. 시를 노래하는 제이 클레프의 목소리와 주변의 코러스는 확연히 다른 질감을 갖는다. 여러 장소를 누비며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위로 자신이 쓴 시를 노래로 표현하는 시인, 또는 힙합 아티스트. 청자는 엄마지만, 그의 목소리는 세상 전체로 향한다. 그와 엄마가 사는 세상에는 친구들이 살해당하고, 스토킹을 겪고, 학대당하는(‘be killed, stalked, abused’)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시는 항상 물 속의 가장 깊은 곳을 비유 속으로 은폐한다. 여성이 겪는 폭력들이 “너무 흔해 빠져 Main이 될 수 없는 News”가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 제이클레프가 ‘be killed, stalked, abused’를 낭독할 때, 이 목소리들은 다른 소리들로 인해 묻힌다. 그렇게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감정. ‘mama, see’에서 이 감정은 서툴러 보일 만큼 느리게 터져나오고,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짧은 공간 속으로 묻힌다. ‘mama, see’의 2절은 1절의 구성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되, 마지막의 ‘oh’가 등장하는 부분만 상대적으로 짧아진다. 2절에 이은 곡의 마지막 부분은 더욱 짧아진다. 하지만 제이클레프의 목소리가 세상이 묻어버린 'be killed, stalked, abused'의 소리들을 더 크게 켜달라는 소망을 직접적으로 호소할 때, 기존의 빠른 리듬을 형성하던 드럼은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느린 리프만이 남는다. ‘oh’로 겹쳐지는 짧은 합창의 호흡은 더욱 느려진다. 호흡이 담기는 공간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대신 느려진다. 결국 노래가 함축하는 것은 감정의 온도가 아닌 깊이다. 제이클레프는 분노해야할 것 같은 순간에 가장 느린 속도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천천히 듣게 만든다. 대신 음악적인 요소들을 규칙적으로 조율하고, 코러스와 화음을 조금씩 변주하며 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천천히 변화시킨다. 그 변화 속에서 묻혀버리던 ‘be killed, stalked, abused’는 음악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온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엄마에게 잔잔하던 세상에 파도가 일 것이라 선언하며 “그저 내 옆에 서요”라며 연대를 요청한다. 이때 드럼의 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리듯 둔탁하게 바뀌고 곡의 분위기는 몽환적으로 변한다. 노래하는 이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가장 직접적이고 절박한 선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꿈처럼 현실과 거리가 먼 가상의 공간에 놓인다. 그리고 듣는 이가 이 꿈에 젖어들 때쯤, 카세트가 멈추는 소리와 함께 곡은 다소 갑작스럽게 마무리된다. 그 결과 노래의 메시지와 화자의 감정에 대한 판단은 현실로 복귀한 청자의 몫이 된다. ‘mama, see’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논쟁적인 단면을 폭로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감정은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 묻으며 판단을 유보한다.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개인사나 감정이 아닌 현실 그 자체이며, 음악을 듣는 이에게 고민을 요구한다. 요컨대 이것은 노래로 조율된 시다. 또는 시가 음악만 있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노래할 수 있는 힙합이 되는 순간이다.

지난 2월, 제이클레프에게 제16회 알앤비&소울 음반 부문 최우수상을 안겨준 앨범 ‘flaw, flaw’의 수록곡들은 그의 말처럼 “음악 위에 문학을 얹는”(‘W’) 노래들이었다. 역동적인 멜로디 위에 얹힌 채 유영하는 가사들은 대부분 특정한 훅에 묶이기를 거부했고,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불편함을 폭로하는 가사의 무게였다. 그리고 지난 4월 ‘ize’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크다”고 말했던 제이클레프는 ‘mama, see’에서 여성이 동일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보다 직관적인 가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를 음악 그 자체를 거대한 은유 삼아 담았다. 자기 연민에 깊이 빠지지도, 목소리를 높여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덤덤한 목소리가 더 많은 울림을 남길 수 있다는 진실. 모든 장치와 설정이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이클레프는 ‘mama, see’를 통해 그 진실에 근접한 시를 썼다. 자기 자신의 온도가 아니라 자신이 잡고 있는 문제의 뜨거움을 드러내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듣는 이가 저절로 파도에 휩쓸리게 하는 시. 2010년대의 끝에서, 그렇게 한 명의 음유시인이 왔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바쁜 세상에서 듣는 이의 시야로 완성될 시를 적기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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