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반전│① 삼시세끼 산촌편, 걸캅스, 신입사관 구해령

2019.08.27
최근 방영 중인 tvN ‘삼시세끼 산촌편’은 방영 전 ‘삼시세끼 여자편’으로 알려졌다. 같은 포맷에서 여성이 출연한다는 이유가 곧 프로그램의 변화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금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슷한 설정이나 줄거리를 가진 드라마나 영화, 또는 같은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성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큼, 상업적인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여성 출연자가 주목받는 작품은 흔치 않다. 하지만 ‘삼시세끼 산촌편’을 비롯, 근래 어느 때보다 여성에게 다른 역할을 주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들은 성별을 바꾸는 것으로 어떤 시도와 결과를 보여줬을까. 올해 안에 TV에서 방영하거나 상영된 영화 중 여섯 작품을 골라 이들 작품이 성별반전을 활용하는 방식을 들여다 보았다.

‘삼시세끼’와 ‘삼시세끼 산촌편’

식재료를 키워내고 손질하고 요리해서 배불리 먹기까지, 하루 세 끼를 챙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값진 노동인가를 이야기하는 tvN ‘삼시세끼’는 ‘엄마’에서 출발한다. 나영석은 이서진과 옥택연에게 씨앗을 주며 싹을 틔움과 동시에 프로그램이 시작될 것이라 말하고, 어머니에게 씨앗을 맡겨놨던 이서진은 홀로 정성껏 돌본 옥택연보다 훨씬 길쭉하고 풍성한 새싹들을 가지고 나타난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씨앗을 길러낸 어머니의 노고에는 무관심하다. 이서진이 집으로 전화해 깍두기 담그는 법을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어머니는 바로 무를 소금에 절이는 것부터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까지 줄줄 읊어주는데, 40대 중반의 이서진이 그간 얼마나 어머니가 하는 요리에 관심이 적었는가를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이서진이 재료를 써는 모습,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모습에 슬로우모션과 현란한 자막이 입혀졌던 것과 달리 빠르게 스쳐지나간, 프로그램에서 중요하지 않게 다뤄진 순간이기도 하다. ‘삼시세끼’가 주목하는 건 기존 여성이 부담했던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남성들에 대한 대견함이다. 밥을 지을 때 쌀을 어떻게 씻는지조차 몰랐던 이들은 그럴듯한 한 끼를 완성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성장’한 것처럼 그려진다. ‘삼시세끼 어촌편’은 첫 회부터 요리에 능숙한 차승원의 모습에 ‘아줌마 너무 좋아’라는 가사가 담긴 배경음악을 깔며 캐릭터를 형성한다. 그가 왜 ‘차줌마’로 불려야만 하는가, 중년 여성을 가리키는 호칭이 왜 가사노동과 동의어가 됐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재하다.

윤여정을 두고 ‘여배우의 (머리)컬’, ‘깐느 여배우의 품위’ 등의 표현을 사용했던 ‘삼시세끼’는 이제 ‘여배우’라는 환상 속 이미지 뒤에 선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리즈 시작 5년 만에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 등 여성이 주축이 된 ‘삼시세끼 산촌편’은 출연진에 대한 수식어 부여와 인위적인 동물 배치 등 특정 방향으로의 연출을 최소화하며 흡사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그러나 나영석이 10년째 염원하고 있는 프로그램 출연진으로 “가장 도회적인 두 분” 정우성과 이정재를 꼽았듯, ‘삼시세끼’에서 우선적으로 따뜻한 관심과 시선을 보내는 건 평소 삼시세끼를 차리는 일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의 성취다. 박소담이 젖은 장작에 불이 잘 붙지 않자 식용유를 붓는 기지를 발휘할 때, 세 사람이 레시피를 따로 찾아보지 않고도 척척 요리를 만들어낼 때, 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냉장고에 보관해두며 준비 시간을 절약할 때, ‘이쯤이면 나올 법한’ 특유의 연출은 나오지 않는다. 반면, 게스트로 등장한 정우성이 불을 피울 때나 커피를 내릴 때에는 여전히 화려한 장면 연출이 더해진다. 연출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닿는 순간이다. 첫 게스트로 출연한 최화정에게 ‘왕요염’, ‘머리 귀 뒤로 넘기기 신공’, ‘귓속말 신공’ 등 자막으로 옥택연을 유혹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그가 이서진에 이어 아궁이 불을 지키게 되자 '나쁜 남자의 마수에 걸려든 여성의 최후'라는 자막을 삽입했던 2014년의 ‘삼시세끼’와 비교했을 때, ‘산촌편’에서 재미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무해하다. 동시에 딱 거기까지다. ‘원래 열심히 했던 사람’에게 무관심한 태도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투캅스’와 ‘걸캅스’

‘투캅스’에서 범죄 소탕 대신 뒷돈을 챙기는 비리 경찰 조윤수(안성기)는 정의감에 불타는 신입 형사 강민호(박중훈)의 사수가 되어 골머리를 앓는다. 두 사람이 정의와 실리를 두고 싸우는 동안 여성은 철저히 대상화되고 조롱당한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박사장(윤문식)은 조윤수에게 고가의 생선회를 대접하며 “회하고 여자는 변하기 전에 먹어 치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조윤수는 잔인하게 살해된 여성의 시신을 보자마자 “이런, 아주 회를 쳤구만”이라고 한다. 경찰은 젊은 여성만을 노리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여경들을 동원한 유인 작전을 펼친다. "경찰로서도 명예스러운 일이겠지만 한편으로 여성 공동의 적을 여성 여러분들의 힘으로 검거한다는 긍지도 가지길 바란다"라는 형사과장의 말이 무색하게, 여성은 유혹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정의 구현은 오로지 조윤수와 강민호의 몫이다. 작전 중 성폭행을 당하던 여경은 조윤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위기에서 벗어나고, 뒤늦게 가해자를 응징할 땐 "저런 계집애를 누가 데리고 사느냐"라는 핀잔을 듣는다. 비리의 원인도 여성으로 지목된다. 아내를 만난 뒤 비리 경찰이 된 설정의 조윤수는 강민호를 포섭하기 위해 ‘여자를 붙여주려’ 한다. 실제로 강민호가 비리에 동참하는 건 박사장의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과 미래를 꿈꾸면서부터다. ‘투캅스’가 1993년 개봉 당시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2위에 올랐고,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성 인권에 무지했던 과거의 방증이다. 그러나 동시에, ‘투캅스’는 형사물의 흥행공식처럼 굳어져 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두 여성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걸캅스’는 제목에서부터 ‘여성판 투캅스’를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조지혜(이성경)는 여성 승무원의 다리에 잉크를 뿌리는 상습범을 잡기 위해 함정 수사의 미끼가 되고, 그의 몸매는 아래서부터 위로 훑는 카메라 움직임과 그를 향한 행인들의 시선으로 강조된다. 이것은 ‘X발’, ‘X신’, ‘X탱’ 등 비하가 담긴 욕설로 ‘남성과 다름없는’ 여성의 기세와 힘을 표현하는 방식과 함께, ‘투캅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초소형 카메라가 달린 볼펜, 안경 등 점차 교묘하고 치밀해지는 불법 촬영 장비를 단순한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장면 또한 그렇다. 그러나 ‘걸캅스’가 보여주는 세상이 ‘투캅스’에서 전혀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니다. 형사 박미영(라미란)은 실질적 가장으로서 정의와 실리를 모두 찾기 위해 민원봉사실 주무관이 되고, 인사 담당자는 ‘김영란법’을 얘기하며 뇌물을 거절한다. ‘투캅스’가 여성을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검거했다면, ‘걸캅스’는 소탕 대상을 ‘사회적 타살’까지 확장해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 유포자, 수요자의 책임을 강조한다. ‘투캅스’에서 말로만 내세웠던 ‘여성의 적을 여성들의 힘으로 검거한다는 긍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조지혜와 박미영은 모두의 차가운 시선과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범인을 추격하고, 윗선의 마음을 움직이며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다만 두 사람이 범인을 잡는 일은 교통과, 민원실 등 각자의 자리에 선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고, 박미영의 남편, 조지혜의 동료들 등 남성들이 함께 힘을 모을 때 가능해진다. 특정 개인의 활약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걸캅스’는 일정 부분 과거의 화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지만, 액션 장르 및 형사물에서 소외됐던 여성 중심 서사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여자도 형사가 있구나”라는 어린 조지혜의 대사처럼, 한국영화는 이제 겨우 여성의 존재를 말하기 시작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과 ‘신입사관 구해령’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홍라온(김유정)은 개인적인 문제로 자신을 남자로 속이고 내시로 궁에 들어간다. MBC ‘신입사관 구해령’의 구해령(신세경)은 자신의 의지로 조선 최초의 여자 사관을 뽑는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다. 홍라온은 내시로서 자신의 신분을 속인 세자 이영(박보검)과 만난다. 구해령 역시 자신을 내시로 속인 도원대군 이림(차은우)과 친해진다. 하지만 홍라온이 남자인 척해야 했기 때문에 세자와 그 주변의 남자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과 달리, 구해령은 그와 함께 사관이 된 여자들과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 그들에게 궁 안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신입으로서의 자세를 강요하는 직장 상사이자, 일을 하는 데 있어 틈만 나면 “어찌 여자가…….”를 입에 올리며 성차별을 한다. 왕의 아들과 이제 막 궁에 들어온 권력이 없는 여자의 관계라는 점에서 ‘신입사관 구해령’은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여남 캐릭터 설정이 뒤집혀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권력을 쥔 쪽은 둘 다 남자다. 그러나 비슷한 인물 관계 속에서, ‘신입사관 구해령’은 ‘구르미 그린 달빛’과 정반대에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연애편지를 대필한 것은 홍라온이었지만, ‘신입사관 구해령’에서는 이림이 매화라는 필명으로 연애 소설을 쓴다. 왕이 될 수 없는 그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늘 자신 이외의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입궐 후에 궁의 다양한 부조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쪽은 구해령이다. 이영에게 홍라온이 권력자로부터 지켜줘야 할 대상이었다면, 구해령은 이림에게 연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문제들에 눈뜨게 만든다. 구해령이 사관이 돼야 했던 이유다. 그의 상관인 민우원(이지훈)은 ‘사관은 보고 들은 걸 적는 사람이다’라며 주관을 개입하지 말고 궁의 일을 적으라고 당부한다. 강직한 사관이 당연히 해야할 말이다. 그러나 여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적기 시작하자 궁내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기록되고, 여자 사관이 남자들로 가득한 궁에 목소리를 내자 남자들의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변화가 시작된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바깥 세계의 문물에 관심이 많고, 연애 소설을 좋아하지 않으며 정치에 관심이 많은 여자가 정치의 세계에 들어가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신입사관 구해령’이 기존 사극의 설정으로부터 출발하되 뒤집어버린 이야기다. 이것은 애초에 상상을 전제로 한 사극이 현재에 대해 무엇을 발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이기도 하다. 여자가 세상을 기록한다. 남자가 쓴 연애 소설을 읽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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