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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욕하고 싶어 책을 쓴 이야기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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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워킹맘이던 내가 책을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참 단순했다. 바로 ‘욕’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은 둘 다 공무원 출신이었고, 너무 선하셨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세상 둥글게 살아야 인생 편안한 겨~”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던 20대와 달리, 결혼과 함께 찾아 온 30대는 그야말로 ‘멘붕의 시작’이었다. 세상은 얘기했다. “자고로 여자란 말이야”, 남편도 말한다. “내가 더 길게 돈 벌 건데, 당신이 육아에 더 신경 써” 한 때 친구라 생각했던 남자 동료들은 나를 따돌리고 끈끈한 우애를 다진다. “아무렴, 회사를 지키는 건 역시 남자들이야” 이쯤에서 가슴 속 화가 들끓다 못해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C벌!”

하지만 단지 욕을 거듭한다고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 욕을 ‘맥락 있게, 공개적으로’ 하고 싶었다. 규방문학을 기억하는가? 조선시대, 정치와 사회에서 격리된 여성들이 규방이란 공간에서 쓴 문학 작품 말이다. 초기엔 단지 신세한탄을 하는 작품들이 많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주체적이고 폭로적인 내용도 상당히 눈에 띈다. 그만큼 과거의 여성도 ‘조직적인 억압’에 대해 서서히 의식이 깨어났다는 뜻일 거다. 그러니 내가 시도한 건 이 같은 맥락을 이어받은 일종의 ‘아줌마 문학’이다. “여자 나이 서른을 넘으면 맛이 가죠”란 누군가의 발언에 대해, “왜 너는 키도 작은데 디스크가 걸리냐?”라는 시월드의 은근한 언어폭력에 대해, “여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승진하기 힘들어”란 직장 고정관념에 대해, ‘책’을 통해 한 방 날리고 싶었다. “세상 좋아졌다고 하는데, 왜 이런 폭력을 제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출판의 과정은 쉽지 않다. 요즘엔 독립출판(글쓰기, 출판, 마케팅을 혼자 담당)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지만, 출판시장도 자본시장임을 고려할 때 그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니까. 때문에 난 기획투고(출판사에 원고, 기획서를 제출하고 채택되면 나머지 부분은 출판사가 부담하는 방식)를 선택했다. 첫 책은 약 150개의 출판사를 두드렸고, 그 중 한곳에서만 답변을 받았다. 두 번째 책은 운이 좋았다. ‘Brunch’란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게재하다 출판사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았다. “책이 벌써 두 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하나의 내용이다. 첫 번째 책이 여성을 ‘을’로 만드는 연애에 관한 내용이라면, 두 번째 책은 그 여성이 결혼한 후의 본론이다. 때문에 이것은 사실 내 이야기도 하지만, 어쩐지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다.

두 번의 책을 내며 난 달라졌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겪는지 자료를 찾아보며, 누구보다 솔직하게 그 과정을 고백하며 내 껍데기를 벗는 듯한 ‘나체 쇼’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OECD 29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교육, 경제활동, 임금, 임원승진 등의 자료기반). 하지만 이보다 더 절망스러운 건 이런 불평등이 해소되기까지 적어도 200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Bank of America 발표, 2019). 나는 또 한 번 결심한다. 나 같은 아줌마들이 계속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소리쳐야 한다고. 그건 이 거대한 지구의 자전 속에서 번데기가 탈피하는 정도의 아주 작은 일이겠지만, 그게 뭐 어때서? 적어도 그것은 날 자유롭게 하고, 내 주변을 자유롭게 할 수 있 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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