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 논란’을 통해 다시 본 소녀상의 의미

2019.08.05
©머니투데이 한지연기자
평화의 소녀상(일명 소녀상) 훼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6일, 안산시에 위치한 상록수역 광장에서 남성 4명이 소녀상에 침을 뱉고 엉덩이를 흔드는 등의 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불구속 송치되었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이후 ‘나눔의집’을 찾아가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과했지만 사회적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2016년 7월, 광주 시청 앞에 서있던 소녀상이 쓰러져 훼손되었던 사건, 2017년 7월, 창원 인권자주평화다짐비(소녀상)가 흔들거리고, 그 앞에 꽃을 담기 위해 놓아둔 항아리가 없어진 사건, 같은 해 9월, 경북 상주의 소녀상 훼손 사건, 같은 해 10월 대구 평화의 소녀상에 한 남성이 입맞춤을 시도한 이른바 ‘키스 테러’ 사건, 2018년 7월, 대구 소녀상이 돌로 내리쳐져 훼손당한 사건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국외에 설치된 소녀상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최초로 세워진 그렌데일 평화의 소녀상이 최근 배설물 테러를 당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렌데일 경찰서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사이에 소녀상 훼손 사건이 3번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훨씬 이전인 2013년 12월에는 친일 미국인 토니 마라노가 그렌데일 소녀상에 외모 비하 막말을 퍼부으며 종이봉투를 씌운 사건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필자는 이 시점에서 소녀상의 설립 과정과 의미를 짚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일본 대사관 평화로 앞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해 세워졌다. 1992년 1월부터 진행된 수요시위와 그 자리를 함께 지키며 문제해결을 위해 싸워 온 당사자의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로 세워진 소녀상은 기림비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애초에 소녀상이 아니라 ‘평화비’로 이름 붙여진 이유다. 비석의 형태가 할머니들의 상황과 내용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작가들과 건립 추진위원회의 협의로 최종 조각상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가해국 일본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조차 ‘부끄러운 존재’로 자신을 감추며 살아야 했던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자들이, 참고 살아남아 마침내 저항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활동가로서 당당히 우리 앞에 섰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여성들의 삶이 소녀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입게 되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벗겨진 발에 양말이 신겨지고, 뜯겨진 머리에는 모자가 씌워지며, 어깨에는 손뜨개질한 목도리가 둘러진다. 꽃과 촛불, 인형, 각종 추모의 상징물들이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소녀상 옆의 빈 의자에는, 할머니가 되어서야 소녀 시절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성찰하고 그들의 고통을 상상하며 공감하고자 하는 이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들이 소녀상을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소녀상은 고정된 하나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관객과 상호관계를 맺는 열린 텍스트로서 그 의미의 층위를 더욱 넓혀가게 된다. 

이 와중에 ‘2015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되었다. 합의 이행 조건으로 제기된 일본 정부 측의 소녀상 철거 요구는 한국 시민들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공관의 안녕과 품위’가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보다 중요한가. 당사자가 배제된 합의라고 한다면 과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민족과 국가, 심지어 인권이 여전히 ‘여성’과 경합하거나 모순적으로 배치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베 정권의 요구에 대한 시민들의 다층적 질문과 자율적 대응 방식의 하나로 소녀상 건립운동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10-20대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은 소녀상 건립 운동을 주도하며, 수요시위에 대거 참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전히 피해자의 경험을 듣지 않거나 왜곡하거나 묵살하려는 가해자 남성의 태도는 무엇 때문인가. 2016년 이후 한국에 거세게 불어 닥친 페미니즘 열풍, 2018년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로 여겨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치적인 것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 배경과 결합되어,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소녀상을 통해 공명하게 된 것이다. 역사 속에 숨겨진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뚫고 우뚝 선 집합적 여성 주체의 상징물로서 소녀상은, 이들에게 젠더 부정의와 저항의 표상이 되었다. 소녀상을 훼손하는 행위자들은 물론, ‘국가주의 예술,’ ‘반일 민족주의,’ 혹은 ‘처녀성’의 상징으로 소녀상의 의미를 악의적으로 축소하려는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가 안타까운 이유다.

소녀‘상’은 이미 작가들의 의도, 구체적인 장소의 의미, 구현하고자 했던 애초의 메시지를 넘어선 지 오래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역사의 산 증인’은 매일매일 우리에게, 지금도 지워지고 있는 여성의 존재에 대해 환기하며 평화를 위한 책임의 공유를 요청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친일 식민성과 봉건 가부장적 남성성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스스로의 무의식과 먼저 싸워야 한다. 지금 아베 정권이 도발한 ‘외교 마찰’의 핵심 또한 제국주의 남성성, 군국주의적 극우 민족주의 천황제 국가에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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