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② 베스트 모먼트 5

2019.07.30
‘영원한 사랑’의 ‘약속해줘’ (1999년)
핑클의 대표곡 중에는 발라드가 많다. 데뷔 곡이었던 ‘Blue Rain’도, 뮤직비디오를 온통 세피아 빛으로 물들였던 ‘루비’도, 가요계 리메이크 붐의 선봉에 섰던 ‘당신은 모르실 거야’(원곡 혜은이)도 그랬다. 긴 공백기를 갖기 전 발표한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 곡 ‘영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안무를 위한 적당한 비트가 삽입되긴 했지만 굳이 가요 분류표에서 나누자면 미디움-템포-발라드 계열에 충분히 포함될만한 그런 곡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핑클의 밝고 경쾌한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이들을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한 몇몇 댄스 곡들이 가진 가공할만한 파괴력 덕분이다. 지금도 핑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친숙한 옆집 소녀’ 이미지의 초석이 된 첫 1위 곡 ‘내 남자친구에게’를 시작으로 ‘자존심’, 겨울과 핑클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노래 ‘White’까지, 이들은 한결같이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그곳에, ‘영원한 사랑’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잊을만하면 소환되는 전설의 ‘약속해줘’와 새끼손가락, 컬이 잔뜩 들어간 양갈래 머리와 화관, 손 하나 대지 않고 한쪽으로 머리 넘기기 스킬, 온통 흰색으로 점철된 무대 의상과 뮤직비디오까지. ‘영원한 사랑’의 모든 것은 이후 걸그룹의 청순발랄함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삼립식품 ‘핑클빵’ (2000년)
세기말을 전후한 핑클의 인기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1999년 한 해에만 2집 ‘영원한 사랑’, 2.5집 ’S.P.E.C.I.A.L’, 라이브 앨범 ‘1999 핑클 First Live Concert’까지 세 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총 판매량 100만 장을 넘겼고, 이 열기는 그대로 서울가요대상 대상(조성모와 공동수상)과 SBS 가요대전 대상 수상이라는 눈부신 결과로 이어졌다. 공식 팬클럽 ‘FINKY(핑키)’ 창단식을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개최한 것은 물론 이후 체조 경기장에서 최초로 단독 공연을 연 걸그룹 타이틀 역시 핑클 몫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수치나 기록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핑클빵’이었다. 현존하는 인물의 이름을 상품명으로 사용한다는 무척이나 세기말적인 발상의 결과물이자, 당시 하루 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던 ‘국찐이빵'(모델은 개그맨 김국진)의 영향을 받은 주식회사 삼립식품의 회심의 역작이었다. 효리, 진이, 주현, 유리의 4종류 빵은 각각 초코범벅, 팥, 크림, 소보로빵의 네 가지 맛으로 출시되었고 유명 모델을 이용한 대부분의 빵이 그렇듯 빵의 맛보다는 제품에 첨부된 랜덤 스티커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핑클빵의 광고 카피는 무려 ‘빵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과연 전설의 아이돌의 격에 걸맞는 강렬한 카피였다.

KBS ‘스탠바이큐’ (2001년)
이름을 내건 빵이 판매될 정도로 성별과 연령을 넘어선 높은 대중 인지도를 구가하던 핑클의 가장 큰 매력은 다름 아닌 타고난 예능 감각이었다. 날고 긴다는 유재석도 강호동도 신동엽도 맥을 못 추게 만드는 예능신 이효리부터 요즘 유행하는 ‘몸개그’와 ‘몰이’에 더없이 적합한 캐릭터였던 이진까지, 이제 와 말이지만 핑클은 요즘 말로 ‘예능돌’이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예능 우수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다. 어떤 질문이든 숨김 없이 대답해야 직성이 풀리는 멤버들의 시원스러운 성격은 무대 위의 청순하고 신비로운 모습과는 다른 거침 없는 면모를 자랑하며 ‘갭(GAP) 매력’이 무엇인가를 아낌 없이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방송 3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높은 시청률로 ‘원조 예능돌’, ‘원조 비글돌’ 등의 호칭을 수여받은 이들의 존재감이 절정에 달했던 건 2001년 방송된 KBS2 TV의 주말 인기 프로그램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코너 ‘99초 광고제작-스탠바이 큐’였다. 강호동, 강병규라는 당대 최고 인기 예능인들과 함께 코너 호스트로 낙점된 이들은 몸을 사리지 않으며 웬만한 예능인을 능가하는 활약상을 보여주었고, 이 넘치는 재능과 열정은 이들이 14년만의 재결합을 무대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작하게 한 바탕이 되었다.

3집 ‘Now’ 타이틀곡 ‘Now’의 뮤직비디오 (2000년)
1세대 아이돌 그룹이 활약하던 시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개척지인 동시에 황무지였다.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에서 해외 팝스타 시스템까지 골고루 눈치를 보던 이들은 곳곳에 산재된 시대를 초월하는 참고자료들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성장과 탈피를 반복해 나갔다. 그 가운데 2000년 발매된 핑클 3집 ‘Now'의 타이틀곡 ‘Now’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걸그룹 성장서사’의 정석을 마련한 노래였다. 고작 1년 전만 하더라도 ‘이 바보’를 외치며 수줍게 어깨를 들썩이던 네 사람은 단번에 어둡고 시크하게,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특히 전체적인 컨셉을 그대로 구현한 뮤직비디오가 화제였는데, 좋아하는 남성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네 명의 도둑이라는 파격적인 설정과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설프고 노골적인 성적 묘사들 때문이었다. 너무 급격한 이미지 변화는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Now’는 각종 음악방송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그룹에게만 주어지는 SBS 인기가요의 ‘트리플 크라운’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같은 ‘Now’의 성공은 ‘신인은 청순과 귀여움, 변신은 성숙과 섹시함’이라는 걸그룹 신의 법칙 아닌 법칙을 만든 것은 물론 해당 이미지를 대표한 리더 이효리를 21세기를 대표하는 솔로 가수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어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JTBC ‘캠핑클럽’ - ‘애들이 참 수동적이야’ (2019)
무려 14년만에 다시 모인 핑클의 첫 보금자리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다. ‘원조 예능돌’의 영광은 물론이거니와 활동 중단 이후 이효리를 제외하면 연기자, 뮤지컬 배우 등으로 다양하게 날개를 뻗어나간 멤버들의 활동상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핑클 활동 이후 한 번도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춰본 적이 없다는 이진의 고백은 그대로 이들의 지난 시간이 가수 핑클로서가 아닌 각자의 삶을 살뜰히 돌봐온 여정이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캠핑클럽’ 1화에서 자신들의 대표 곡 ‘루비’를 다시 부르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오히려 가능한 장면이었다. ‘너 루비가 무슨 뜻인지 알아?’라는 이효리의 질문으로 시작된 장면은 ‘오늘 그녀를 만났어 너의 새로운 여자를 / 다신 만나지 말라고 부탁했었어’라는 첫 파트에서 ‘언제든 다시 돌아와 / 난 여전히 너의 여자야’라는 마지막 가사까지 조목조목 따갑게 되짚는다. 노랫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부르던 그때 그 ‘루비’의 화자에게 성유리가 던진 한마디는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참 수동적이야 애들이’. ‘그 시절 그 노래’를 그대로 다시 부르는 게 아니라 지금의 모습과 시선으로 자연스레 옷을 바꿔 입히는 멋진 재주. 길지만 짧은 캠핑의 끝에 네 사람이 함께 서는 무대나 노래가 없어도 좋다. 세월이 선물한 나이 이제 마흔, 핑클의 귀환은 이대로 귀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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