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것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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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은 뒤 못하게 된 아쉬운 일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아늑하고 예쁜 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일은 나조차도 영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쉬운지도 모르게 체념했다. 양육 공백에 대한 공동체적 지원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어딜 가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양육자들은 커피 마실 곳을 이야기할 때면 입을 모아 스타벅스를 찬양한다. 대개 스타벅스는 장소가 넓어 유아차 진입이 가능하고, 아기 의자가 항상 구비되어 있으며, 화장실이 있어 아이 기저귀를 갈 수 있고, 아이가 울거나 크게 소리를 낸대도 이미 가득한 사람들의 소음에 종종 묻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는 실은 자조로 해석해야 한다. 유아차의 진입은 가능하더라도 문이 무겁고 종종 계단만 있어 진입이 용이한 것은 아니고, 기저귀 갈이대 없는 화장실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는 묘기가 동반되며, 아이의 소리가 다른 소음에 묻혀 괜찮다는 것이 영유아 친화적이라는 건 아니라는 것까지 양육자들은 이야기할 수 없다. 잘 꾸며진 곳에서 밸런스가 완벽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 따위는 아이를 동반하고는 감히 누릴 수 없는 환상이 되어버렸다. 아이 동반 양육자 스스로의 불편 때문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아이와 아이 동반 양육자의 입장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아기와 함께 외출하기 전에는 항상 지명과 아기 관련 키워드를 함께 넣어 검색해본다. ‘아기환영’, ‘아기입장’, ‘아기의자’, ‘아기동반’, ‘아기랑’ 같이 검색어를 바꿔보면서 스타벅스가 아닌 다른 곳을 갈 수 있나 약간의 기대를 걸어본다. 보통은 소망이 무색하게 아기의자 하나 갖춘 장소를 찾지 못하고 스타벅스로 향하게 되지만, 얼마 전 아기의자는 물론 아기환영 키워드를 포함한 카페 소개글을 발견했다. SNS에 ‘감성핫플’이란 이름을 달고 올라올 법한 전경에 아기환영이라는 문구가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언제나처럼 기대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커피를 한 모금도 못 마시더라도 주저없이 나오겠다는 생각으로 아기와 함께 방문했다. 

스타벅스라면 아기를 안거나 유아차를 끌고 돌아다니며 아기의자를 찾아 직접 옮겨야 했겠지만, 이곳은 나와 아기가 입장하자 직원이 아기의자를 바로 가져다 주었다. 화이트-우드 톤의 내부 인테리어가 사진으로 봤던 거보다 더 예뻐 커피를 주문한 뒤 두리번두리번 카페를 둘러보니, 카페 한 켠에 아기가 기어 다니며 놀 수 있는 영유아 놀이공간도 1평 남짓 마련되어 있었다. 커피 주문 후 진동벨을 받았지만 직원이 아기를 동반한 나를 배려했는지 커피를 직접 내어다 주었고, 키즈카페 혹은 베이비카페란 이름을 두고 영업하는 곳이 아닌데도 아기와 함께 입장해 편안히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 나는 잠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기를 동반하고서도 이런 공간에 있는 게 가능하구나 싶어 감상에 젖어있는데, 그도 잠시, 돌연 아기가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몇 옥타브의 고음을 아기가 쉬지 않고 발사했다.

익숙하게도 오늘의 나들이는 여기까지구나 싶었다. 내가 ‘제 아이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엄마’를 나의 선례로 이 공간이 아이의 입장을 제한하는 곳이 될까 봐, 내 이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차별을 당하게 될까 봐, 사회적 약속은커녕 단순한 말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공공장소에서는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얘길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카페의 오너가 차분히 내게 오더니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아기가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 거 같아요. 공간에서 자기 소리가 울리니 재미있나 본데요? 아직 말을 알아듣는 시기가 아닌데 어떡하겠어요. 괜찮아요” 하고 덧붙였다. 근처에 있던 손님이 이어 “미안해요. 제가 아까 쳐다본 게 아기가 소리 질러서 그런 게 아니라, 들리는 소리가 놀이방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 소리인가 하고 본 거예요” 하고 말했다. 울컥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끝까지 마셨고 아기와 놀이공간에서 수레도 몇번 밀어보면서 여유롭게 나들이를 즐긴 뒤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몇 해 전부터 우후죽순 생겨난, 영유아 및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간을 두고 ‘아이가 그러는 건 괜찮지만, 제 아이 하나 관리 못하는 엄마가 많아 문제’라고 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아이는 양육자가 통제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는 사실에 관심 없는 사회는 다른 설명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영유아 배제적이며, 영유아를 거절하는 공간의 범람에서 고민없이 ‘엄마’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회는 또 그 자체로 여성혐오적이란 말을 속으로만 삼켜왔다. 이런 이야길 꺼낸다면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에 ‘노키즈존’을 검색했을 때 흔히 나오는 그 발생 원인부터 관련 사건들, 각종 의견들을 비롯해 법원 판결까지 술술 읊으며 명백한 혐오를 두고도 마치 찬반 논쟁이 가능한 듯이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내’가 ‘나’로 있기를 원하면서 한국 사회에선 유난히 아이에 대해서만 그래선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성장 중에 있는 아이의 특성을 무시한 채 사회적 약속을 모두 습득한 어른처럼 행동할 수 없다면 일정 공간에서 배제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아이의 공간을 제한해왔고, 이는 아이 돌보는 여성을 일상 곳곳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귀결됐다. 영유아 및 어린이를 환영하는, 실존하는 공간을 방문하고는 깨달았다. 아이와 양육자를 환영하는 공간이란 그저 ‘아이를 아이로 받아들여 주는 곳’이고,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날의 경험으로 ‘나는 나로 존재하고, 아이가 아이로 존재하는 사회’, 그것이 꿈에서나 가능한 대단한 유토피아여서는 안 된다고 이제는 더 소리낼 수 있게 됐다. 아기를 낳고, 아기에게 매일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 하나씩을 소개하는 나는, 그렇게 믿어야만 아기를 희망적으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영유아 및 어린이의 입장 제한을 위해 갖은 근거를 들어 주장하기 전에 아이의 아이됨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아이를 환영하는 공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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