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비웃는 사람들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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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 동료가 키득키득 웃더니 옆자리에 있는 나를 불러서 모니터를 보여주며 물어봤다.

“이거 수어로 산이라면서요? 진짜예요?”

순간, 내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약치기그림 작가는 직장인들에게 인지도가 꽤 높은 작가로, 농인의 고유언어인 수어를 희화화하여 독자들의 웃음을 유발시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했다. 수어를 모국어로 여기고 사용하고 있는 농인인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 웹툰에서 ‘유미의 세포들’을 연재하고 있는 이동건 작가는 2018년 311화에서 ‘쌈 수화’라는 워딩을 사용하였다. 이에 농인 몇몇이 직접 댓글로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아무런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장난인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냐”, “별 걸 다 불편해한다”라며 되려 프로불편러로 취급하였다.

이게 프로불편러로 취급될 일인가? 입장을 바꿔서 해외 유명 인사가 한글 또는 한국어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형태의 글자나 말을 지어내서 대중들에게 이를 한글, 한국어라고 장난스럽게 소개한다고 하면 어떨까?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농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수어도 음성언어와 마찬가지로 엄연한 ‘언어’이며, 수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농인 입장에서는 이같은 청인(청각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행동이 대단히 무례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제스처에 “수화”를 붙여 쓴다고 해서 모두 수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약치기그림 또는 이동건 작가가 모르고 그랬을 수 있다는 핑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공부해야 하는데, 사회에서 권력층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자기검열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냥 “몰라서 그랬다”, “그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이 두 마디면 끝이다. 얼마나 속 편한 일인가. 이 같은 권력층의 기만적인 태도는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음성언어와 수어 둘 다 사용하는 농인이다. 청인들이 다수고, 사회 시스템 역시 음성언어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상대의 입모양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독순술(lip reading)과 음성 언어를 수년간 익혀왔고, 청인들과 대화할때는 반드시 음성언어를 사용해 왔다. 지금까지 만나온 청인들 중에는 내 어눌한 발음을 일부러 따라하며 나를 놀리는 청인도 몇 있었고, “청각장애가 있는데, 말을 하네?", “청각장애인 같아 보이지 않아요. 대단하세요!”라며 굉장히 신기하게 바라보는 청인도 있었다. 청각장애인 같지 않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청각장애로 발음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고,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발음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청각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기안84 작가의 연재작 <복학왕> 248화 ‘세미나1’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주시은)가 말할 때뿐만 아니라 속마음 대사까지 어눌한 발음으로 묘사된 것에 청각장애인들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청각장애인 모두가 발음이 나쁜 건 아닌데 왜 모두가 그런 것처럼 그려냈는지 모르겠다.”
“청각장애로 발음이 어눌한 건 있을 수 있지만, 생각까지 어눌한 발음으로 하지는 않는다.”

해당 장면이 문제되자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하였다”(라)며 앞으로 좀 더 신중해지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장면을 수정함으로써, 그렇게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시작되었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청인들로, 청인들의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는 audism(청능주의)에 기반하여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발음과 농인들의 고유언어인 수어에 대한 희화화, 조롱, 무시 등. ‘언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듣고, 말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수어와 같은 다른 형태의 언어는 청인들이 사용하는 음성언어보다 수준이 낮은 하위언어로 취급받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로 일부 청인들은 위와 같이 선천적 청각장애인들은 한번도 “제대로 된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각 역시 “제대로 된 언어”로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제대로 된 언어”란 무엇일까.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음성언어나 문자언어가 그 기준인걸까? 위의 말대로라면,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지만 “제대로 된 언어”로 본 원고를 쓰고 있는 나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케이스인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어는 지금까지 “조사가 없다”든가 “문법이 덜 발달되어 있다”, “수어로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할지 몰라도 추상적인 주제에 관해서 토론하기 어렵다”며 언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평가절하를 당해왔다. 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수화언어법이 2016년 제정·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목소리의 형태’를 비롯해서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와 수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품에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 속에서 이 캐릭터를 ‘어떠한 의도로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느냐’가 문제이다. 의도적으로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운운해가면서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다면, 이는 청각장애가 있는 당사자들의 입장과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정상’인 사람이 장애인을 돕는 ‘비장애 구원자(non-disabled saviour)’가 꼭 있으며, 준수한 외모를 지닌 여성 장애인에 성녀 프레임을 씌우는 등 장애가 있는 여성들에 대한 낭만화와 성적 환상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성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장애인 중심적인 시각과 사고방식을 과감하게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권력층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수시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비장애인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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