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방도령’, 나는 누구 여긴 어디

2019.07.19
* 영화 ‘기방도령’의 내용이 있습니다. 

“‘기방도령’을 봐야겠군요.” ‘ize’의 금요편집 회의 시간, ‘시네마 예매 지옥’에 들어갈 영화를 선정하던 중 들려온 편집장의 말이었다. ‘기방도령’이 무슨 영화였더라. 준비한 회의 자료에서 개봉작 목록을 뒤적여봤다. ‘줄거리: 불경기 조선, 폐업 위기의 연풍각을 살리기 위해 꽃도령 허색, 조선 최고의 기생이 되다! 역사상 가장 신박한 코믹 사극 탄생이오!’ 몹시 전투적인 소개말이 적힌 영화였다. 불경기, 꽃도령, 조선 최고의 기생 등 여러 단어 중 무엇 하나 흥미롭게 와 닿지 않았다. 그래 경기가 어려운 때에 풍자와 해학을 내놓는 것은 좋으나, 왜 하필 꽃도령을 소재로? ‘색(色)’이라는 노골적인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여성들에게 느끼한 멘트를 날릴 것만 같았다. 못 들은 척 “네?”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편집장의 목소리는 명료했다. 잔말 말고 보고 오란 소리다. 달리 대안으로 제안할 만한 영화가 없었기에, 해당 시사회 일자에 다른 일정이 없는 내가 ‘기방도령’을 맡는 것으로 회의는 신속히 정리됐다. 이미 정해진 것을 어쩌겠는가. 장르가 코미디라고 하니 잠시 머리를 비우고 웃으며 근심과 걱정을 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한 소녀가 애타게 허색이라는 사람을 찾자 누가 봐도 허색같은 노인(전노민)이 언덕 위 초가집을 가리킨다. 소녀가 굽이굽이 가파른 언덕을 올라와 숨을 몰아쉬는데, 아까 길을 안내했던 노인이 먼저 도착해 그를 맞이한다. 소녀가 왜 더 편한 길을 알려주지 않고 혼자만 지름길로 왔느냐고 묻자, 노인이 답한다. “같이 걸으면 손잡고 싶어지잖아.” 왜 저러실까.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저런 장면이라니. 심지어 저 인물은 주인공이었다.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면 그와 한 청년(이준호)의 얼굴이 교차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허색은 기생이었던 어머니를 일찍이 여의고, 어머니의 동료이자 기방 연풍각의 주인인 난설(예지원) 손에 자란 기방 도령이다. 그래서 제목이 ‘기방도령’이다. “꽃이 말을 하네” 같은 말로 모든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설정인데, 지금은 1969년이 아니라 2019년이다. 게다가 난설은 허송세월만 보내는 허색에게 “에라이 간장게장 같은 놈아! 밥도둑! 밥만 축내는 놈!”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밥도둑이란 단어를 지금 쓰다니. 웃기지 않는 철 지난 유행어만큼 영화 내용도 뻔하게 흘러간다. 연풍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큰 빚을 떠안으며 폐업 위기에 처한다. 예상대로 허색이 기생으로 나서고, 유교 문화로 인해 절개를 지키는 ‘열녀’이기를 강요받았던 여성들은 허색 앞에서 그간 억눌렸던 욕망을 표출한다. 허색은 여성들의 욕망에 부응하듯 나풀거리는 두루마기를 입고서 격렬한 춤을 선보이는데, 공중에서 우아하게 회전하는 그의 동작과 함께 휘날리는 옷자락, 주변을 둘러싸고 열광하는 여성들이 슬로우모션으로 흘러간다. 감독이 ‘이 분이 바로 2PM의 이준호다!’를 외치고 싶어 견디지 못한 것 같달까. 설상가상 허색은 ‘태을미(太乙美)’라는 시조를 읊기 시작한다. ‘그대도 나를 좋아할 줄은 몰랐소’ 첫 소절부터 불안하다. ‘꿈만 같아서 내 자신을 자꾸 꼬집어보오’, ‘너무나 좋소’ 안 돼. 제발. 하지만 기어이 ‘어머나’가 나온다. 그렇다. 원더걸스의 ‘Tell me’다. ‘태을미 태을미 태태태래태을미’ 순간 박진영이 속삭이는 JYP 시그니처 사운드와 함께 오프닝 크레딧에서 봤던 공동제작사의 이름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JYP픽쳐스, 바로 JYP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못 만든 영화는 많다. 하지만 ‘기방도령’이 이토록 강렬한 기억을 남긴 이유는 낮은 완성도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 결합하면 영화가 얼마나 이상해지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 등장하는 육갑(최귀화)은 이름값을 하느라 ‘X나’, ‘X발’ 등 비속어를 사용한다. 한국 영화에서 이유 없이 욕을 달고 사는 캐릭터를 보는 것도 지겨운데, 이 캐릭터는 심지어 ‘숫총각’으로 설정돼 있다. 허색을 따라 여성들을 유혹해보겠다고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하고, “몸이 뜨겁다”라며 달밤에 절규한다. 대체 언제까지 이른바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성인 남성을 비참하게 프레이밍 할 건지. 처녀든 총각이든 상황 봐가며 알아서들 하게 둬라 좀. 게다가 육갑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하며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낯선 남성이 일방적으로 화면 가득 자신의 맨 엉덩이를 보여주는 상황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배우에겐 악의가 없었겠으나 그의 연기가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현실에서 종종 마주할 수 있는, 스스로를 ‘괴짜’라 포장하는 치한들이 떠오르기까지 한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런 게 웃긴다고 말하는 게 누군가에겐 죽자고 말하는 것과 같이 위협적이라는 걸 좀 알아주십사.

“그저 교감하는 거요.” 허색은 ‘어떻게 여자를 꼬시느냐’는 물음을 이렇게 정정한다. 여성‘을’ 꼬시는 게 아니라 여성‘과’ 교감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한 말이다. 여성은 대상화되는 객체가 아니며 남성과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한마디는 영화가 어떤 교훈을 담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여성도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플롯은 조선시대만큼이나 고리타분하고 때론 거북하다. 반드시 깨달음을 주고야 말겠다는 사명에 사로잡힌 영화는 모순적으로 완급조절에 실패한 나머지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한다. ‘기방도령’에서 난설을 비롯한 기생들은 ‘기구한 팔자’를 내면화하며 부당한 구조에 순응한다. 허색의 어머니, 허색과 함께 자란 숙정은 사랑채에서 ‘서방님’의 사랑에 목을 매다가 허색의 각성 계기로 소모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허색은 대뜸 스모키 화장을 하고 나타나 열녀문에 불을 지르더니, 이렇게 외친다. “여인들에게 사죄하오!” 여자들은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남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죄를 말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이상하다. 허색이 ‘열녀’라는 개념이 가진 폭력성과 부당함을 지적하는 동안 여성들은 그저 곡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리는 역할만을 부여받는다. 거친 허색과 불안한 사대부 남자들과 그걸 오열하며 지켜보는 여자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너무 잘 알겠는데 제발 진정해줬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기방도령’은 허색을 여자를 위해 울부짖게 하면서도 여성의 욕망을 기이하게 묘사한다. 은장도는 허벅지를 찌르는 칼로 전락하고, 허벅지를 찔러가면서까지 참아야 했던 여성들의 욕구는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 나서지 못해서 기방 내에만 머문다. 디즈니조차 자스민 공주가 술탄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시대인데! 심지어 허색은 기생이면서 마치 아이돌처럼 묘사된다. 여러 여성들을 한데 모아놓고 일대다 팬미팅을 열고, 허색의 명성을 부러워한 남자들이 연풍각에 찾아와서는 기생이 되고 싶다고 청한다. 영화는 정말로 그들을 “연습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남자들은 나란히 한 줄로 서서 여자 손님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선택을 기다린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가 드러내기도 했던, 호스트바의 ‘초이스’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선택받은 연습생들은 손님들의 술시중을 드느라 과음을 하고, 만취 상태로 뛰쳐나와 구토를 하면서도 비틀거리며 다시 손님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성별을 막론하고 누가 해도 옳지 않은, 소위 ‘성접대’라 불리는 악습을 성별을 바꿔 묘사하는 데다, 그것을 여자가 남자 아이돌의 팬이 되는 것에 비교한다. ‘기방도령’은 주체와 객체의 자리를 바꿀 뿐, 욕망을 구현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정말로 이게 웃긴 건가?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모 기획사의 불법 성매매 논란을 풍자한 것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어봤지만, 헛수고였다. 

“아, 그걸 기사로 내면 되겠네요.” 일주일 만에 돌아온 회의 시간, 편집장이 말했다. 지난주 ‘기방도령’을 보고 오라고 할 때만큼이나 분명한 목소리였다. ‘기방도령’에 흔들리는 눈빛을 보내던 지난주의 나를 기억하던 동료들이 영화에 대해 물어보자, 나도 모르게 분노와 흥을 함께 담아 영화에 대해 얘기했을 뿐이었다. 허색의 “여인들에게 사죄하오!”를 동작까지 따라한 건 과했나 싶긴 하지만, 흥분하다 보면 회의 시간에 이준호 연기를 따라할 수 있고 그런 거 아닌가. 조선시대 영화에서 ‘태을미’가 나왔는데 그 얘기를 안 할 수도 없지 않나. 하지만 다들 웃는 사이 뭔가 쎄한 느낌을 받은 때는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편집장에게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한마디를 던지며 회의를 신속하게 마쳤다. “필요하다면 영화는 얼마든지 다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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