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급식왕’, 꿈과 현실 사이의 아이들

2019.07.11
tvN ‘고교급식왕’에서 고등셰프 8팀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급식 대결을 펼친다. 토너먼트로 이루어지는 이 대결에서 고등셰프들은 메뉴 개발부터 배식까지 급식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이끌어가고 직접 급식을 먹어본 학생들의 선호도와 만족도, 특별심사단 점수를 합산해 승부를 가린다. 지난 6월 15일 방송된 2화에서는 유성여자고등학교 ‘밥상머리’팀과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최강이균’팀의 8강전 첫 번째 대결이 펼쳐졌고, 이들은 3시간 동안 1000인분의 급식을 만들었다.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급식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등셰프들의 모습에 제작진은 ‘급식제라블’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이를 바라보던 백종원은 “지원할 때는 셰프를 생각했겠지만 이건 대량조리”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고교급식왕’의 고등셰프들은 지금, 꿈과 현실 사이에 서있다.

지난 6월 2일 발표된 ‘2018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학교 1∼3학년 재학생 391명을 대상으로 희망직업 등을 조사한 결과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은 여섯 번째로 높은 선호도를 나타냈다. 이것이 단지 수치만이 아니라는 것은, ‘고교급식왕’의 치열한 경쟁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참가를 신청한 234팀 중 단 8팀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고, 참가자들이 입을 모아 조리 분야의 명문으로 꼽는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에서는 무려 20개 팀이 지원해 ‘급슐랭 3스타’ 한 팀만이 본선에 올랐다. 청소년들이 이토록 요리에 높은 관심을 가지는 현상은 분명 최근 몇 년간 방송과 유튜브를 막론하고 대세가 된 ‘먹방’과 ‘고교급식왕’의 멘토이기도 한, 백종원으로 대표되는 ‘방송하는 요리인’들의 활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교급식왕’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가 어떻게 꿈을 꾸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고등셰프 대부분은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으로 또래보다 한발 빨리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했다. 이들은 제작진 앞에서 능숙하게 자신의 레시피를 프레젠테이션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내밀고 칼질과 발골, 난타까지 선보인다. 자격증만 15개에 이르는 팀도 있고 이미 외식사업체에서 실습 중인 학생도 있다. 또한 이들은 현재 급식을 먹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자신의 현실에서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급식은 달콤한 꿈과는 거리가 멀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고등셰프들은 “학교 급식의 평균 단가가 3775원이며, 여기에는 재료비뿐 아니라 인건비와 운영비 등이 포함된다”는 백종원의 설명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칼로리 제한을 철저히 지키되 영양 균형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에서 고등셰프들은 ‘하고 싶은 음식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교급식왕’의 예선 통과 기준은 ‘독창성’이었으며 학생들은 단가와 상관없이 특별한 레시피를 마음껏 선보일 수 있었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로 구성된 ‘스펙트럼’팀은 자신들의 히스토리가 담긴 ‘다문화 식판’을 선보였고 조리고가 아닌 일반고 학생들로 구성된 ‘밥상머리’팀은 팝핑보바나시리얼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약점을 보완했다. 이런 고등셰프들에게 급식의 까다로운 조건은 얼핏 얄궂은 장애물처럼 보이지만,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이 아이디어와 열정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첫 번째 대결을 펼쳤던 ‘최강이균’팀은 어려운 점을 묻는 백종원의 질문에 “처음에 생각대로 메뉴를 짜니 칼로리 2300에 원가 8000원이 나왔다”고 답했고, ‘밥상머리’팀은 “주식과 부식의 조화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현장 실습과 대외 활동을 병행하다가 팀워크에 문제가 생겼던 ‘남도식판’팀과 ‘스펙트럼’팀처럼 급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이 결코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결국 ‘고교급식왕’은 고등셰프들에게 꿈과는 다른 현실을 경험하게 해준다. 사실상 에이스로 꼽혔던 ‘급슐랭 3스타’팀과 ‘매송걸즈’팀은 각각 크래커 사이에 양갱과 버터를 끼워 넣은 ‘양버터’를 개발하고 90분 만에 오이소박이를 완성해 백종원을 놀라게 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함께 급식을 만드는 조리원에게 “이걸 어떻게 매일 하세요?”라거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을 텐데 의지가 되고 감사했어요”라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어른들의 역할이다. 은퇴를 앞둔 조리장은 고등셰프들에게 레시피를 확정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대량조리가 어려운 김부각을 고집했다가 시무룩해졌던 ‘밥벤져스’의 팀장은 백종원에게 “그래도 해내고 나면 ‘아 해 볼만 했구나’ 할 거야. 안 되는 일은 없어.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많이 해봐”라는 격려를 듣는다. 화려한 꿈의 단면을 보여주던 방송이, 이제는 그 꿈에 가까워진 아이들이 겪는 현실과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어른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고교급식왕’ 제작발표회에서 백종원은 출연 계기에 대해 “급식의 어려운 부분을 방송으로 알려서 다 같이 고민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식당 운영의 어려움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먹방’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꿈의 뒤편에는 지난한 노동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처음 보는 친구들의 점심을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던 것을 배운다.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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