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4│② 장난감도 자란다

2019.07.02
사람도 자라고, 장난감도 자란다. 1995년 개봉했던 ‘토이 스토리’가 올해 ‘토이 스토리 4’로 이어지는 동안 장난감들의 주인 앤디는 성인이 되어 새 주인 보니에게 장난감들을 물려주었고, 그동안 장난감들은 친구들과 헤어지거나 쓰레기장에서 폐기될 위기에 놓이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 4’에서 장난감들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깨달으며 저마다의 행복에 충실한 존재로 한 걸음 더 자라난다. 늘 한 자리에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주인 몰래 꾸준히 성장한 ‘토이 스토리’ 시리즈 속 장난감들의 변화를 정리했다.

*‘토이 스토리 4’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디

Before: 직업인으로서의 장난감

우디의 말대로 장난감의 사명이 “아이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그는 이 사명에 가장 충실한 직업인이다. 우디는 앤디의 장난감들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항상 리더로서 작전을 세우고 지시를 내리며, 장난감들이 앤디를 떠날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들이 앤디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가장 먼저 나서서 돕거나 설득한다. 그러나 이처럼 우디가 누구보다 앤디에게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앤디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으로서 누리는 특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토이 스토리 3’에서 앤디에게 버림받느니 탁아소에 가겠다는 다른 장난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토이 스토리 4’에서 새 주인 보니가 자신이 아닌 제시를 놀이의 중심에 놓자, 그는 이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1950년대부터 시작됐던 긴 삶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과제를 뒤늦게 부여받은 셈이다.
After: 스스로의 주인이 되다
‘토이 스토리 4’ 이전까지 우디는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바깥 세상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항상 어린이에게 기쁨을 주는 장난감으로서의 삶으로 회귀하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토이 스토리 2’에서 우디는 박물관에서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다시 앤디에게 돌아오고, ‘토이 스토리 3’에서는 성인이 된 앤디에게 이례적으로 쪽지를 써서 자신과 장난감들이 보니에게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토이 스토리 4’에서 우디는 장난감으로서 사랑받는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고, 옛 연인 보 핍과의 재회를 통해 주인에게 기쁨을 주는 장난감으로서의 삶이 절대적인 답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앤디와의 관계, 혹은 보니와의 관계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정의해왔던 우디는 보 핍과 함께 세상을 누비기를 선택하면서 마침내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

버즈 라이트이어

Before: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토이 스토리’ 시리즈 내내 우주전사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만큼 자아를 끊임없이 위협받는 이는 없다. 그는 ‘토이 스토리’에서 스스로를 우주전사라고 진지하게 믿었다가 뒤늦게 자신이 장난감임을 깨닫고 큰 충격에 휩싸인다. 알의 장난감 가게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버즈 라이트이어 중 하나에 의해 대체당할 위기에 놓이거나(‘토이 스토리 2’), 탁아소를 지배하는 장난감들에게 잡혀 정신을 조작당하기도 한다(‘토이 스토리 3'). 버즈는 날개나 레이저 불빛처럼 다른 장난감들에게 없는 근사한 기능들과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언제라도 대체되고 ‘고유하다’고 인정받기 어려운 장난감의 취약한 위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After : Our Friendship will never die
그러나 버즈는 우정의 가치를 꾸준히 지키는 모습으로 자신이 왜 수많은 버즈 라이트이어들과 다른지를 보여준다. 그는 ‘토이 스토리 2’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우디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고, ‘토이 스토리 3’에서는 친구들을 위해 특권을 누릴 위치를 포기한다. 버즈가 정신이 다른 모드로 조작된 상태에서조차 일관되게 제시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는 점은 단지 웃음을 주는 요소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어떤 조작을 거쳐도 그가 여러 관계 속에서 형성한 자아가 근본적으로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토이 스토리 3’의 마지막에서 친구들과 함께 죽을 위기에 처하자 가장 먼저 손을 잡으며 연대감을 표현하는 것도, ‘토이 스토리 4’의 결말에서 우디의 선택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격려하는 것도 버즈다. 우주전사라는 생각에 갇혀 세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그는 24년 동안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온 우주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장난감으로 성장했다.

제시

Before: 내 거친 행동과 불안한 눈빛과
“이-하!” 1950년대 방영된 ‘우디의 가축몰이’에 우디의 파트너로 출연했던 카우걸 제시는 ‘토이 스토리 2’에서 허스키하면서도 쾌활한 목소리로 신나게 우디를 맞이한다. 그는 신이 나서 축음기 위를 달리거나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자신을 오해한 우디에게 화가 나자 그를 제압해버리는 등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한다. 그러나 제시는 과거 주인 에밀리로부터 버림받아 오랫동안 창고에 갇힌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창고라는 말만 들어도 숨을 쉬기 어려워하고 장난감 상자로 뛰어내리는 것을 힘겨워하기도 한다. 폐소공포증으로 표현되는 그의 불안감은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생존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로서는 두드러지게 역동적인 인물이면서도, 제시는 항상 주변의 도움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After: 이 구역의 보안관은 나야
제시는 ‘토이 스토리 3’의 결말에서 공포감을 극복하고 앤디를 기다리며 다락에 갇히는 삶을 선택했다. 비록 앤디가 보니에게 장난감들을 물려주면서 제시는 다락에 갇히지 않았지만, 그는 이 장면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 4’는 1950년대의 TV 쇼나 장난감들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주인공이 아니었던 그의 과거를 보상한다. 보니는 과거 우디의 자리에 제시를 놓고 놀이를 펼치며, 보니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 우디는 이 영화의 끝에서 직접 제시에게 자신의 보안관 배지를 달아준다. 시대가 바뀌면서 주인공도 바뀌었다. 언젠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제시는 이전만큼 두렵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장난감의 삶에도 여러 답이 존재함을 알게 됐기 때문에.

보 핍

Before: 조명등으로서의 여성

‘토이 스토리’에서 조명등의 도자기 인형 보 핍은 자신의 양들을 구해준 우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처음 등장한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앤디의 동생 몰리의 방을 밝히기 위한 용도로 들어온 그는 ‘토이스토리 3’까지 꾸준히 우디를 비춰주기 위한 조명등처럼 보였다. 지팡이로 우디를 끌어당겨 자신의 앞에 데려오거나 그에게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하는 것처럼, 보 핍의 모든 행동은 여성에게 사랑받는 우디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특히 그가 하는 대사들은 대부분 모든 장난감들이 우디를 신뢰하지 않는 순간조차 유일하게 그를 걱정하거나, 고민에 빠진 우디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보살피는 여성으로서의 모습 이외에, 보핍에게 어떤 욕망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After: 네가 알던 내가 아냐
‘토이 스토리 4’에서 보 핍은 ‘장난감은 인간에게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가장 먼저 깨트린다. 9년 전 정리 대상이 되어 앤디의 집을 떠나야 했던 그는 “난 앤디의 장난감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 문장은 9년 후 재회한 우디와 갈등하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바뀐다. “난 버림받은 장난감이 아니야.” 그는 높은 지붕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주인이 없어도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하고, 인간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삶을 선택한다. 앤디의 놀이 속에서 항상 우디에 의해 구원받는 장난감이었던 그는 이제 부러진 팔을 스스로 수리하며 장난감들을 진두지휘하고, 자신의 지시를 어기는 우디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장난감도, 조명등도 아닌 삶을 선택하면서 비로소 보 핍은 스스로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게 됐다.

포키

Before: “쓰레기!”

모든 장난감이 버려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세상에서, 굳이 스스로 “쓰레기”가 되고 싶어하는 장난감의 존재는 아이러니하다. ‘토이 스토리 4’에서 처음 등장한 포키는 보니가 재활용 포크를 활용해 직접 만든 장난감이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보니에게 가장 중요한 장난감이 된 그는 정작 자신이 “쓰레기”라 주장하며 장난감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꿈꾸며 날아가다가 땅바닥에 박히거나, 스스로 걸을 힘이 부족해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실시간으로 팔이 떨어지는 등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한다. “포키에겐 내가 필요하다”라는 보니의 말처럼, 자유를 추구하기엔 아직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포키는 아동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After: 이젠 혼자서도 잘해요
포키는 특유의 순수함을 바탕으로 다른 장난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우디에게 앤디가 누구인지를 재차 물으며 과거를 소환하거나, 장난감으로서의 덕목에 집착하는 우디의 행동이 스스로 “쓸모없다”라고 느끼는 감정에서 비롯됨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것은 포키의 몫이다. 또한 자신을 납치한 개비개비의 상처를 알아보며 이를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포키는 자신이 누구이며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배운다. 영화 말미에서 그는 자신처럼 의도치 않게 보니의 장난감이 된 재활용 포크에게 우리 모두가 “특별하고 아름다운 장난감”이라 말하며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겠다고 말할 만큼 성장한다. 물론 이처럼 굳은 의지와 달리, 포키는 아직 새 포크 친구가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장난감들이 그랬듯, 포키 역시 앞으로도 꾸준히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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