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수, 그리고 여성이 무뚝뚝할 권리

2019.07.01
하연수가 자필 사과문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 매체들에서는 ‘하연수 까칠한 태도 또다시 논란’ 이라고 사건을 요약하고 있었다. 논란이 된 댓글은 이랬다. “500번 정도 받은 질문이라 씁쓸하네요. 이젠 좀 알아주셨으면... 그렇습니다. 그림 그린지는 20년 되었구요.” 이 댓글은 “연수님이 직접 작업한 건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하연수의 말투가 상냥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500번인지 정확한 횟수는 알 수 없지만 거듭 같은 질문을 받고 답을 반복해야 했던 사람의 피로가 배어난다. 지금은 닫혀 있지만 하연수는 자신의 계정에서 스스로 찍은 사진이나 자기가 작업한 그림을 계속 알려온 사람이다. 게다가 포스팅 원문에 이미 밝히고 있었다. “작년에 작업한 ‘화조도’ 판매합니다. 벽에 걸 수 있는 족자입니다.” 직접 작업했다고 써놓은 글에다 대고 도로 직접 작업했는지를 묻는 사람의 질문은 우선 적절했을까.

이 사건을 보며 내가 팔로하는 다른 프리랜서 플로리스트가 떠올랐다. 하연수만큼은 아니지만 팔로워가 아주 많은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그는 일하는 태도가 거만하다는 비난을 듣고서, 그 비난의 빌미가 된 대화를 자신의 피드에 공개했다. 한 남성 고객이 여자친구를 위한 꽃다발 주문을 하고 싶다며 DM으로 문의를 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게시물이 지워져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DM의 내용은 아주 건조하고 사무적인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고객의 질문에 대해 언제까지 작업이 가능하다, 가격은 얼마다, 어떤 꽃은 시즌이 아니라 넣을 수 없다 하는 답변이 오갔다. 다만 거기에는 사적인 대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이모티콘이나 감정 표시 기호들이 전혀 없었고, 말투도 다나까 체로 딱딱했다. 문장을 끝맺는 것은 ^^ 이나 :-) 대신에 마침표였다. 대화의 상대방인 남성 고객과는 약간의 온도차도 느껴졌다. 여자친구에게 기념일 꽃선물을 구상하고 있는 고객은 들뜨고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의뢰하다가, 상냥하지는 않은 대응에 기분이 상한 듯 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정확한 정보 전달 외에 클라이언트의 기분을 맞춰줄 의무도 있는 걸까.

하연수와 이 플로리스트의 경우 모두, 언어가 담은 메시지보다는 태도로 비난을 받은 경우다.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하연수의 까칠함에 아쉬움을 표하며 말투를 수정해주는 모범답안도 돌아다닌다. “500번 정도 받은 질문인 것 같아요 ;ㅅ; 이제 좀 알아주셨으면...!! 맞아용 ㅎㅎ 벌써 그린지 20년 됐네요! ㅎㅎ” 애교스런 말투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거라며 발화자를 나무라거나 가르치는 이런 관점들은 이 사건이 전형적인 톤 트롤, 톤 폴리싱임을 드러내는 근거다. 성별을 바꿔 이 발언의 발화자가 중년 남자 배우나 남성 랩퍼였다면 사과문까지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같은 기간에 자필 사과문을 쓴 남성 연예인들의 사례를 찾아봐도, 부적절하게 양다리를 걸쳤다거나 과거의 학교 폭력 가담이 알려졌다든가 하는 사안으로 훨씬 무거우며 ‘자신의 SNS에 단 댓글의 말투’ 와는 다르게 확연한 피해자가 존재한다. 다만 누군가의 ‘기분’ 을 상하게 한 것이 아니라 말이다.

‘남자 여자를 떠나 연예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작품을 판매하려고 하면서도 잠재고객의 문의에 까칠하게 대했다’ 라고 비난하는 입장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대화가 일어난 공간은 마켓의 CS 센터가 아니라 개인 인스타그램이며, 판매하고 있는 것은 그림이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여자 연예인들이 ‘인성 논란’ 에 휘말릴 때, 실제 벌어진 사건은 고작 짝다리를 짚었다거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거나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인성’의 뜻은 이렇다. 1. 사람의 성품. 2.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 사람의 성품, 사고와 태도와 행동이야 말로 정말 다양할 수 있는 것이고 법과 도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그 특성의 발현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여자들이, 여성 연예인들이 사무적이거나 진지하거나 까칠할 수도 있는 다양성이 포함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글방글 웃으며 애교와 상냥함을 잃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인성’ 에 논란이 될만한 일 아닐까?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나 인형의 기질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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