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이 인류에 던지는 질문

2019.06.28
예전에 비하면 한결 관광이 자유로워진 편이라고 하지만, 체르노빌은 여전히 가급적 가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들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있다고 한다. HBO에서 나온 새 드라마 ‘체르노빌’의 인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구소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일어났던 역대 최악의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5화의 짧은 미니시리즈다. 사실을 토대로 극적인 구성을 위해 약간의 픽션을 가미했다. 실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드라마의 분위기는 공포 영화 뺨칠 정도로 섬뜩하다. 방사선 때문에 여러 가지 색의 불빛으로 반짝이는 발전소의 화재를 다리 위에서 아름답다고 구경하는 인근 도시 시민들의 모습이나, 방사선에 피폭되어 병원에 온 환자들의 오염된 옷이 병원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은 대단히 오싹하다. ‘체르노빌’은 안타까운 현장 속에서 비극을 극대화하여 갑갑한 사회 현실과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는 체르노빌의 비극 속에 사람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드라마의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크레이그 메이진이 체르노빌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자제할 것을 요청하며, 그곳에서 비극이 일어났음을 기억해 달라고 말한 것은 드라마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비극으로 고통받고 희생당한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단과 시청자 모두가 ‘체르노빌’을 호평하는 것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드라마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사고)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되새겨 볼 수 있기 때문이다. NPR은 체르노빌이 “정치가 현실보다 중요한 정부의 위험성을 보여준다”라고 평한다. NPR의 평론가는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구의 절반을 오염시킬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며,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에 있어서 정치적인 견해와는 별개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좀 더 확장된 이야기가 ‘체르노빌’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속에서 과학자인 울라나 호뮤크가 소련 공산당의 관료와 대화할 때, 드라마의 메시지는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공산당 관료가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하자, 호뮤크는 “저는 지금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에 관료는 “나는 내 의견을 좀 더 선호합니다.”라고 말한다. 호뮤크는 "저는 핵물리학자입니다. 관료가 되기 전에 당신은 신발 공장에서 일했고요.”라고 쏘아붙인다. 사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의견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비전문가의 모습을 드라마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애틀랜틱은 제작자 크레이그 메이진이 이런 사회 현실 속에서 체르노빌 사건으로 피해를 본 개인의 인생까지 살펴봤다는 점을 호평한다. 메이진은 체르노빌 사고라는 거대한 플롯 안에서 초기 화재 진압에 투입됐다가 죽게 된 소방관의 아내에 주목하고, 방사선에 피폭된 동물들을 살처분하게 된 징집 군인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애틀랜틱은 ‘체르노빌'이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보여 주지만, 좀 더 세세하게는 체르노빌 속 개인의 삶을 조명하면서 잘못된 정보가 만연할 때는 수십 만의 생명이 희생된다는 점까지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체르노빌’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교훈이 단순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고, 체르노빌 사건으로 희생당한 개인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섬뜩하게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 체르노빌 사태 수습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발레리 레가소프는 이렇게 독백한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거짓의 진짜 대가란,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할 수 있나? 진실에 대한 희망조차 버리고 꾸며 낸 이야기에 만족할 때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에서 누가 영웅인지는 중요치 않다.” 지구 온난화에만 빗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티 백신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진실을 외면한 채, 의견만을 고집하는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체르노빌’이 보여 주는 것은 30년이 넘게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한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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