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밖으로 나온 넷플릭스

2019.06.27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팝업존이 문을 열었다. 방문객은 수상하게 덜컹거리는 쓰레기통을 지나 건물 꼭대기의 괴물 ‘데모고르곤’을 무찌르기까지, 넷플릭스가 창조한 작은 모험에 참여하게 된다. 지도 형태의 팸플릿을 따라서 11개의 미션을 모두 완수하면 ‘일레븐’이 되어 굿즈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아케이드존에서는 출시 예정인 ‘기묘한 이야기 3: 더 게임’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고, 정주행존에서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 1~2를 다시 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인증샷’을 찍거나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으며 평소 즐겨 보는 드라마 속 세상에 몰두했다. 넷플릭스는 이제 단순한 OTT(Over The Top, 기존 통신 및 방송사가 아닌 새로운 사업자가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시리즈의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해 게임이나 굿즈, 국내에서 유행하는 방탈출 게임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정주행(빈지 워칭)’ 시청 행태에 최적화된 편성 방식으로 수용자의 여가 시간을 장악한다. 넷플릭스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2016년이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공을 차며 뛰어다닐 때다.” 제시카 리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은 지난 1월 국내에서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넷플릭스는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왔다.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은 지난 3월 넷플릭스 국내 유료 이용자 수를 153만 명, 한 달 유료 결제액을 2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12월 90만 명이었던 유료 이용자는 3개월 만에 60만 명 이상 증가했고, 전체 유료이용자 중 20대가 39%, 30대가 28%, 40대와 50대 이상이 각각 17%로, 2030 청년층이 전체의 67%를 차지한다.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순 방문자 수는 지난해 2월 48만 5천 명에서 올해 2월 240만 2천 명으로 1년 새 5배가량, 평균 체류 시간은 125분에서 306분으로 2.5배 늘어났다. 통신3사 중 유일하게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은 LG유플러스가 거둔 이익도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방증한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1월부터 IPTV에 넷플릭스를 탑재, 1분기 동안 가입자 13만 명을 추가로 확보하며 3사 중 1위를 기록했다. LG유플러스는 “이용자 설문조사를 보면 가입에 가장 영향을 준 서비스로 넷플릭스를 꼽고 있다”라며 넷플릭스가 가입자 유치와 수익성 개선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의 국내 인기가 치솟은 계기 중 하나는 지난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다.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여타 방송사에서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장르의 콘텐츠를 선보이며 경쟁력을 갖췄다. 6부작 드라마 ‘킹덤’은 회당 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제작비가 회당 4억~5억 원 수준인 것에 비하면 5배 정도 높은 금액이다. 제작비뿐 아니라 제작 환경 역시 기존 국내 방송과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킹덤’의 김성훈 감독과 김은희 작가는 이에 대해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만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기존의 작업 방식보다 좋은 점이 많다”라고 밝힌 바 있다. ‘킹덤’은 2년에 걸쳐 사전 제작된 드라마였기 때문에, 촉박한 제작 일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인 ‘생방 촬영’ 또는 ‘쪽대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한 넷플릭스 방침에 따라 방송 이후에도 스트리밍 수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시청 관련 통계가 제작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 방송사 채널 PD A는 “요즘 방송가에서는 ‘국내 방영 드라마 대부분은 넷플릭스에 먼저 가져갔다가 거절당한 것’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넷플릭스의 아낌없는 투자와 제작 환경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 제작은 나날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현재 영화 ‘비밀은 없다’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 KBS 2TV ‘쌈, 마이웨이’ 이나정 PD, MBC ‘쇼핑왕 루이’ 이상엽 PD 등이 넷플릭스와 협업 중이다.

넷플릭스가 불러 온 콘텐츠 제작 환경의 변화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대폭 올려 놓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료 방송 서비스를 해지하고 인터넷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코드 커팅’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한드(한국 드라마) 커팅’ 현상이 동반한다. 장르가 제한적이고 방송 사고가 잇따르는 국내 드라마에 실망한 이들이 넷플릭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방송 관계자 B는 “tvN ‘아스달 연대기’에는 54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CG나 세트의 질을 보면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한 액수”라며 투자 대비 실망스러운 완성도를 지적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C는 “적어도 넷플릭스에서는 드라마가 CG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방송되는 일이 없을 것 같다”라며 방송 사고로 물의를 빚은 SBS ‘빅이슈’를 언급했다.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소재도 참신하고, 무엇보다 돈 들인 티가 나서 시각적인 것만으로도 만족이 된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D는 넷플릭스의 방대한 자료량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넷플릭스는 국내 다른 OTT에 비해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콘텐츠를 볼 수 있고 오리지널 시리즈까지 독점 공개한다.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진 않지만, 볼만한 것들은 넷플릭스에 다 있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번역 및 판권 문제로 국내에서는 미국 넷플릭스만큼 많은 영상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E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 한 편이 만 원 이상이지만, 그에 준하는 퀄리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편하게 집에서 보는 데에는 한 달에 만 원도 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질적 측면에서 유튜브와도 차이를 가른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2019 OTT 서비스 U&A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OTT 중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넷플릭스 이용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8.9%로, 유튜브 레드(61%)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용자들에게 유튜브는 짧고 가볍게 즐기는 ‘스낵 컬처’인 반면, 넷플릭스는 상대적으로 깊이 있는 ‘감상 행위’라고 인식된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F는 “유튜브는 짧은 영상을 감상하려고 했다가도 관련 영상을 누르고 또 눌러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드는 반면, 넷플릭스로 보낸 시간은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이용자 G 역시 “넷플릭스에서는 높은 확률로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유튜브와 달리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방송 관계자 H는 하나의 관용어로 굳어진 ‘넷플릭스 앤 칠(Netflix and chill)’을 언급했다. ‘넷플릭스 앤 칠’은 ‘넷플릭스를 보며 여가를 즐기는 행위’이나 최근에는 ‘라면 먹고 갈래’처럼 성적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H는 “상대를 유혹할 때 유튜브를 같이 보자고는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넷플릭스 내에서 선정적이고 원초적인 콘텐츠만 골라 보더라도, ‘문화 콘텐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것 같은’ 유명 작품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유용하다”라고 주장했다.

넷플릭스가 언제까지 업계 최강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즈니의 OTT인 디즈니 플러스가 넷플릭스와의 경쟁을 예고했다. 모 유튜브 채널 PD인 I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 플러스 구독 의사를 밝히고 있다. 넷플릭스는 픽사, 마블, 폭스 등이 제작한 콘텐츠가 디즈니 플러스로 옮겨갈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다음 무대가 모니터 밖 세상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넷플릭스는 지난 14일 나이키와 협업한 ‘기묘한 이야기’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굿즈 연계 가능성을 보여 줬으며 ‘기묘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액션 콘솔 게임과 AR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 ‘다크 크리스탈: 저항의 시대’를 다룬 닌텐도 스위치용 게임 등 본격적인 게임 산업 진출을 앞두고 있다. 크리스 리 넷플릭스 인터랙티브 게임 분야 디렉터는 이에 대해 “우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영상 너머 다른 매체로 확장하기 위한 기회를 찾고 있다”라고 밝혔다. 디즈니 플러스가 넷플릭스의 OTT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반대로 넷플릭스는 디즈니가 차지하고 있던 콘텐츠 시장을 겨냥 중이다. 경쟁의 결과는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제작 판도부터 미디어 수용자들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더 이상 모니터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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