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카 앤 버티’, 제멋대로여도 괜찮아

2019.06.24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투카 앤 버티’는 여성들의 일탈이 모여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직업이 없는 30대의 여성 큰부리새 투카는 종종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를 자신의 마음대로 처리하며 망친다. 그의 단짝친구인 노래새 버티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회사를 무단으로 결근한다. 그래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이 사는 ‘버드 타운’에는 더 혼란스러운 일이 가득하다. 의인화된 새들이 모여 사는 ‘버드 타운’에서는 죽은 할머니의 유골이 들어간 케이크가 고인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거나, 성병으로 생긴 섹스 벌레들이 연고 부작용으로 거대하게 증식해 록 스타가 되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런 초현실적인 세계관은 두 여성 새가 어떤 일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일탈은 반쪽짜리 자유에 그친다. 투카는 주변으로부터 튼실하다고 평가받는 하체를 가졌지만 짧은 바지를 즐겨입고, 자신의 큰 부리와 작은 가슴을 지적하는 털룰라 이모에게 “다른 재산을 과시하는 게 더 좋다”라고 응수할 만큼 당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작 마음에 드는 남성과의 데이트를 앞두자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커다란 부리와 하체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평소 내향적인 버티는 홀로 휴일을 보내는 날에 ‘여공차(여성이여, 공간을 차지하라)’ 모임에서 남성과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 미리 골라놓은 짧은 점프수트로 자신감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작고 힘이 없는 버티는 예고도 없이 집에 들어온 남성 배관공에게 두려움을 느껴 ‘여공차’ 모임에서 배운 것처럼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캣콜링 대한 걱정 때문에 결국 점프수트를 입지 못한다.

투카는 금주를 하기 전까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남성들과 즉흥적인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이처럼 자유분방해 보이던 그는 정작 마음에 드는 남성과의 데이트에서 온갖 실수를 저지르다 도망치고, 결국 지하철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며 연약한 내면을 드러낸다. 그가 남성과 진솔한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을 회피하는 이유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혼모였던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티는 남자친구 스페클에게 버림받을까봐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그와의 대화를 회피한다. 어린 시절의 버티는 피넛버터 섬을 수영으로 정복하겠다는 꿈을 가질 만큼 담대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겪은 성폭행은 그가 수영을 좋아할 수 없도록, 바다를 건널 수 없도록 만들었다. 추후 수영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버티가 스페클에게 자신의 회피가 “본성”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투카와 버티가 겪는 심리적인 문제는 개인의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정상가족 중심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문화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의 성향은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감정이다. 자유로워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그들이 진정한 일탈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종종 투카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로운 물건을 집어삼킨다. 그가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기 전까지 이 습관은 그저 투카의 자유분방한 성향을 표현하는 수단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일탈은 결국 그의 자궁에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단한 알을 심는다. 이는 알처럼 견고한 현실이 여성이 혼자 품고 견디는 방법으로 깨질 수 없다는 은유다. 버티는 직장에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동료의 성희롱으로 인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혼자 노력하는 것만으로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회사에 잠입한 투카가 버티가 발표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성희롱 세미나를 열면서 여론이 형성되자, 비로소 버티는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승진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제빵에 재능이 있는 버티는 유명 파티셰 페이스트리 피트의 수습생이 되어 제빵을 배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페이스트리 피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는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수습생 다코타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행동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었음을 깨닫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인 페이스트리 피트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버티에게 “내가 당신을 만들었어, 난 당신을 망칠 수도 있어”라고 협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협박이 밈으로 우스꽝스럽게 확산되고 여성들이 페이스트리 피트의 빵을 불매하자 그의 권력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현실의 벽을 깨는 진정한 일탈은 개인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여성과 여성이 연대할 때, 한 여성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확장될 때 일어난다.

그래서, ‘투카 앤 버티’는 단순히 일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할 필요가 없으며,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진정한 일탈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버티는 피넛버터 섬 앞에서 수영하는 어린 여성 새들을 보면서 “(세상과 남자들로부터) 쟤들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어”라 말한다. 여성으로서 겪은 트라우마를 홀로 숨기고 살아온 긴 시간 동안 그는 이 소망이 결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투카가 버티에게 용기를 심어주면서, 버티가 투카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또 여성들이 서로를 도우면서 견고해보이던 현실은 조금씩 깨지고 바뀐다. 깨진 알로 미술 작품을 만드는 뻐꾸기 팻은 투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금이 간 알들은 쓸모없다고 느껴지는데, 인내심만 있으면 부서진 것들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죠.” 그의 말처럼 현실을 부수는 과정은 분명 상처를 남기지만, 이는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성들에게는 현실을 더 제멋대로 깨트리고 부술 수 있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그들이 더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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